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교야박(楓橋夜泊)
이동민
당나라 때 장계라는 시인이 지은 유명한 시다.
중국시를 감상할 때는 소동파가 한 말이 떠오른다. 좋은 시를 읽으면 시가 말하는 정경이 그림이 되어서 떠오른다. 풍교야박이라는 당시를 배울 때에 떠오르는 그림은 서정성이 짙게 풍겨나는 한적한 강변에 외로이 떠있는 배다.
月落鳥啼霜滿天 달이 지고 까마귀 우니 서리 낀 날 하늘은 차겁고
江楓漁火對愁眠 강가에는 단풍나무, 강에서는 고깃배가 등불을 비추니 근심으로 잠 못이뤄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에 있는 한산사에서
夜半鍾聲到客船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가 내가 잠못 이룬 객선까지 들려오누나.
이 시를 읽으면 분위기가 고적하고, 외로움이 짙게 느껴진다. 더구나 고소성 밖이라고 하였으니, 아득히 먼 곳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다. 물위에 떠 있는 고깃배에서 비추이는 불빛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나는 객선은 강가 나루에 메어져 있고, 고깃배는 물 가운데서 등불을 비춘다는 느낌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한산사를 찾아갔다.
풍요야박 시를 배울 때부터 적막한 분위기가 짙은 서정성을 풍겨준다면서, 나도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림 속의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었다.
한산사가 여행길에 들어있는 중국 관광단에 참여했다. 한산사가 있는 소주는 평야만이 끝없이 펼쳐질 뿐 산이라고는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한산사는 당연히 산속이 아니고 들판 가운데 있다. 강 가운데에 등불을 비추는 고깃배도 없었다. 아니 있을 리 없었다. 한산사 옆으로 좁은 운하가 지날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고 종소리 대신에 중국사람들의 소란한 말소리가 귀를 아프게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참이나 기다려서 입장을 했다. 절의 담을 따라 난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한뼘 넓이의 강물이 나오고, 그 위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풍교라고 했다. 수양버들나무가 높이 자란 옆에 한 그루 단풍나무가 멋쩍은 듯이 서 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을 위해서 배 몇 척이 메여져 있으나, 고적한 분위기에 아무리 젖어 보려 해도 빠져들지 않았다.
요즘의 중국은 경제가 번성하고 살기가 좋아진 탓인지 옛 문헌에 나오거나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꾸며 놓았다. 역사적 유적지라면 옛 맛이 나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그래선지 중국 관광을 하고 난 뒤끝에 남는 것은 언제나 씁쓸함이다.
지난 번에 황학루에 갔을 때도 그랬다. 마치 현대식 건물처럼 높이 솟아 있는 황학루에서 이백도 붓을 던졌다는 그런 시가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너른 강물 저 너머 앵무주에는 새들이 날고, 황학은 이미 날아가버려서, 무심히 떠있는 구름만이 나그네의 수심을 더해 줄 뿐이다. 날아간 황학은 언제 돌아올꼬? 이런 시다.
황학루의 제일 높은 층까지 올라가서 바라본 풍경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건물과 아파트였고, 앵무주 대신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자동차만이 어지러이 달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황학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고 느꼈다.
고소성 밖의 한산사는 바로 다리 옆에 있었고, 그나마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니 답사를 공연히 왔다는 기분이다. 차라리 오지 않고 풍교야박 시나 읊었다면 멋진 그림 속에서 신선처럼 노닐 수기 있었을텐데, 이제는 풍교야박 시를 읽으면, 소음으로 뒤덮인 현대 도시의 모습만 떠오리라. 지난날, 시를 읽고 그렸던 옛 그림은 날아가버린 황학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
차라리 한산사에 가지 않았으면.
첫댓글 정말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어디 한산사와 황학루 뿐이 겠습니까? 이백의 망여산폭포나. 소동파의 적벽이외에도 옛 문헌에 나오는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수없이 찾아가 바도 온전히 보존된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명문장에 사기당한 기분을 이렇게 잘 서술하여 줘서 고맙습니다.
나도 이런 내용의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으나 문장력이 없어서 표현을 못했는데, 대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한산사에 아니 가기를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