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說】
이 글은 강원(講院)의 중요한 교재인 《치문경훈(緇門警訓)》『잡록(雜錄)』「제현송구(諸賢頌句)」에 실려 있는 <방거사송(龐居士頌)>의 칠언절구 두 송(頌)입니다. 이 거사의 송은 수행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담겨 있기에 예로부터 중요시하여 수행자의 필독서 중 하나인 《치문(緇門)》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법당의 기둥이 6개인 관계로 처음의 2구(句)는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생략된 2구를 살려 올려 봅니다.
但自無心於萬物 단자무심어만물 다만 온갖 만물에 스스로 무심하면
何妨萬物常圍繞 하방만물상위요 만물이 늘 에워싼들 무슨 방해 되겠는가.
鐵牛不怕獅子吼 철우불파사자후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나니
恰似木人見花鳥 흡사목인견화조 마치 흡사 목인이 꽃과 새를 봄과 같네.
단자무심어만물(但自無心於萬物)
다만 온갖 만물에 스스로 무심하면
무심(無心)이란 대상에 대하여 집착이 없는 마음입니다. 분별이나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 등이 없어 어떤 대상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이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만물(萬物)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만물이 무상한 것이고 공(空)한 것임을 통찰하여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만물(萬物)은 만경(萬境)과 통하여 일체의 대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온갖 만물, 어떤 대상이든 무심하다면...
하방만물사위요(何妨萬物常圍繞)
만물이 늘 에워싼들 무슨 방해 되겠는가.
방(妨)은 '방해 할 방'이고, 위(圍)는 '둘레 위', 요(繞)는 '두를 요'입니다. 만물이 항상 위요(圍繞)해도 즉 둘레를 감싸고 있어도 무슨 방해가 되겠냐는 뜻입니다. 여기서 만물은 어떤 대상이나 경계들을 말합니다. 주변이 아무리 혼탁하고 시끄럽더라도 혹은 어지럽더라도 내 마음 무심하다면 어떤 방해가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수행자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경계를 만나도 휘둘리거나 방해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철우불파사자후(鐵牛不怕獅子吼)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나니
철우(鐵牛)란 옛날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쇠로 소를 만들어서 황하(黃河)의 재변(災變)을 진압했다고 합니다. 선가(禪家)에서는 공(空)을 뜻하는 부동착(不動着), 또는 정식(情識)을 여의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무심(無心)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파(怕)는 '두려울 파'입니다. 사자후(獅子吼)는 사자가 포효(咆哮)하는 소리입니다. 사자가 한 번 포효하면 뭇짐승들이 두려워하고 엎드리듯이, 사자의 포효처럼 두려워할 상대가 없이 펼쳐지는 부처님의 걸림없는 설법을 사자후라 합니다.
쇠로 만든 무쇠소는 사자가 아무리 우렁차게 포효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유심(有心)해야 동함이 있는데 무심하면 부동(不動)입니다.
흡사목인견화조(恰似木人見花鳥)
마치 흡사 목인이 꽃과 새를 봄과 같네.
흡사(恰似)는 '거의 같다, 비슷하다'는 뜻이고, 목인(木人)은 나무로 만든 사람 나무사람을 말합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사량분별을 넘어선 경지에 비유합니다. 주로 나무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함에 의하여 무분별로부터 나오는 분별의 경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전구의 철우(鐵牛)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식(情識)이 없는 나무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보더라도 맑고 고운 미성을 가진 새를 대해도 무심할 뿐입니다. 무쇠소가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에도 꿈쩍 않고 무심하듯이 나무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木人本軆自無情 목인본체자무정 목인은 본래 자체 마음이 없음이라
花鳥逢人亦不驚 화조봉인역불경 꽃과 새가 목인 봐도 또한 놀람 없다네.
心境如如只遮是 심경여여지차시 마음 경계 여여하여 다만 이러하다면
何慮菩提道不成 하려보리도불성 보리도를 못 이룰까 어찌 염려하리오.
목인본체자무정(木人本軆自無情)
목인은 본래 자체 마음이 없음이라
여기서 정(情)이란 '마음'을 말하는데 범부들의 미망심(迷妄心)의 견해인 정식(情識)을 말합니다. 목인은 본래 자체로 정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화조봉인역불경(花鳥逢人亦不驚)
꽃과 새가 목인 봐도 또한 놀람 없다네.
