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5 (번역) Daum 카페 "크메르의 세계"
이 자료는 2004-10-14일 시하누크 전임 국왕이 양위를 하고 퇴임을 하자,
BBC뉴스에서 그의 생애를 특집으로 다룬 내용으로,
본 카페에서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시하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의 생애
괴짜에다 예측불가능한 인물. 그러나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81세의 노로돔 시하누크 공이 퇴위를 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등극하는 모습을 궁전에서 보게 되었다. |
[사진1]
1941년 등극한 시하누크는 그 후 60년 이상 이어진 조국의 격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선봉에 서 있었다.
(농민들과 함께 일하는 젊은 국왕의 사진 앞을 시클로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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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시하누크가 등극했을 때, 조국은 여전히 프랑스의 식민 치하에 있었다. 프랑스는 시하누크 국왕이 단지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러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곧 조국의 독립를 위한 적극적인 선동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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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국왕으로서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젊은 시하누크는 스포츠, 음악, 아마츄어 영화제작 등 수많은 취미생활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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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애정행각으로 유명한 시하누크 국왕은, 6번째 아내인 이태리계 캄보디아인 모닉(Monique)과 1952년 결혼해 안주한다.
(우리 카페가 가진 정보로는 7번째 부인이다.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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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1955년 그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총리가 된다. 그는 반대자들에 대해 더욱더 완고한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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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베트남 전쟁 동안 시하누크는 점차로 미국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1970년 그가 해외에 외유 중, 바로 이 사진이 촬영된 지 며칠 후 론 롤 장군이 이끄는 우파 친미 쿱테타가 발생해 그는 실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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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망명 후 그는 스스로 크메르 루즈 운동에 가담한다.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진에서 그는 크메르 루즈의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키우 삼판(Khieu Samphan: 좌측)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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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그는 곧 그것이 잘못된 협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자 캄보디아는 이내 학살극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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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
크메르 루즈 정권이 몰락한 후에도 그는 또 다시 망명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UN이 중재한 평화협정이 조인되자 그는 귀국하여 왕위에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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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2004년 9월, 그는 갑작스레 퇴위를 발표해 캄보디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아들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가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영향력은 이후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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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번역) Daum 카페 "크메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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