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떠난다 / 한승원
간밤 잠자리에 들면서 담요를 덮었다. 찬바람이 엄습해 왔고, 귀뚜라미가 머리맡에서 울어댔다. 잠이 들기 전에 나는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했다. 날이 밝는 대로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먼 도회의 한 네모난 시멘트 건물 안에 살고 계신 어머니의 주름살 깊은 얼굴이 보이고, 다정 다감한 친구의 얼굴이 보이고, 바다가 보였다. 가방 하나 어깨에 걸치고 여객선의 갑판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초라한 모습도 보였다. 그것은 나였다.
다도해 지방을 여행한 지도 벌써 한해가 되었다. 고향의 포구에 들어오는 배를 타고 끝닿는 데까지 갔다가, 거기에 닿는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건너가고, 거기서 또 다른 섬으로 가고……나는 그런 여행을 좋아한다.
이튿날 약수터를 오르다가 나는 놀랐다. 길 가장자리에 수북하게 자라난 쑥이나 명아주나 비름 같은 것들이 먼지알 같은 푸른 열매들을 달았다. 나락이 패고, 억새와 띠풀과 개여뀌들이 꽃을 달고 있었다. 수수도 숙였고, 벚나무와 백양나무들은 벌써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도토리와 개암과 밤이 영글었다. 아침나절부터 아랫방 아주머니는 새빨간 고추를 사다가 양광(陽光) 마당에 널고 있었다.
모두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 혼자서만 그간의 더위를 참지 못하고 몸부림치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직 검푸른 소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오리나무, 박달나무 들을 보면서, 간밤에 슬그머니 동하기 시작한 내 역마살을 생각했다. 하늘을 찌른 백운대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전에 없이 청아한 것 같고, 골짜기 아래에서 달려온 바람에 숲 흔들리는 소리가 향 맑은 듯싶었다.
나는 바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기 전에, 흰 눈발이 앙상한 나뭇가지와 텅빈 대지 위에 날리기 전에 거둘 것을 거두어 두고 떠나자고 생각했다. 동쪽 바다로, 남해안으로, 김제 만경강으로, 서해의 아득한 갯벌밭으로, 차를 달려가 보자고 생각했다.
이 해의 추석은 고향에 가서 지내자. 잡풀 무성한 아버님의 무덤에도 가 보고 가난에 찌들려 있는 형제들이 김발 막는 것도 거들어주자. 고향의 추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도 보자. 그뿐인가 다음 해부터는 음력 대보름도 고향에 가서 보내자. 풍물도 함께 치고 갯제(海神祭) 지내는 데도 따라가 보자.
아버님 제사에는 별일이 있어도 참례를 하자. 거기에 늙은 몸을 의탁할 집과 땅을 마련해 두자.
키워 놓은 제자도 없고, 깊이 사귀는 친구들도 많지 않고, 특별하게 따르는 후배도 드문 사람의 도회에서의 만년은 쓸쓸하고 슬프기 마련이다. 스무 해 저쪽, 그때까지 살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늙은 아내와 함께 돌아갈 곳은 고향의 바닷가다. 거기서 미처 다 쓰지 못한 글을 욕심 없이 쓰면서, 낚시질도 하고 농사도 짓고 살아가야 한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욕심을 부리게 하는가. 무엇이 금방 버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들에 집착을 하게 하는가. 어디서 온 줄도 모르고, 또한 어디로 갈 줄도 모르는 주제에 집착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연유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늙은이가 되었을 때 나로 하여금 끈질기게 집착을 하도록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이 나이에 쓸 수 있는 소설을 다 쓰지 못한 여한이 아닐까. 여한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강을 건너야 한다. 이때껏 그 강 건너기에 수없이 실패를 거듭해 오고 있다. 건너 놓고 보면 도달해야 할 그곳이 아니곤 했다. 타고 건넌 뗏목이 좋지 않아서인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이 고물이어서인지, 그 뗏목을 짓고 그 나침반을 사용하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인지…….
다시 뗏목을 짓고, 저을 노와 짚을 삿대와 달 돛대와 가면서 먹어야할 양식과 물을 장만해야 한다. 수없이 많은 날과 밤 동안 그 뗏목을 지어서 강을 건너야 한다. 앞으로도 무수히 실패를 할 것이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건너고 또 건너고 할 것이다. 이 한 몸뚱이 안에 들어있는 힘을 짜낼래야 더 짜낼 수 없을 때가지 짜내고 또 짜내서 뗏목을 지어 가야만 한다. 내가 찾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다가 죽어야 한다. 죽지 못해 살았을 때, 그때까지도 이 한 몸이 무지해 있을 때, 고향으로 이 몸을 묻으러 돌아갈 것이다.
가을은 허무를 일깨우는 계절이고, 그 허무로부터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계절이다. 낙엽은 죽음이자 거듭나기이다. 자연은 죽음과 거듭나기를 통해 맥을 이어 가는 것이다.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은 보다 근원적인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고, 죽고 싶어하는 것은 더 뜨겁게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귀뚜라미는 괜스레 공염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 명아주나 비름이나 억새들처럼 찬찬히 죽어 갈 준비를 하자. 낙엽같이 떨어졌다가 다시 살이 나고, 만행(萬行) 하는 비구처럼 흰 구름 머리에 이고 떠돌다가 날새들같이 돌아오자. 가을의 여행은 이르러야 할 강 건너 저편의 그곳을 보다 정확하게 짚어 주는 <금강경>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