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하나
공자가 소정묘少正卯의 목을 따다
김 익 하
때는 기원전 496년 노나라 정공(定公) 14년.
노나라 공자가 전국을 유랑하기에 앞서 나라의 형벌을 주관하는 대사구(大司寇: 司法長官) 직에 올랐다. 직에 오른 지 7일째 되는 날 공자는 정치를 문란케 했다는 이유로 같은 대부 격인 소정묘(少正卯)의 죄를 물어 목을 베어 그 시체를 3일간 궁정에 내걸었다. 소정묘는 묘가 이름이며 소정은 대부격인 관직명이다.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즉 ‘형벌은 위로 대부까지 이르지 못한다’라는 관례가 있음에도 공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경묘 목을 친 거다. 관례까지 깨고 행한 이 형벌이 조금 과하다고 여긴 제자 자공(子貢)은 평소 그가 인망이 높은 사람으로 생각해서 공자 행위를 힐난했다.
"저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꽤나 이름 있는 사람인데 지금 스승님께서는 정사를 행하시면서 처음으로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혹시 실수를 하신 건 아닙니까?"
그러자 공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앉거라, 내 너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마(居, 吾語汝以其故).”
“천하에 큰 죄악이 다섯 가지 있으니 절도는 거기에 들어가지도 않는다(天下有大惡者五, 而竊盜不與焉).”
“첫 번째는 마음이 비뚤고 험악한 것, 두 번째는 행실이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것, 세 번째는 말이 거짓말로 변명하는 것, 네 번째는 글이(기록이) 추잡함에도 많이 아는 척하는 것, 다섯 번째는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서 은혜로운 척하는 것인데,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라도 그 사람에게 있으면 군주로부터 주살(誅殺)을 면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소정묘는 그 다섯 가지를 모두 겸하고 있었다(一曰 心逆而險, 二曰 行僻而堅, 三曰 言僞而辯, 四曰 記醜而博, 五曰 順非而澤, 此五者有一於人, 則不免君子之誅, 而少正卯皆兼有之)."
“그는 거처에 무리를 모아 패거리를 만들었으며, 그의 말은 칭찬을 꾸며 대중을 현혹시켰으며, 그 행실의 억지와 포악함은 옳은 것을 거스르고 제멋대로 굴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간악한 놈이니 제거하지 않을 수가 없는 바이다(其居處足以撮徒成黨, 其談說足以飾褒榮衆, 其强禦足以反是獨立, 此乃人之奸雄者也, 不可以不除).”
참고문헌 : 史記 <공자세가편>, 孔子家語 <始誅篇>, 순자 <宥坐篇>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무리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고사(古事)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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