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하나 들고
유택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고요와 함께 사는 집
둥그런 머리 위로
삐죽삐죽 자라나는
죽어도 가는 세월
그 세월을 베러간다
엊그제
베어버린 아픔
어느 새
이만큼 자라버렸네
시퍼렇게
벼린 낫으로
밑동까지 싹둑 베어버릴 것을
- 김희주(1945 - ) '벌초' 전문.
벌초를 하다보면 잡초처럼 끈덕지고 빠르게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는 세월을 보게 된다. 유택의 주인장이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는지 헤아려보게 되고 고인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을 추억해보게 된다. 시간이 지났으니 사라졌을 법한데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아픔도 아려온다. 베어도 베어지지 않고 무성해진, '죽어도 가는 세월'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시퍼렇게 벼린 낫으로 밑동까지 싹둑 잘라버려도 어느새 또 자라나 있을 추억, 아픔, 시간…….
*** 김동찬,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년 9월 8일자.
첫댓글 성묘길이 눈에 선합니다.
시를 읽다 문득
즐거운 추석을 축원하는 마음도
無常之心이 아닐까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