새들은 경계심이 많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달아납니다.그러나 목인은 부동(不動)이라 꿈쩍도 하지 않고 고요하니 꽃과 새도 역시 목인을 봐도 놀라지 않습니다. 겁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심경여여지자시(心境如如只遮是)
마음 경계 여여하여 다만 이러하다면
심경(心境)은 마음 경계를 말하고, 여여(如如)란 산스크리트어 tathatā의 역어로 '진실한 경계,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합니다. 모든 법의 평등한 자성(自性) 또는 이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평등(平等)ㆍ부동(不動)ㆍ부전도(不顚倒) 등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차(遮)는 '막을 차'인데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일 때는 '이 자'로 읽습니다. 여기서는 대명사 '저(這)'와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지자시(只遮是)는 '다만 이러할 뿐이다. 다만 이러하다'의 뜻입니다.
마음 경계가 다만 목인처럼 여여하고 무심하다면...
하려보리도불성 (何慮菩提道不成)
보리도를 못 이룰까 어찌 염려하리오.
보리(菩提)는 범어 bodhi의 음사어로 깨달음의 지혜를 말합니다. 각(覺)ㆍ지(智)ㆍ도(道) 등으로 한역합니다. 보리도(菩提道)는 범어와 역어를 함께 쓴 말로 깨달음을 말합니다. 보리는 무상(無上)의 불도(佛道)를 말합니다.
이 마지막 구는 마음 경계가 다만 목인(木人)처럼 여여하고 무심(無心)하다면 공부가 다 익은 것인데 달리 불도를 이루지 못할까 무슨 걱정이며 보리도를 못 이룰까 어찌 염려하리오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옛부터 선지식들은 도를 구함에 무심을 강조하지 않은 분들이 없습니다.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墻壁 可以入道]
수행자가 밖으로 치달리는 갖가지 반연을 좇아 마음을 쓰다보면 번뇌와 망상에 끄달리게 되고, 안으로 마음 산란한 마음과 혼침으로 헐떡거린다면 어느 날에 도에 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으로는 삼아승기 겁을 닦아도 도와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그래서 밖으로 향하는 반연을 끊고, 안으로 산란한 마음과 혼침이 없도록 마음을 장벽(墻壁)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벽은 목인(木人)과 같이 일체 인연을 다 쉬고 일체 번뇌망상이 다 끊어진 무심의 경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래야만 도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무심해지면 도와 멀지 않은 것이니 보리도를 이루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방거사는 몸으로 출가는 안 하셨지만 심출가(心出家)하신 분으로 이렇게 사신 분입니다.
방거사(龐居士 ?~808)는 당나라 때의 거사로, 마조(馬祖) 선사의 제자입니다. 거사의 성(姓)은 방씨(龐氏)이고, 이름은 온(蘊)이며, 자(字)는 도현(道玄)이며, 방옹(龐翁)ㆍ방공(龐公)ㆍ방노(龐老)ㆍ노방(老龐) 등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양양(襄陽) 사람으로 아버지는 형양(衡陽 : 湖南) 태수(太守)를 지냈습니다. 가족 대대로 유학(儒學)을 숭상하였으나, 거사만이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슬하에 일남일녀를 두었는데 가족 전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젊어서 단하(丹霞) 선사와 함께 유학(儒學)을 공부하고 함께 과거를 보러 가던 중 행각하는 스님을 만나 벼슬에 뽑히는 것보다 부처가 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회심(回心)하였고 두 분이 행각승의 지시에 따라 마조 선사의 회상을 찾아갔고 합니다.
정원(貞元) 초년(785~804)에 석두 희천(石頭希遷) 선사를 친견하고 선법(善法)의 단서를 얻었는데, 석두 선사가 "승으로 살고 싶은가? 속으로 살고 싶은가" 물었을 때 "스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자 선사는 출가시키지 않고 세속의 거사로 남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에 마조(馬祖) 선사 문하에서 수행하며 종지를 깨닫고 그 법을 이었다고 합니다. 거사는 이렇게 탁월한 두 종장(宗匠)의 가르침에 힘입어 종풍을 드날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마경(維摩經)》에서 부처님 재세시의 유마(維摩) 거사가 부처님의 제자들을 압도하고 문수보살과도 당당히 대론하였듯이 방거사도 당대(唐代)의 유명한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사들의 날가로운 기봉을 꺾거나 당당하게 맞서 중국의 유마거사라고 명성을 날렸습니다.
