나우의 휴휴암좌선문 18
차별 없는 경계에서 차별 있는 혜(慧)를 나투다
於無差別境에 示有差別智를 謂之禪이니
(차별 없는 경계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나타냄을 일러서 ‘선’이라 하니)
‘차별 없는 경계’란 자성의 정(定)을 말하며, 이 자리에서 자성의 혜(慧), 즉 공적영지를 드러내는 것이 선(禪)이라는 말입니다.
“선이란 망념을 쉬고 진성(眞性)을 길러서 오직 공적영지가 앞에 나타나게 하자는 것”이라는 대종사님의 법문과 같습니다.
공적영지를 ‘차별 있는 지혜’라고 한 것은, 그 어떤 경계에서든 낱낱이 그에 맞게 밝고 두렷한 지혜를 나투기 때문입니다.
일본 하라 단잔(原 坦山) 선사가 젊은 시절 도반이었던 구가 간케이(久我 環渓) 스님과 행각(行脚)을 다닐 때였습니다.
한바탕 비가 내린 뒤에 갠 어느 날, 두 사람이 한 작은 냇가에 이르렀는데 한 아리따운 처녀가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내를 건너지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러자 단잔은 주저 없이 그 처녀에게 다가가 “내가 건네 드리리다.” 하고는 그녀를 덥석 안아서 맞은편으로 건네주었습니다. 처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런 뒤에 두 스님은 해질 무렵 어느 여관에 이르러, 이윽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간케이가 작심한 듯 말을 꺼냈습니다.
“자네, 출가 수도승이라는 자가 젊은 처자를 품에 안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일인가?”
그러자 단잔은 눈을 멀뚱멀뚱하고 쳐다보더니 껄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처자를 거기에 내려주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안고 있었단 말인가?”
간케이가 난처하게 서있는 처녀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마음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젊은 남자와 여자’라는 상(相)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라 단잔은 그러한 남녀의 상이나, 계율도 떠나서 ‘차별 없는’ 정(定)에서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즉각 공적영지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더 착했다거나 더 총명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 단하(丹霞) 선사가 어느 날 혜림사라는 절에 갔었는데, 날은 지독히 춥고 방은 냉골이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 뭔가 땔감을 찾아보았지만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법당에 있던 목불(木佛)을 가져다가 불을 지피고 그날 밤을 지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 절의 주지가 법당에 모신 불상을 객승이 땔감으로 쓴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자, 단하 스님은 태연히 ‘부처를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고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주지는 더욱 화가 났습니다.
“이 미친놈아!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영험도 없는 나무토막을 좀 땠기로서니, 뭘 그리 나무란단 말이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일체의 상(相)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오직 단하 스님만 ‘나무부처’를 정말 ‘상 없이’ 보았습니다. 그토록 상을 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절의 주지는 ‘부처님을 모시면서도’ 자기 안의 부처를 몰랐지만, 객승은 자성불이 발하는 공적영지를 거침없이 썼습니다.
‘차별 없는’ 경계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였다는 선가의 이야기입니다.
라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