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월 읽기
-박종영
강가나 산기슭에 흩어져 있는
하찮은 돌도 다 제자리가 있다
모든 사물은 제자리에 놓였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계절이 바뀌고 매화가 활짝 핀
마을 안길 돌담을 눈여겨보는 재미가 있다
돌담이 끝나는 지점에 봄날 아지랑이가 부풀어 오르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마음을 바쁘게 한다
층계를 이루며 서로 부등켜안고 있는
저것들의 연대가 감사할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로 안고 있는 돌들을 하나씩 만져보면
잘생긴 돌도 있고 투박하고 모가나 못생긴 돌들이 더 많다
덩치가 큰 놈이 있는가 하면
얄팍하고 자그마해서 물수제비를 뜨면 붕붕 날아갈 놈도 있다
돌담의 밑자리를 살펴본다
낮잠에 빠진 듯 길게 누운 돌도 있고
야무지고 당차게 삐쭉이 입술 내밀고 있는
옹골차고 밉살스러운 돌
비바람에 부대끼고 달아져 반질반질한 돌이 있는가 하면
백옥같은 연인의 얼굴로 웃고 있는 돌도 있어
괜히 다가가 한번 쓰다듬고 싶은 것은
세월이 권하는 그리움의 시간인가?
저 수많은 돌의 본향이 강이나 산이었으니
한 평생 여울물의 출렁임을 담고 살아왔을 것이고
천년 주목의 울음에 놀라 산을 떠나온 바윗덩이로 흩어져
동백숲 그늘 산새 소리 그리워 눈물 짜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향 동네 어귀 당산나무 그늘에 자리한 반석은
어떤 돌보다 수많은 사람의 서럽고 외로운 비밀을 엿듣고 앉아
지금도 그 자리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