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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옥책 의의】
Ⅰ. ‘월인석보「옥책」’ 의의
1. ‘월인(月印)’은 세종대왕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본 뒤 우리 음을 달아 지은 약 600여수의 찬불가로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뜻이 되며 동 약자(略字)가 된다.
2. ‘석보(釋譜)’란 석가모니의 일대기이며, ‘상절(詳節)’은 중요한 것은 상세히, 중요치 않은 것은 생략의 뜻으로서 ‘석보상절’의 단축 뜻이다.
3. ‘옥책(玉冊)’ 은 궁중의 국왕은 물론 왕대비 및 왕비에게 존호(尊號)을 올릴시 옥간(玉簡)에 송덕문을 새기는 어책(御冊)이다.
4. ‘월인(月印)’ + ‘석보(釋譜)’ = ‘월인석보’ 내용을 + ‘옥책(玉冊)’ 으로 편찬하였다.
5. ‘월인석보「옥책」’ 은 세종대왕의 ‘월인석보’ 구편(원전)(세종 29년(1447.正統12년)의 내용이 현전(現傳) 「옥책」에 담겨 발견, 2023년 2월 국내 최초 공개 되었다.
6. 현전(現傳), ‘월인석보「옥책」’’에서 훈민정음 해설인 언해본이 첨부되어 반포 되었고, 편찬은 같은 시기에 시작됐으나 ‘상절’이나 ‘월인’보다 먼저 ‘석보’가 간행되었음의 발견은 세종의 한글창제 연구자들에게 획기적 관심사의 일이 아닐 수 없다.
7. ‘월인석보「옥책」’은 독창성과 과학성을 유네스코 국제자문회의에서 가치를 인정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훈민정음으로써 1447년 세종 조 당시의 표기 음 자체(字體)로 간행된 현전 「옥책」의 발견은 경이로운 감격을 금치 못하는 전 세계 속의 단 하나 우리의 긍지이다.
8. ‘월인석보「옥책」’의 문장은 매우 유려(流麗)하며, 당시대의 국문학을 대표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꼽히기 때문에 한글 초기의 변천사를 살피는데 국어국문학계 사서(史書) 적 중요한 국보급 가치를 지니고 있다.
9. ‘월인석보「옥책」’의 내용 ‘월인석보’는 당시의 언어 표기를 그대로 보전하고 있어 국어 국문학계 사상 최고의 귀중한 보물문헌이 되며, 이로써 한글 창제의 원인과 변천사 등이 함께 내포된 보물로서 ’월인석보‘의 「옥책(玉冊)」은 세계만방 중의 유일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되게 된다.
Ⅱ. 〔월인석보옥책(玉冊)의 고찰(考察)〕
1. 「‘옥책’ ‘월인석보’」는 세종29년. 正統12년,干支.1447년 12월, 어찰(御刹)인 개성 불일사(佛日寺) 에서 「월인석보옥책(玉冊)」으로 간행 되었다.
2. 한글 창제이후 맨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로서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초기의 글자와 당시 말을 그대로 보전된 내용을 그대로 「옥간(玉簡)」에 새김으로서 ‘월석(월인석보)’의 내용이 옥책(玉冊)에 담겨 간행 되었다.
3. 세종의 ‘월인석보’ 간행은 훈민정음(언해본)을 권두에 두면서, 1446년 10월 실질적인 훈민정음 반포 의미를 가지며, 세종의 소헌왕후 명복.추천(推遷) 의미의 ‘월인’과 ‘상절’의 뜻을 ‘월석’에 담고, 동 일련의 내용을 「옥책」 에 새겨 간행된 것이다.
4. 「월인석보」는 「석보상절」에서 한자음 표기를 위하여 석가씨 일대기로서 우리말로 이해를 위한 ‘상절’이 되었음과, 한글이 진정 우리말과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의 가능을 위한 확인으로써 ‘월인천강지곡’이 되었다.
5. 월인석보옥책은 석가일대기 결정판으로서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 불경언해서로서 여타 불교교리 언해서와 달리 불교경전의 수용태도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보물의 유물문헌이 된다.
Ⅲ. 〔월인석보(月印釋譜)옥책, 세종이 처음 짓다〕
1. ‘월인석보옥책’은 당초 세종 28년(1446.10월)실질적인 훈민정음 반포 언해본으로서 간행 되었는바, ‘상절’과 ‘월인’을 편찬시작, 동년 9월 해례본(세종어제)훈민정음 완성 및 동년 10월 월인석보 구권(舊券)의 간행에서 실질적인 해례본 반포로써 부재하였다.
2. 현재까지 발견된 별도의 「월인석보」의 원간본, 복간본은 모두 활자 인쇄본이며 목간편이며, 월인석보는 국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국립 또는 여타 박물관 및 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는바, 원간본, 복간본, 전부 25권 중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3, 5, 6, 16, 24권 등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결권이다.
3. 월인석보는 석가일대기 결정판으로서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 불경언해서로서 여타 불교교리 언해서와 달리 불교경전의 수용태도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보물의 문헌이 된다
4. 세조가 낸 월인석보 신편은 세조 5년.1459. 天順3년에 간행 되었으며,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간행된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은 아들인 수양대군(세조)이 세종의 명을 받아 각각 별도로 간행 하였다.
