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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주라 함은 국선도 단전행공시 듣게 되는 가락으로서
정각도원 체지체능 선도일화 구활창생
의 16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도주와 국선도 수련
1. 서 론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을 선도주(중기단법 수련을 마치는 데 대략 2만5천번 정도 듣
게 되고 원기단법까지 마치는 데는 약 12만번 정도 듣게 된다)의 16字에 대한 의미를 고찰해 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국선도의 사상과 국선도 수련의 목적 및 국선도를 통하여 정립될 수 있는 바람
직한 인생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 본 론
정각도원(正覺道源)
국선도는 밝음을 받아 본래의 밝음에 돌아가 참여하는 ‘길’ (밝돌법) 또는 몸과 마음을 닦아 眞我
를 찾아가는 ‘길’, 자연의 이치를 내 몸 안에 구현하여 밝음을 찾아가는 ‘길’, 하늘 사람 되는 ‘길’등
여러 가지 다양한 길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국선도 수련은 한마디로 길(道)을 닦는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道란 무엇인가? 이것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정각도원’이 선도주의 첫 머리에
나오는 만큼 수련을 함에 있어서 道의 근원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 제일 우선 해야 할 일이기 때문
입니다.
道란 무엇인가? 무수히 많은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겠으나 국선도 수련을 함에 있어서 道를 세 가
지로 구분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道란 몸의 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道를 닦는다는 것은 몸의 길을 닦아나가는 것
입니다.
동양의학에서 우리 인체를 설명하는 방법 중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경락과 경혈’
론입니다. 기운이 흘러 다니는 통로를 경락이라 하고 그중 특히 기운이 집중하여 모여있는 곳을 경
혈이라 부릅니다. 특히 경락이란 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운이 상하로 흘러 다니는 종의 길
을 ‘경’이라 하고 기운이 좌우로 흘러 다니는 횡의 길을 ‘락’이라 부른다. 이 경락으로 기운이 잘 유
통되면 인체의 건강에 지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동양의학의 견해다. 국선도 수련의 첫 단계인 몸을
수련하는 정각도 단계는 이 경락에 기운의 흐름을 원활히 유통시켜 眞건강체를 얻고자 함을 주목
적으로 합니다.
한 마디로 경락이라는 몸의 길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마치 산에 길이 잘 나있어 人馬가 잘 다니다
가 인적이 점점 끊겨 길의 흔적도 없어지고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가려져 버린 옛길을 복원하는 것
처럼 우리 몸에서도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뒤 덮혀 있는 옛길을 다시 닦아 내는 ‘길’ 닦는 일이 국선
도 수련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道를 ‘몸의 길’ 이라 의미하고자 합니다.
둘째, 道란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가야하는 자신만의 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道를
닦는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을 닦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국선도에서는 정명(定命)이
라 합니다.
정명이란 말을 이야기하기 전에 生命이란 말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生(날)과 命(목숨)이
합쳐져 생긴 말로서 지난 20세기말부터 시작하여 현재인 21세기초는 물론이려니와 앞으로도 계속
세계 모든 인류의 첫째 화두로 남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어떤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
가? 그저 살아있는 목숨 정도로 의미하며 쓰고 있다. 이런 의미라면 生物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저 살아 있는 물체(生物)와는 다른 의미의 생명이라는 단어의 본
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命’자는 목숨이란 뜻도 있지만 명령이라는 의미로 더 널리 쓰여집니다. 본인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에는 모든 교과서 첫 장에 국민교육헌장이라고 하는 글이 들어가 있어서 항상 암송하
며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 중에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라는 글귀가 있다. 命을 받고 태어남 이것을 한자로 쓰면 生命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
命을 받고 태어났으며 그 命을 수행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계를 흔히 ‘먹이사슬’ 이라는 말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먹이사슬’ 얼마나 무시무시하
고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말인가? 약육강식의 먹고 먹히는 사슬관계, 단지 약자가 되어 먹히고 강자
가 되어 먹는 것으로 보지 말고 먹히는 자는 자기 몸을 보시하는 것이고 먹는 자는 먹히는 자의 개
체수를 조절해 주기 위해 먹는 것 - 우리는 먹이사슬 위 단계의 생물이 사라져서 아래 단계의 생물
의 개체 수가 크게 증가하여 생태계 균형이 깨어지는 현상을 종종 본다 - 이라고 보면 둘
다 각각의 命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현상계에 나타나는 순간(자연계
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種의 유지와 진화 및 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모종의 임무(命)를 수행하
며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이 생태계의 균형을 위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임무(命)는 무엇
일까? 국선도 책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이고 그 뜻은 ‘살리는 것’이
라 한다. 그렇다. 인간의 임무는 생태계의 모든 種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물의 영장이
라는 지위를 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면 우리 인간이 그 임무를 잘 수행
하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 임무조차도 망각하고 있어 개탄할 노릇입니다.
