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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대공주의 (안병욱 교수)
도산은 1927년 상해에서 대공주의를 부르짖었다. 도산이 50세이 이르러 도달한 사상이다. 대공주의는 그의 인생관(人生觀)과 사회철학(社會哲學)의 한 집약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축구단이 상해 원정을 갔을 때 도산은 그 학생들에게 대화(對話)를 하면서 대공주의를 말씀하셨다. 그 후 도산은 이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글로 설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대단히 유감된 일이다. 그러나 도산사상의 전체의 윤곽과 특색으로 미루어 우리는 대공주의의 핵심을 대체로 추측할 수 있다.
도산의 사상은 그 당시의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 상황의 영향과 추리에 따라서 벌전하였다. 도산의 사상적 발전(思想的 發展)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그의 표어로 요약할 수 있다.
무실 역행 충의 용감(務實 力行 忠義 勇敢)의 사대정신, 자조(自助)와 호조(互助), 민족전도대업(民族前途大業)의 기초 준비, 삼대자본(三大資本) 동맹저축론, 건전인격(健全人格)과 신성단결(神聖團結)의 이대 강령, 동맹수련(同盟修練), 민족개조(民族改造), 자아혁신(自我革新),인격혁명(人格革命),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사대정신과 건전인격, 신성단결의 이대강령 등은 미국에서 흥사단을 조직할 때부터 품으신 사상이요, 삼대자본동맹 저축론과 민족개조와 대공주의의 사상은 상해에 오셔서 강조한 사상이요, 자아혁신과 인격혁명의 이론은 국내에 들어와서 역설하신 사상이다.
도산이 스스로 이러한 사상과 표어를 만들어 내셨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민족경륜(民族經綸)에 관해서 탁월한 독창적 이론체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실증한다. 그는 근대말에서 현대에 이르는 최근 백여년간의 유일한 사상가였다. 도산을 다만 애국적 혁명가(愛國的 革命家) 또는 뛰어난 교육자의 차원에서만 보는 것은 그의 전모의 올바른 파악이 아니다. 도산은 먼저 위대한 사상가였다. 우리는 도산을 사상가의 차원에서 보는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 도산이 사회생활과 독립운동의 길고 고된 역정(歷程)을 겪고 50세에 제창한 대공주의란 어떠한 것인가. 도산의 대공주의는 두 측면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인생관의 원리로서의 대공주의, 둘째는 사회철학(社會哲學) 내지 정치사상으로서의 원리다. 먼저 인생관의 원리로서의 대공주의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공(公 )의 반대는 사(私 )다. 공은 ‘우리‘요, 사는 ’나‘다. 나 한사람에 관계되는 것이 사요, 우리들 여러 사람에 관계되는 것이 공이다. 그러므로 사를 다루는 태도와 공을 다루는 태도는 엄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를 다루는 태도로 공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인생만사에서 공과 사를 엄밀히 갈라놓아야 한다. 공과 사를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공사혼동(公私混同)에서 많은 악(惡 )과 폐(弊)가 생긴다. 사회기강의 혼란과 부정부패는 공을 사로 처리하는 데서 생긴다. 공인(公人)을서의 내가 다르고, 사인(私人)으로서의 내가 다르다. 사용(私用)과 공용(公用)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사리(私利)와 공리(公利), 사익(私益)과 공익(公益)은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사심(私心)과 공심(公心)은 천양지차가 있다. 공략(公略)과 사략(私略), 공무(公務)와 사무(私務), 공론(公論)과 사론(私論), 공사(公事)와 사사(私事), 공당(公黨)과 사당(私黨), 모두 다 중요성이나 가치 차원에서 결코 동일할 수가 없다. 사는 나 한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폐를 끼쳐도 나 한사람이 당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공은 여러 사람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폐를 끼치면 여러 사람이 당하게 된다. 공은 중하고 사는 경하다. 우리는 먼저 공과 사를 엄밀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공금(公金)을 사금(私金)처럼 남용할 때, 공리(公利)를 빙자해 가지고 사리(私利)를 도모할 때, 공익(公益)을 내세우면서 사익(私益)을 충족시킬 때 공심(公心)이 사심(私心)때문에 흐려질 때, 천하의 공략(公略)을 자기 개인의 사략(私略)처럼 이용할 때, 공사(公事)에 사감(私感)이 작용할 때, 공의(公義)가 사욕(私慾)으로 가리울 때 그 사회는 부패하고 그 민족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 공은 공이요, 사는 사로서 공과 사는 엄밀히 구별되고 엄정하게 처리될 때, 그 사회는 흥하고 그 민족은 번영한다. 천하만민으로 하여금 공(公)의 감각(感覺)과 사의 감각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첩경이다. 세상에 공사의 구별처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으며 또 공사의 혼동처럼 위험한 일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먼저 공과 사를 냉철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공민(公民)의 첫째 자격이다. 공중에서 가장 큰 것이 국가다. 국가를 영어로 ’republic'이라고 한다. 이 말은 라틴어 res(물건) publica(公的)가 합한 말이다. 공적인 것이란 뜻이다. 국가는 공중(公中)의 공(公)이요, 공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국가를 어떤 세력이 어떤 계금이 어떤 정당이 자기의 사물(私物)처럼 생각하고 취급하는 데서 온갖 악이 생긴다. 국가는 일인일당(一人一黨)의 국가가 아니고 천하의 국가다.
