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當仁하야는 不讓於師니라 <論語 衛靈公 35章>
흔히 세상 사람들은 <논어>에 권리 사상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하지요. 또한 권리 사상이 없기 때문에 문명국에서는 <논어>를 온전하게 교육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자 오해일 뿐입니다. 역시나 孔子敎를 표면적으로나마 관찰하면, 더러는 권리사상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기독교를 정수로 한 서양 사상과 비교하자면, 분명히 권리 사상이 박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아직껏 孔子를 참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처음부터 종교로써 세상에 나왔지만 유교는 불교, 기독교와는 전혀 다르게 성립했던 것입니다. 특히 공자가 살던 시대에 중국의 풍습은 그 무엇보다도 義務를 우선시하고 權利를 나중에 두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공자를 두고 2천년 후인 오늘날, 전혀 사상이 다른 기독교와 비교하는 것은 이미 비교가 불가능한 것을 두고 굳이 비교하는 형국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이 논의는 처음부터 그 뿌리를 잘못 찾은 게 아닐까요? 하여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 공자교에는 권리 사상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바를 조금 披瀝(피력)해 작은 힘으로나마 이 사회를 약간 깨우쳐 볼까 합니다.
論語主義는 ‘자신을 다스리는’ 게 가르침의 취지입니다. 사람은 당연히 이런저런 처신을 해야 한다. 혹은 사람은 응당 저렇게 해야만 한다고 옴니암니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것을 소극적인 방식으로 ‘仁道’라고 설명하지요.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러한 주장을 널리 보급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사람들을 반드시 천하에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의 진의를 미루어 헤아려 보면, 공자는 처음부터 종교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설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공자에게 교육 관념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공자에게 정권을 장악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선정을 베풀면서, 富國安民을 하고 王道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공자는 애초에 經世濟民을 하는 정치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공자가 경세가의 입장으로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門下生들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해 공자는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었던 것이지요. 門下生들도 다양한 계층을 이루었기 때문에 질문도 상당히 광범위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政治에 대해 묻고, 어떤 학생은 忠孝에 대해 묻고, 어떤 학생은 禮學이나 文學을 묻기도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問答을 한데 모으자, 이윽고 <論語> 20편이 엮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는 만년인 68세에 이르기까지 <詩經>을 연구하고, <書經>을 주해하고, <易經>을 편집하고, <春秋>를 지었습니다. 공자는 단지 68세 이후 세상을 뜨기 전 5년간만을 포교적인 교학에 전념한 걸로 보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권리 사상이 결핍한 사회에서 생활을 한 것이지, 결코 종교적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한 게 아닙니다. 공자의 교육학에서 권리사상을 확연하게 강조하지 않은 것은 실제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에 반해, 완전히 권리 사상에 충실한 가르침이지요. 원래 猶太(이스라엘)와 이집트 등의 나라 풍습은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강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들의 사회에서 수많은 예언자들이 나왔죠. 기독교의 선조인 아브라함부터 기독교의 2천년 역사 동안 모세라든지, 요한 등의 예언자들이 나왔습니다. 또는 예언자풍의 성왕들이 나와 치세를 펼쳤습니다. 혹은 국왕들은 일반적인 신처럼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시대에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로마 총독은 예언자의 말을 믿고 자신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는 이가 나타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근처의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다른 곳으로 다행히 도망을 쳤기 때문에 재앙을 면할 수가 있었지요. 기독교는 실제로 이렇게 잘못된 몽상의 시대에 태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교리가 명령적이고 권리 사상도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愛)과 <논어>가 가르치는 어짊(仁)은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의 차이가 있지요. 가령 예수교 쪽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다른 이에게도 베풀어라”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논어>는 己所不欲 勿施於人(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을 가르칩니다. 문득 보면 공자는 거의 義務만 신경을 쓰고 권리 개념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두 가지 말은 목적이 종국에는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종교로써, 또는 경문으로써는 예수교의 가르침이 좋습니다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써는 공자의 가르침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제가 높이 신뢰하는 것은 공자 사상은 奇蹟(기적)을 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간에 기적이 매우 많이 있지요. 예수가 十字架에 못이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소생한 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물론 이러한 기적이 우수한 인간의 몸에 결단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우리가 단언을 할 수야 없지만, 보통 사람들의 지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만약에 그러한 기적을 완전히 믿는다면, 혹여 미신에 빠진 것은 아닐런지요. 일단 이와 같은 기적을 하나하나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우리의 지식은 전부 종적을 감추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요? 주술(呪術)에 의해 물 한 방울이 의약품 이상의 효과를 내고, 질냄비에 삶은 쑥 한 포기가 치료 효과를 내거나하는 믿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마침내는 커다란 재앙으로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일본은 문명국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지만 엄동설한에 흰 옷을 입고 신사(神社)에 참배를 한다든지, 콩을 뿌리고 움직이지 않는 신을 부르며 액운을 쫓는 풍습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신의 나라라고 힐난을 받아도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인 것이지요.
하지만 공자는 기적이라든지 미신이라든지 하는 것은 믿을 수 없기에 논하지 않았습니다.
“子不語 怪力亂神”
(공자께서는 괴상한 일, 무력을 사용하는 일, 덕을 어지럽히는 일, 알 수 없는 귀신에 대한 일, 이 네 가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라고 답했다.)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지켜나갈 도의에 힘쓰고, 귀신을 존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공자를 믿는 이유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조건이 아닐런지요. <논어>에 권리 사상이 들어가 있는 증거는 “當仁不讓於師”(인을 행함에는 스승께도 양보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도리가 올바르다면 곧바로 자신을 관철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스승은 당연히 존경해야 하지만 “仁”(어짊)을 실천함에는 스승님일지라도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 말씀에 생동하는 권리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요? 사실 오직 이 구절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논어>의 각 장을 섭렵하다 보면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澁澤榮一(시부사와 에이치에) 지음 노만수 옮김 논어와 주판에서 拔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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