현실에 대한 탄식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 태어난 사람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이라는 種의 역할이 살리는 것
이므로 이를 기본으로 하여 살려내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개개인 각자의 특성(命)을 잘 파악하고
계발하여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국선도에서 이를 定命完遂라 부릅니다. 우리 각자의 命을 크게
밝혀 자신이 가야할 인생의 길을 밝혀내는 ‘길’ 닦는 일이 국선도 수련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道를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 의미하고자 합니다.
셋째, 道란 우주 만물의 생성사멸의 길(법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道를 닦는다는 것
은 우주변화의 길을 닦아 나가는 것입니다.
道에 든다는 것은 큰 의미로는 우주변화의 길 또는 자연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이고 작은 의미로서
인생에 한정시킨다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공자는 나이 70에 들어서야 하는 행동마
다 모두 자연에 어긋남이 없이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변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변화라는
말은 시간을 전제로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시간을 우리 말로는 ‘때’라
고 합니다. 때를 맞춰 한치의 어긋남도 없고 더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 갈 수 있
을 때 우리 인간은 진정한 소우주요 국선도에서 말하는 하늘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어두워서, 깜깜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산길을 갈 때
촛불을 켜면 바로 주변의 길은 보일 것이고 좀 더 환한 횃불을 켜면 좀 더 멀리까지 보일 뿐만 이니
라 내 주변의 사람들도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어두운 밤을 몰아내는 태양이 뜨면 모든 것
이 다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크게 밝혀 우주변화의 길 밝혀내는 ‘길’ 닦는 일이 국선도 수련
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道를 ‘우주 변화의 길’이라 의미하고자 합니다.
불 밝히세 불 밝히세
내 몸안에 불 밝히세
안이로세 밖이로세
자존하세 겸손하세
하나로세 둘이로세
극치하세 중용하세
불변이네 필변이네
探眞하세 適時하세
불 밝히세 불 밝히세
밝은 만큼 불 밝히세
이상과 같이 세 가지의 의미로 道의 源을 覺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의 실정을 보면 이러한
것에 목적을 두고 수련하는 이가 드문 것 같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찾아오는 회원 (병을 갖고 있
는 사람, 스트레스에 시달려 지친 사람,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혹
신비주의에 빠져 무슨 도력을 탐하여 찾아오는 이는 있으나 우주와 하나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
과 높은 이상을 품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국선도의 이와 같은 숭고하
고 광대하고 훌륭한 이상을 더욱 더 세상에 알려 많은 사람들이 높은 이상을 품고 수련할 수 있도
록 해야 할 일입니다.
체지체능(體智體能)
앞 句가 깨달음의 句였다면 이 句는 實踐의 句요 實利의 句요 行入의 句라 할 수 있습니다.