사는 나요, 공은 우리다. 사는 ‘나 사(私)‘자인 동시에 ’간사할 사(私)’자다. 사(私 )에는 간사(奸邪)한 요소가 작용하기 쉽다. 사심(私心)은 나의 마음인 동시에 옳지 못한 마음이란 뜻이다. 사리사욕은 나의 이(利), 나의 욕(慾)인 동시에 옳지 못한 이욕(利慾)을 의미한다. 천하공사에 사감(私感)과 사정(私情)이 작용하면 옳고 그른 판단이 흐려지고 만다. 무슨 일이나 공평한 판단, 공평한 처리를 하려면 사심(私心), 사리(私利), 사정(私情), 사감(私感) 등이 작용해서는 안된다. 사(私 )는 사(邪)와 통한다. 사(私)가 끼면 정(正)이 사(邪)로 전락한다. 공은 밝고 옳은 것이다. 그래서 공명(公明), 공정(公正), 공평(公平)이라고 한다. 한문에 공평무사(公平無私), 또는 공정무사(公正無私)란 말은 뜻이 깊다. 공정하려면 사가 없어야 한다. 사(私 )가 작용하면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과 사심은 양립할 수 없다. 공평하려면 무사해야 하고 무사해야만 공평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 만사에 공명정대하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나 일을 처리할 때나 공정 무사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 공민의 첫째 도덕이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정의(定義)의 여신은 눈을 싸맨 채 한 손에 칼을 쥐고 있고, 또 한 손에는 저울을 지니고 있다. 이 상징은 의미심장하다. 정의의 여신은 악을 징벌 제거하기 위해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칼을 쥐고 있다. 정의가 정의다우려면 만사에 대해서 공평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정의의 여신은 사물의 경중을 공평하게 가리는 저울을 지니고 있다. 정의의 여신이 만사에 대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면 사심이나 사욕(私慾)이나 사감(私感)에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의의 여신은 눈을 싸매었다. 눈을 싸매어야 사감이나 사용이 작용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공평하게 저리할 수 있다. 나와 친분이 있다고 유리하게 보아주고 친분이 없다고 안보아 주고, 그것은 정의의 태도가 아니다. 희랍의 정의의 여신이 칼 이외에 특히 공정을 상징하는 저울대와 무사(無私)를 염원해서 눈을 싸매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심볼이다.
사는 나 한 사람이요, 공은 우리 여러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는 작고 공은 크다. 사는 소사요, 공은 대공이다. 소사(小私 )보다도 대공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도산의 대공주의(大公主義)란 무엇이냐. 사보다도 공을 위주로 하는 태도이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공명정대하기를 힘쓰고 공평무사하기를 힘쓰는 것이 대공주의의 정신이다. 대인(對人)과 접물(接物)과 처사(處事) 즉, 사람을 대할 때나 물건을 접할 때나 일을 처리할 때나 사를 버리고 공의 정신을 가지자는 것이다. 공명정대하게 인생을 살아가자는 것이 대공의 정신이다. 도산은 1920년 1월 3일 상해에서 신년 축하회가 열렸을 때 독립운동의 방략으로서 육대사업(六大事業)을 논한 대웅변(大雄辯 )을 토하였다. 이 연설은 이틀 동안에 걸친 장장 다섯시간의 사자후(獅子吼)였다. 그는 이 강연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직원은 인민(人民)의 노복(奴僕)이지만, 결코 인민 각개의 노복이 아니요, 인민전체의 공복(公僕)이다. 그러므로 정부직원은 인민전체의 명령을 복종하려니와 개인의 명령을 따라 마당을 쓰는 노복은 아닐 것이요,
그러니까 정부의 직원으로서 사우(私友 )나 사복(私僕 )을 삼으려 하지 마시오. 그러지 말고 공복을 삼으시오. 나는 여러 사람이 국무원(國務院 )을 방문하고 사정(私情)을 논하려 사사(私事)를 택하는 일을 보았소. 이는 크게 불가한 일이니, 공사(公事)를 맡은 자와는 결코 한담(閑談)을 마시오. 이것이 심상한 일인듯 하지만은 기실 큰 일이요. 금일은 정부직원이 아들이라도 아들로 알지 말고 사우라도 사우로 알지 마시오. 사우(私友)를 위해서 공사(公事)를 해함은 큰 죄요‘