5. 「월인석보」 구권(舊券)의 편찬 동기는 수년 동안 진행해 온 훈민정음의 1443년 제정, 1446년 반포함에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새로운 한글문자로서 표기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글을 널리 알리고 깨우치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로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내용의 합한 것을 세종의 「월인석보」 간행 구권(舊券)이 된다.
6. ‘월인석보’ 신권(新券)은 세조 3년 1457때 왕세자 도원군이 죽자 1446 세종의 소헌왕후 추천(僦遷)명복을 위함과 같이 세종 말엽부터 세조 초엽까지 약 13년 간 이루어진 석가일대기결정판으로서 훈민정음 창제 후 불경언해서로서 세조 간행 「월인석보」 의 신권(新券)이 된다.
7. 日, 에다 도시오(江田俊雄)의 ‘월인석보는 세조 때 만들었다’는 어용 불교학자의 주장은 세종 때 구권이 먼저 간행된 것으로써 그 잘못을 국문학계에서 바로잡았다.
8. 월인석보는 석가일대기 결정판으로서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 불경언해서로서 여타 불교교리 언해서와 달리 불교경전의 수용태도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보물의 문헌이 된다
Ⅳ. 〔옥책(玉冊)의 간행〕
옥(玉)은 仁, 義, 智, 勇, 德 등 5품위를 지향함으로써 옥 문화는 우리의 상고사에 직접 연관되는 6200-BC5200년 경 홍산 문화권으로부터 전래되었다.
삼국시대,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서에서는 경국대전에 이르기를 상의원 소속에서는 10여 명의 장인(匠人)을 두고, 왕실의 옥공예를 전문적으로 다뤘다 라 기사하고 있다.
세종 9년(1427년)에는 전식의(前食醫)였던 서가(徐駕) 등이 당시 남양부(南陽府)에서 청옥을 발견하여 바친 옥의 품질이 뛰어나 최고의 옥으로 인증 받게 되었고, 조선 왕실을 대표하는 옥이 된 것은 남양옥이 되었으며 서가는 그 공을 인정받아 관직을 제수 받았다.
청아하고 은은한 음색(音色)의 남양옥에 매료된 세종은 박연(朴然) 등을 시켜 궁중악기인 편성(編聲)을 만들게 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왕실의 옥쇄(玉碎). 어책(御冊)과 악기들을 비롯하여 비녀(婢女), 옥대(玉臺), 장신구 등을 만들었던 조선시대 왕실의 전유물이었다.
조선조 왕들의 어책(御冊)인 옥책(玉冊)이 현존하여 궁중박물관에 보전되고 있다.
옥책 중에는 불경교리를 담은 「부모은중경」, 「예불대참회문」 등의 불경을 옥책에 수록하기도 하였다.
Ⅴ.〔월인석보‘옥책(玉冊)’ 경과사항〕
1. 월석옥책의 보전원(保傳源)
「‘옥책’ ‘월인석보’」는 세종29년. 正統12년,干支.1447년 12월, 어찰(御刹)인 개성 불일사(佛日寺) 에서 「월인석보옥책(玉冊)」으로 간행 되었다.
불일사(佛日寺)는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仙跡里)에 위치, 고려 광종(光宗) 2년(951년)에 창건, 1500년 이후 전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어 현재는 5층 석탑만이 북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해 오고 있다.
크기는 동서 150칸, 남북 100칸 규모로서 초기는 고려 광종의 어머니 원찰로 사용했고, 그 후 조선 초기까지는 태조에서 세종 때 까지 조선왕가의 원찰(願刹)로 사용되어 왔다.
세조 이후 전란 중에 옥책(玉冊)월인석보는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가 20세기 초, 발견되어 오랜 기간 외국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1991년 경 대한민국으로 반입하게 되었다.
2. 월인석보옥책 유물 국내최초공개
가. 일시 : 2023년 2월 16일 14:00시
나. 장소 :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실
다. 전시 : 프레스센터 19층 회견장 공개
3. 최초 유물공개 추진체계
가. (사)동아시아문화유산보존관리협회 주최
나. (주)에스 앤 디 글로벌 주관
다. (사)한국 국제예술진흥원 협찬
Ⅵ.〔월인석보옥책(玉冊〕 형모〕
1. 개별 형모
월인석보옥책은 총 12권 364片 옥간(玉簡)과 24개의 옥봉에 새겨있다.
옥편(玉片)은 길이 28* 폭 4.5 * 두께 0.8cm
옥편 상하 각 2개씩 3cm간격 직경 0.5cm 구멍이 뚫려있고, 용(龍)이 음각으로 새겨있다
옥봉(玉棒)은 길이 28.2* 상경 약2 cm* 하경 약1.5cm, 상하 각 1개씩 0.5cm 직경의 구멍이 뚫려있고 용(龍)트림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있다.