당(唐) 정원간(貞元間)에 수만 수레에 해당하는 가재(家財)를 배에 싣고 동정(洞庭)에 있는 상강(湘江)에 저어가서 그것을 전부 물 속에 가라앉혀 버렸다고 합니다. 수행자가 재산을 탐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라 합니다. 재산을 버릴 때 사람들이 말렸지만 "내가 원수라고 생각하고 버리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겠는가? 재물은 몸과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원수이다."라고 했다 합니다.
그리고는 성 밖에 녹문산(鹿門山) 아래 작은 집을 마련하여 처와 자녀와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대바구니나 조리 등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꾸려갔다고 합니다.
매일 같이 법담을 나누려는 사람이 방문하여 본분(本分)의 문답을 펼치는 속에 처자식들도 모두 종지를 깨달았는데 특히 딸 영조(靈照)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거사는 임종에 즈음하여 영조에게 말했습니다.
"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보고, 오시(午時)가 되면 알려다오."
그러자 영조가 급히 알렸습니다.
"해가 벌써 중천에 왔습니다. 거기에 일식입니다."
거사가 문 밖으로 나가 해를 보고 있는 사이에, 영조는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 합장한 채 좌망(坐亡)하였습니다.
이에 거사가 웃으며 말하기를
"딸 녀석이 꽤 민첩하구나![我女鋒捷矣]"
그래서 거사는 입적할 것을 7일을 연장했습니다. 그때 고을의 자사(刺史)인 우적(于頔)이 병문안을 오자, 거사가 말했습니다.
"다만 온갖 있는 것들을 비우기를 원하고[但願空諸所有]
결코 없는 것들을 채우지 마십시오.[愼勿實諸所無]
부디 잘 사십시오.[好住世間]
모든 것은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 같은 것입니다.[皆如影響]
말을 마치자 우공의 무릎을 베고 천화(遷化)하였습니다. 유언에 따라 화장해서 재를 강물에 버렸습니다. 승속(僧俗)이 애도하면서 '선문(禪門)의 방거사는 비야리성의 유마 거사가 다시 온 것'이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시게(詩偈) 300여 수가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방거사는 법답게 여여하게 이렇게 무심 도인으로 살다가 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첫댓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
오랜만에 주련을 올리게 되어 송구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지난 번 세정사 순례기를 올리면서 밝힌 바와 같이 세정사를 찾은 이유는
이 주련을 소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글자를 좇아 해석을 해 보았지만 이 글 속의 본뜻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올릴 때 크기 조절이나 자르기가 수월했는데
지금은 잘라내기 작업도 사진 줄이기 작업도 불편하고 어려워서 시간이 엄청나게 듭니다.
모양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윤곽선 안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려면
구에디터에서 작업하여 신에디터에 소스로 올리고 있는데
사진의 경우 신에디터로 사진을 올렸다가 다시 복사하여 구에디터로 작업해 올리고 있는데
다시 신에디터에 소스로 올리면 작은 사진은 원본을 유지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확대되는 바람에 난감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련의 주련사진은 작업을 해놓고 사진을 다시 찍어서 올리니
주련사진이 이그러져 있네요.
사진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 주련을 즐감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귀한 주련 해석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속가 생활을 하시면서 큰 깨달음을 성취하신분들은
(한국의 부설거사님, 인도의 유마거사님, 중국의 방거사님)
전생에 어떤 수행을 하셨는지 사뭇 궁금해집니다.고
주련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_()()()_
@보현 삼대거사 외에도 중국에는 傅大士라는 분이 유명합니다.
이 분도 중국의 유마, 혹은 미륵의 화현이라 칭할 만큼 훌륭한 분입니다.
大士는 보살의 이칭이니 얼마나 훌륭하면 이렇게 부를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