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김 익 하
미미하게 가벼운 존재에 대한 사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룰루 밀러(Lulu Miller) 저 정지인 옮김
2021년 12월 17일 곰출판
299쪽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의 논픽션 데뷔작인데,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자들의 전기와 회고록을 참작해서 과학적인 모험담을 바탕으로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굳건히 버텨내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냉철한 시선으로 우화적인 서술 형식으로 그려내서 독자들에게 경이로운 일깨움을 선사한다.
이야기 도입부는 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총장이자 어류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 Jordan. 1851∼1931)의 전생의 행적과 학문적 영향을 추적 조명하면서 풀어간다. 그의 유년기뿐 아니라 성장과 두 번 결혼생활, 그리고 어류 분류학에 광적인 관심과 성취의 결과물로 스탠퍼드대학교 총장으로 출세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그의 생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오류를 남긴 족적에 비판적인 관점으로 가감 없이 전달한다.
저자는 집념과 집착은 한 인간을 성취 경지에 이르게 하지만, 맹목적인 목적의식 때문에 아집과 독선적인 인간으로 발전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 결과 과학적으로 이룬 성과와 그 명성과 별개로 진실이 왜곡되고 고의적으로 은폐되어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생명을 가진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외눈박이 과학자의 미숙한 오류로 본질이 왜곡되어 부당하게 평가받는 ‘그 혼돈’에 관찰자로서 분노를 드러낸다.
저자는 20세기 들어와 쓰레기통에 폐기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에도 애나와 메리라는 두 여성의 피해 사례를 들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생학은 육종 등의 방법으로 인간의 유전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 개량하여 인류 전반의 유전적 품질(genetic quality)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 과학적 신념이자 유사과학 이론이다.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적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유전자 차별, 인종차별로도 분류되며 적합한 예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널리 알려져 있다.
우생학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을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으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그 제창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읽은 다윈의 고종사촌인 영국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Sir Francis Galton.1822∼1911)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런던에 상경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자들을 조사하면서,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엄청난 범죄를 보고 이들을 격리하고 그들의 피(더러운 피)가 사회에 안 퍼지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비롯됐다. 하긴 고대인들은 자식에게 부모의 피가 흐른다고 믿어 '혈통', '핏줄, '순혈' 같은 말에 연연했다.
저자는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만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허가하고, 그 밖의 사람들이 자식을 가지려고 시도하면 투옥하고 가차 없이 엄격하게 처벌하는 공동체’에 관한 SF 소설인 『캔트세이웨어 우생학 칼리지(The Eugenic College of Kantsaywhere)』를 소개하면서 우생학의 피해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미국 버지니아 주 정신박약자 수용소에서 열아홉에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한 애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곱 살에 ‘부적합자’로 인류에 대한 위협 인물이란 판정을 받고 수용된다. 아이 낳기를 열망하는 애나, 그러나 열아홉에 강제로 불임 시술을 받는다. 여자로서 기능을 거세당하여 삶의 모든 걸 박탈당한 애나는 같은 수용소에서 용케 불임 수술을 면한 메리와 그가 낳은 아이를 자신이 못다 해낸 여성 역할을 대신하려는 듯 헌신적으로 돌본다. 현장을 방문한 저자가 애나게 물음을 던진다. ‘(그러한 고통을 당하고도)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애나가 답을 미처 못 하자 메리가 대신 답한다. ‘나 때문이지!' 자신이 속한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사람은 큰소리치는 유명한 우생학자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열성이라 판명을 받은 애나와 같은 무명한 사람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자신들이 받은 빛을 더욱 환하게 반사하는 사람들이라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민들레 이론(Dandelion of principle)을 덧붙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도 있다. 약초 수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는 민들레가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하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p226-227)
그리고 저자는 분기학(分岐學 cladistics)의 허점에도 분노를 드러낸다.
분기학 또는 분지학(分枝學)은 1980년대에 등장했다. 분기학이란 이름은 ‘가지(branch)를 뜻하는 그리스어 ’클라도스(klados)'에서 왔으며, 분기학자들은 곧 이 가지를 추적하는 사람들이다. 창시자는 카를 폰 린네(Prof. Dr. Carl von Linné (1707∼1778) 라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그는 현대 생물학에서 흔히들 쓰이는 종속과목강문계(種屬科目綱門界)로 나타내는 생물 분류 단계를 제안한 현대 생물 분류학의 아버지로 지칭 받는 인물이다. 생물을 크게 동물과 식물로 나누어 서로 동일한 형질을 가진 생물끼리 묶어 분류했으며, 현재 생물 학명에 쓰이는 속명과 종명을 이어 쓰는 이명법(二名法 binomial nomenclature)을 제창했다.
그런데 분기학자들은 인간의 직관과 무관하게 모든 생물의 진화 나무에서 정확히 어느 가지에 속하는 일에 ‘사생결단(?)’하는 사람들이라 비판한다. 저자는 모든 생물의 분류 작업을 인간의 직관을 무시한 채 세분한 데이터를 AI와 같은 기계에 맡긴다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전제하며 그들의 편협한 작업 오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사다리 상층에 자리해서 영장류 인간의 위치에 부정적인 관점을 드러내기도 하며 세상에 이름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그 본질에 맞느냐고. 인간이 벌이고 개미라 명명한 것들이 저들의 소통할 때 인간이 벌이고 개미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듯이.
인간이 모든 생물의 영장류라는 말에도 다음과 같은 인용으로 의구심을 나타낸다.
‘동물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 인간보다 우수할 수 있다. 까마귀는 인간보다 기억력이 좋고, 침팬지는 인간보다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고 주혈흡충(住血吸蟲 Schistosoma)은 인간보다 일부다처제 비율이 높다. 지구에서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 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서 곡예를 해야 한다.(p205)'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말이 떠올랐다. ‘하찮고 의미가 없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주위 미미하게 가벼운 생물에 무관심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런 생활로 타성에 젖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