도산이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고 중요하게 여긴 정신을 우리는 이 구절에서 역력히 읽을 수 있다. 같은 강연에서 도산은 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공과 사를 가르시오’
또 도산은 독립운동기간에 서로 엄히 지킬 맹약으로서 공금을 횡령하지 못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도산은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 석상에서 통일과 대동단결(大同團結)을 강조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에 대해서 몇 가지로서 고하고자 합니다. 즉, 첫째는 과거의 감정을 망각할 것, 둘째 피아(彼我)를 일시동인(一視同仁)할 것, 셋째는 일만 표준하여 공평정직(公平正直)할 것, 넷째는 흉금을 피력할 것, 다섯째 공결(公決)에 열복(悅服)할 것 등이외다. 제군이 어떠한 이론을 진술하고 어떠한 안을 제출하든지 각각 그 자신이나 친구나 당파의 이해(利害)를 표준하여 외공내사(外公內私 )하면, 구하는 원만(圓滿)은 이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패망(敗亡)에 이를지니 그러므로 각각 자가의 이해는 절대로 희생하고 오직 일만 하는 순결한 마음으로 회의석상에서 공평(公平)과 정직(正直)을 주장하면 설혹 이세(理勢)로서 싸움의 치열함이 어떠한 정도까지 도달할지라도 아무 위해(危害)가 없고 도리어 회의 전체는 원만하여지고 대표된 자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 될 것이 외다’
또 도산은 ‘물방황(勿彷徨)’이란 강연에서 유명한 사기(史記)의 한 구절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투(私鬪)에는 겁(怯)하고 공전(公戰)에는 용(勇)하시오’
무슨 일이나 일만 표준으로 삼아야 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는 공평과 정직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겉으로는 공정한척 하면서 안으로 사심이 작용하는 외공내사(外公內私)의 태도를 취하면 모든 일이 다 패망하고 만다. 우리는 사적인 싸움에서는 비겁하고 공적인 싸움에서는 용감해야 된다고 도산은 강조하였다. 모두 도산의 대공(大公)의 정신을 표시하는 말이다. 공정과 정직은 대공주의의 핵심이다. 흥사단의 약법은 대공의 정신을 강조한다. 1933년에 처음으로 수정된 약법 제3조에는 ‘대공(大公)의 이상(理想)에 적응하여’라는 구절이 있고, 도 제5조 오대공약(五大公約)의 마지막 5항에는 ‘우리는 대공의 정신을 적극 발휘하여 민중의 행복을 위하여 분투노력하기로 맹약함’이라고 되어 있다. 도 현 약법에는 대공이란 말이 두 번 나온다. 즉, 제3조 3항에서 자주적 정신과 자치적 능력을 배양하며 사회식견과 대공의식(大公意識)을 육성하여 국민적 품격을 향상케 하는 일, 제7조 5항에서는 대공복무(大公服務)의 정신으로 국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자라고 하였다. 대공의 정신, 대공의 이상, 대공의 의식이란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하면 대공심(大公心 )이다. 커다란 대공적 정신(大公的 精神)이다. 사리사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공평정직한 태도로 공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다. 도산은 우리 민족이 오랜동안 민주적 국가 생활을 못했고 단체생활의 훈련이 없기 때문에 공익심(公益心 ), 공덕심(公德心), 공의관념(公義觀念), 공중의식(公衆意識), 공공정신이 심히 부족하고 매우 박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존ㄹㅂ과 번영을 위해서는 대공정신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도산은 진단했다. 그가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외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적 정신의 박약은 확실히 우리민족의 정신구조와 민족성의 결핍된 요소다. 단결력의 부족과 사회도덕의 문란은 대공정신의 결핍에서 온다. 민족성 개조운동(民族性 改造運動)을 외치는 흥사단이 그 기본강령 속에 국민의 삼대수련의 한 항목으로서 공민훈련(公民訓練)을 설정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공민훈련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해야할 기본훈련의 하나다.
