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고 부드러운
한지혜
자주 뒤집히는 칼날 위에 있어요, 나는
닉의 날
어디쯤에서 휘두를까
굽은 낙타의 등같이 어두워 닉의 날은 등을 잘라 조각달을 만들어요
흐르는 감자의 크림 빛은 팬에서 까맣게 타요
닉은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는 오지 않아서
나 스스로 가만가만 새의 길에 엎드려 기다려요
그녀의 검은 망사치마에 흰 블라우스가 왜 어색한 느낌이 들었는지
치마에 달린 검은 장식이
뭘까 뭐였을까
푸른 밤이 자주 죽는 이유같이 슬픈 기다림
나는 창밖의 검은 지붕과 지붕을 건너 붉은 십자가 앞에서 양초같이 녹아버려요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빛깔
그녀와 연결된 나의 핏줄에서도 빛들이 흘러요
내 심장이 아주 조금 흔들려요 빛같이 닉의 날을 고정시키는 순간
파란 길에 밤마다 붉은 새들이 모여 만든다는 네모의 환상 흩어지고
머리의 불빛을 가르면 생겨나는 둘레, 하얀 둘레 길을 돌아서 그녀가 와요
칼의 날같이 기이하고 부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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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월간 신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음에 내리는 꽃비 』『차와 달의사랑노래 』『두 번째 벙커 』 『모든 입체들의 고독 』이 있다 . 2016년 경기문화재단 및 한국예술위원회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sangchonj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