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회고록] 세월호 (하)
- 朴 “나도 흥분해 경질했다”…교육장관 ‘황제 라면’ 진실 ※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를 다시 구성해 547억원의 예산을 들여 4년간 재조사를 했다. 그리고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만 재확인했다. 첫 방문 이후 유가족과 청와대 사이에는 거대한 불신의 벽이 만들어졌다.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지만 합동분향소 문은 닫혀 있었고, 헌화와 분향은 할 수 없었다. 유족들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분향소를 폐쇄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틈이 벌어진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해가 쌓였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때 정무수석이 현장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당시엔 나름대로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정무수석을 남겨서 좀 더 세밀하게 챙겼어야 하는데…’ 라는 회한이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족들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고 지속적으로 유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마음을 달래야 했는데, 그런 조치가 미흡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틈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대신 메웠고, 정부와는 점점 간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거대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이 순간을 몇 번이나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이때를 돌이켜볼 때 아쉬운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세월호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기로 한 특별조사위원회를 둘러싼 마찰이다. 당시 야당 일각과 유가족 측에서는 진상조사 특위에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이에 대해 2014년 9월 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임시기구에 모두 맡긴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원칙을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야당 일각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마치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처럼 몰아갔고, 정부와 유가족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이병기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 등 일부 청와대 인사가 특조위 추진 과정을 살피면서 설립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실장은 무죄가 확정됐고, 조 수석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나는 재판이 시작되고서야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특조위는 당시 여야 합의로 구성됐던 기구였고, 청와대가 이런 활동을 방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이들이 특조위를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제 라면’ 논란 서남수 성급 경질, 후회스럽다 이 자리를 빌려 또 하나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 당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황제 라면’ 논란이다. 서 장관은 사고 당일 진도 실내체육관 진료소를 방문했다가 팔걸이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분위기가 워낙 격앙돼 있다 보니 7월에 그를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라면을 함께 먹자고 권했던 것은 박준영 전남지사였다는 것이다. 서 장관은 고사하다가 계속 거절하기가 어려워 같이 먹었는데 나중에 한 언론에서 서 장관만 부각해 기사를 내보냈던 것이다. 사실 라면을 먹은 것 자체가 그렇게 큰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때 여론이 너무 들끓으니까 나도 약간 흥분했던 것 같다. ‘아니, 유족이 있는데 조금 참으시지… 왜 굳이…’라고 질책하는 마음에 경질을 결정했던 것이다. 서 장관은 이에 대해 청와대에 일절 변명하지 않았기에 진실을 알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진작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았다면 경질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성급한 인사였기 때문에 후회스럽고 서 장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2014년 5월 19일, 나는 이번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오전 9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나는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또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이날 해경 해체를 발표했다. 전격적인 발표이다 보니 야당 등에서는 책임을 해경에 떠넘기기 위해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국가 안전이나 재난 관리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때까지 국가적 안전 재난 관리 시스템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이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사고만 해도 청와대에 오전 내내 사고 현장의 영상이나 통계 수치 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수습 지시를 내리는 데 애먹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해경 해체라고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국가안전처 신설에 따른 기능 조정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해경의 수사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구조나 해양 경비 기능은 향후 신설할 국가안전처로 이관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해경은 해양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책임을 갖고 전문화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안전행정부에도 안전 기능이 있었지만, 막상 세월호 침몰 같은 큰 사고가 벌어지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의 안전 분야도 국가안전처로 넘기고 안전행정부는 지방 행정 등에 집중토록 했다. 해양수산부가 맡고 있던 해양교통관제센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 관련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고 지휘 체계도 일원화하면 어떤 유형의 재난이 있더라도 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 혼자만의 즉흥적 발상이 아니라 해외 사례 등을 충분히 검토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참사 사과하며 눈물… 희생자와 의인 기억했으면 나는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사과문을 읽으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세월호 사고 당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했던 의인들에 대한 대목을 언급할 때였다. 최혜정 교사와 김기웅·박지영·양대홍·정현선씨 등 세월호 승무원, 민간잠수사 이광욱씨 등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을 구하다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 기억할 때 이들도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2014년 6월 4일 제6회 전국지방선거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여당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선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여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광역단체장 17곳 중 여당이 8곳, 야당이 9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기초단체장은 여당이 117곳을 가져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80석보다 많았다. 광역단체장도 야당이 1곳 많았어도 서울을 제외한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여당이 성공한 선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여전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선거에 대해 언급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선전한 것은 그래도 국민께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노력을 평가해 주고 진정성에 대해 공감해 주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거 이후 야당도 정략적 목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세월호 책임 통감… 인신공양설 등 날조는 참담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던 사고였다.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거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를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이 확인됐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점에 대해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고 이후 특조위 구성과 국가안전처 신설 등으로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