대공주의는 사리사욕을 떠나서 공평 정직한 태도로 대인(對人), 접물(接物), 처사(處事)하려는 정신자세로서 인생관의 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대공주의의 둘째 측면은 하나의 사회철학 또는 정치사상(政治思想)의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사는 나요, 공은 우리다. 공 즉, 우리는 하나의 조직 하나의 단체 하나의 사회다. 가족, 민족, 부락, 학교, 회사, 공장, 정당, 교회, 군대, 민족, 국가, 인류 모두 크고 적은 우리라는 단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공, 즉 단체의 범위는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민족 또는 인류에 까지 확대되었다. 우리는 한 개인인 동시에 가족인(家族人 )이요, 사회인(社會人)이요, 민족인(民族人 )이요, 또 세계인(世界人)이다. 도산이 발한 대공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곧 민족이다. 민족은 여러 공(단체)중에서도 가장 큰 공이다. 즉, 대공이다. 우리는 한 민족의 품안에 태어나서 자기민족의 언어와 풍습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고 또 자기 민족 사회를 위해서 일하다가 죽는다. 우리는 민족공동사회의 일원이다.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는 조국과 시대를 선택하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민족사회에 태어난 이상, 이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 살 만한 사회로 만들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우리는 민족이라는 대공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그 당시 세계는 특히 도산이 계시던 상해는 여러 주의 여러 사상의 어지러운 난립처(亂立處 )였다. 극단한 개인주의 사상도 있었고, 또 맹렬한 공산주의 사상도 있었다. 또 세계시민주의(世界市民主義)도 있었고, 무정부주의도 있었다.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우왕좌왕 설자리를 몰랐다. 하나의 확고부동한 사상적좌표(思想的座標)가 필요하였다. 소용돌이치는 여러 시대사조 속에서 도산은 사상적 좌표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대공주의다. 도산은 이렇게 말하였다.
‘개인은 민족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의무와 인류에 대한 의무를 완수 한다’
간결한 말이지만 함축된 뜻이 깊다. 인간은 하나의 개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의무가 있고 인류에 대한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완수하는 길이 무엇이냐. 그것은 민족에 봉사하는 일이라고 도산은 믿었다. 민족에 대한 봉사를 통해서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고 또 인류에 대한 의무를 완수한다. 그러므로 민족이라는 대공에 봉사하자는 것이 도산의 대공주의(大公主義)다. 도산의 대공주의는 민족 또는 국가라는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전제주의 사상이 결코 아니다. 도산 사상의 기둥은 어디까지나 건전인격(健全人格)이요, 자아혁신(自我革新)이다. 국민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자아혁신에 의해서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그 건전한 인격들이 굳게 뭉쳐서 건전한 민족사회를 이루자는 것이다.
도산은 개체주의(個體主義)에서 출발한다. 전체주의(全體主義)는 전체가 개체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상이다. 그것은 자유가 말살되는 전체사회다. 도산의 대공주의는 개체가 자발적으로 자율적으로 민족(民族)이라는 대공에 스스로 봉사(奉仕)하자는 것이다. 나라는 자유로운 개체에서 출발하여 민족이라는 큰 공에 까지 도달하자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우선 자주독립(自主獨立)을 찾는 것이 급선무(急先務)요’
‘모든 사조를 잘 연구하여 우리 민족에 맞도록 가장 좋은 부분을 골라서 채용해야 할 것이요’
‘한분이라도 개인을 본위로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우리 흥사단을 본위로 합시다. 배우는 것도 흥사단을 위하여, 돈을 버는 것도 흥사단을 위하여 합시다. 이때는 특별히 희생적 정신을 요구하는 때외다. 이리하여 우리의 흥사단을 본위로 하지 말고 우리의 국가와 민족을 본위로 합시다. 우리 흥사단에 동지를 모집하여 단원의 수효를 증가시키는 것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흥사단 세력의 확대함을 요구함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즉 흥사단은 무엇을 하든지 온전한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희생적 인물(犧牲的 人物)이 집합한 단결로써 국가와 민족을 향하여 희생합시다’
도산의 대공주의(大公主義)는 민족(民族)의 자주독립(自主獨立)의 완성이라는 역사의 대명제에 대답하려고 한 것이다. 흥사단 단우로 볼 때에는 흥사단이 하나의 공이겠지만 흥사단은 결국 민족이라는 대공에 봉사하는 하나의 소공에 지나지 않는다. 대공주의는 사(私)에서 부터 출발하여 민족이라는 대공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출발자는 나지만 나를 본위로 삼지는 말고 민족(民族)이라는 대공을 본위(本位)로 삼자는 것이다.
도산의 대공주의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맥맥히 살아서 작용하는 산 사상이요, 산 주의요, 산 이상이다. 대공이라는 생소한 표현에 구애되어서는 안된다. 사상의 내용과 알맹이가 문제다. 공명정대한 정신의 건립과 견고한 민족자립사상(民族自立思想)이 갈수록 요청되는 현 상황 속에서 도산의 대공주의의 사상은 우리에게 큰 빛과 뚜렷한 방향을 제시한다.
도산사상 안병욱저 1972 삼육출판사 168-177쪽 (2004.1.7 이은숙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