실천이라는 말은 깨달음이 있은 이후에도 계속 닦고 몸으로 익혀서 몸에서 배어 나오도록 덕을 쌓
아 감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리라는 말은 깨달음이 있어도 몸으로 얻어 가지지(體得) 못한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말이고 행입이라 함은 道에 들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理入과 行入의 두 가지 가
운데 하나로서 국선도의 큰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 왔는가? 그 중 내 것이 된 것이 몇이나 있는가? 이 사회와
세상을 위해 유익함을 줄 수 있는 것을 수도 없이 배웠으나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거의 없음은 머리
로 아는 것의 헛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실을 깊이 알게 되었거나 진실로 느꼈을 때 우
리는 “피부로 느꼈다.” “뼈저리게 실감했다.” “몸소 체험하였다.”는 표현을 쓴다. 몸으로 아는 것이
머리로 아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행동을 함에 있
어서 근간이 되었던 것은 머리로 배운 것보다 살면서 피부로 느끼고 뼈저리게 각인되고 몸으로 체
험한 것이 더 많았다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머리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인 몸으로 배우고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얻어 갖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국선도입니다.
선도일화 ( 亻天 道一和)
이 句에서는 국선도가 추구하는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一和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一化가 아니고 一和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로 조화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가 된다 함은 동질성과 몰개성의 획일화
된 전체주의적인 하나가 연상되지만 하나로 조화된다 함은 이질성과 개성의 다양함을 바탕으로 하
면서 잘 어울려진 하나가 연상됩니다.
마치 아이들의 놀잇감인 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각각의 조각이 모양과 무늬가 천차만별로 다 다르
지만 제 짝을 맞춰 다 끼워 놓으면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나오는 ‘그림 맞추기’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그 각각의 조각은 따로따로 띠어 놓으면 그 조각이 갖고 있는 모양과 무늬의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전체 속에서는 그 전체를 위해서 한 조각도 없어서는 안될 의미와 역할이 주어지게 됩니다. 또 한편
으로 원하는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 짝에 맞춰 끼워 넣어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조각이 짝이 맞지 않는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경우 그 주변에 끼워 넣을 조각들과 충돌을 일
으키게 되고 그림도 완성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이와 같지 않은가? 제 본래의 몫(本分)을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의 자리에 걸치
고 앉아서 제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고 부조화된 관계로 인하여 끊임없이 충돌당
함에 따라 번민하고 괴로워하면서 또한 세상도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
가서는 서로 자신의 조각에 맞추도록 주변의 조각을 자르고 깎고 새 무늬를 칠하고 하면서 주변에
게 변화할 것을 강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를 찾는 조각이 하나
둘 점차 늘어나게 되면 희미하게나마 전체의 윤곽이 보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 짝들도
제자리를 찾아가기가 훨씬 쉬어지고 마침내는 그림 맞추기를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국선도
의 個全一如觀 사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국선도 수련을 통하여
제 모양과 무늬에 맞는 자리(本分)를 찾아 一和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구활창생(救活蒼生)
이 句에서는 국선도 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홍익인간’ 입니다. 홍익인간의 정신은 우리 민
족의 시작과 더불어 출발하였고 유구한 세월동안 잊혀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온 수십년 동안에도 시대에 따라 수없이 많은 말들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유행되었다가 사라
지곤 한 것을 보았는데 그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
면 이 말의 위대하고도 위대함을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
아 있는 말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만큼 홍익이간이라는 말은 지나온 모든 시대를 통틀어 인간의 삶
을 대변한 유일한 사상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대변하는 유일한 정신으로서 시간과 공간
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홍익인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蒼生을 救하고 살려내야(活) 합니다. 나의 삶
의 목적은 남을 살리는 데 있고 남을 살리는 방편으로 나를 먼저 살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
리기 위해서는 남을 살려야 하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살려야 하는 것으로 나도 살리고 남도
살려 내는 것이 국선도 수련의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선도를 ‘養生之道’라
부를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3. 결 론
이상에서와 같이 선도주 16字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16字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이
처럼 넓고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단전 행공시에 호흡의 길이를 맞춰 주는 노래 가락 하나에
도 이처럼 모든 의미를 함축시켜 불러 온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을 금할 길이 없으며 또한 계
속 반복하여 들려줌으로써 저절로 몸에 배이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에도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호흡 한 호흡 할 때마다 선도주의 심오한 뜻을 실어 수련에 깊이 정진해야만 하겠습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