옥봉(玉棒)은 권당 2편씩 24편으로 각각의 옥편을 가죽 끈으로 묶음을 하는데 받침봉으로 이용 된다
각 권의 첫 편의 월인석보(月印釋譜)리는 표제로 각 편에 각인하고, 둘째 편에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제자를 음각하고 금분이 도색되어 있다.
2. 간행의 조합(組合)
옥봉 24 + 월인석보 옥간(玉簡) 12편(표지 서명 분) +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옥간 12편(속표지 해당) +
월석 제8권을 새겨 넣은 352편의 옥간(玉簡)으로 구성 + ‘월인’, ‘상절’ 옥간 12편 합계 총 364편이 된다.
표지서명 옥간12편 제외, 364편을 12권, 옥봉 24편 으로 나누어 매권 29-30편의 옥간에 월석 제8권을 새긴 것은 352편으로서, 한 해 12달수와 29-30일의 354일이란 음력으로 한 해의 날수와 맞추어 옥간을 제작 한 것이 된다.
Ⅶ. 〔월인석보옥책(玉冊)의 내용〕
월인석보 제8권의 내용을 옥간에 새겼다. 즉 불설관무수량경(佛設觀無量壽經)과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을 저본으로 언해한 것으로서, ‘월인’ 의 212장-250장까지를 포함하여 ‘석보’에서 이를 설명한 내용을 ‘월석’의 제 8권에 담고 있다.
‘월인’ 212-219장과 그에 해당하는 ‘석보’ 에 관련된 협주들은 불설관무수량경에서 가져온 것이며,
‘월인’ 220-250장과 그에 해당하는 ‘석보’ 에 관련된 협주(夾註)들은 안락국태자경에 의거하고 있다.
옥책의 8권까지는 전자를 옮겨 쓴 것이고,
제9권 중간 15편까지는 후자를 옮겨 쓴 것이다.
불설관무수량경은 정토(淨土) 3부경의 하나로 무량불(無量佛)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수행하다가 성불하매 시방(十方)의 염불 중생이 왕생극락한다는 내용의 불경이며,
안락국태자경도 미타삼존불(彌陀三尊佛)의 본생담(本生談)로서 관무수량경과 연결되어 여러 불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불경이다
월인석보 뭇 내용 중에서 두 경전을 옥간에 새겨 옮긴 연유는 인생의 영화와 고통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월석 제8권을 선택해 인생무산을 설파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관심을 바탕에 두며 훈민정음 창제 반포 언해본으로서의 국민적 배움과 깨우침 유도의 의의를 갖게 하였다.
Ⅷ. 〔월인석보옥책 감정〕
1. 감정기관 : 첨단과학감전원(원장 권명한)
2. 검측기 : QRS-7 및 X-MET8000(보충검측기)
4. 결과 : 위 최첨단 검측기는 중국 등 해외에서는 법사감정을 실시 중인바, 다수의 박물관에서 사용되고 있음.
5. 옥편 : 오랜 기간 동안 토양에 함유된 철분이 산화 되면서 옥편에 고착된 것이 확인 되었고, 디지털 현미경 광학분석에서는 니금의 흔적과 함께 일부 니금이 잔존하며 그 자리에 철산화물이 겹겹이 고착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본 옥책의 제작연대는 AD1447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기에 본 감정소견서를 발행 함.
Ⅸ. 〔보전계승의 논제〕
1. 월인석보옥책은 훈민정음 창제 후 최초 불경언해서로서 여타 불교교리 언해서와 달리 불교경전의 수용태도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보물 문헌으로서 전 세계 속에 우리의 긍지이다.
2. 월인석보옥책은 국어 국문학계 사상 최고의 귀중한 문헌으로서 한글 창제의 원인과 변천사 등이 함께 내포된 보물로서 세계만방 중의 유일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되게 된다.
3. 2023년 2월 월인석보옥책이 최초 공개된바, 동 유물의 엄중히 숭고한 데에서 보전 계승 전유 되어야 할 사안임을 논제(論提)하게 된다.
〔사진 자료〕
월인석보옥첵 제8권 표지
월인석보옥책 제8권 표지2
감정평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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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 〔월인석보옥책공개 미디어 내용〕
1. 연합뉴스, 일요신문
연합뉴스(기사입력2013.12.09.) : 국보급 유물,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소재 어찰(御刹) 불일사 봉헌 중 옥책 첫 발견, 1459년 세조 5년의 초간본이 아닌 12년 앞선 1447년 세종29년 이전에 월인석보 옥책이 간행되었음을 입증되게 하였다.
일요신문(기사2014.01.27.)
월인석보 <옥책> 전 12권 364편 진본 첫 발견. 속표지로서 엽수를 붙인 월인천강지곡의 옥판도 12개 포함 발견 되었다. 세종대왕 부인 소헌왕후가 타계하자 아들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월인석보 <옥책>을 당시 한글표기법으로 간행케 하여 개성 판문군 선적리 소재 어찰(御刹)인 불일사 봉헌 중 첫 발견되었다.
2. 동영상
가. [천지일보 영상뉴스] “옥책공양경,
세조 아닌 세종의 월인석보 발행 알려” 2‘04“
나. [BTN뉴스] ‘통도사 세미나’
한글창제의 진실 한발 더 접근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