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 조규남 파주아버지학교 지도목사님 (2011. 08. 27)
이것은 앞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 줄 놀라운 '은총의 표적'(시86:17)입니다.
현대인 특징 중의 하나는 눈물이 말랐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감정이 메말랐고, 정서적이지 못 하다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울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약하게 눈물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솔직히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옵니다.
퍼석퍼석한 마음은 웬만해선 울 정도의 감동도 없습니다. 그냥 무덤덤할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울 수 있는 사람은, 눈물이 많은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그 안에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어, 감정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리라는 기대감때문일 것입니다.
올 해 일곱 살인 엘라는 아주 깜찍하게 귀여운 나의 큰 손녀딸입니다.
고양시 행신동에 있는 JoyfulChurch(기쁨이있는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큰 아들 조지훈 목사가 그 교회의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 교회에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가 열렸는데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기도회 때
참석한 모든 어린이들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크게 통곡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물론 엘라도 위의 동영상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십자가를 붙잡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동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 반응이 내 안에 있었습니다.
뭔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 편으로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찡~ 하니 아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라 표현치 못하면서도 그러나 결론적으로 한 가지만 말하라면 그것은 기쁨의 충만입니다.
자신의 어린 딸이 십자가를 붙들고 통곡하며 우는 모습을 보고,
아들은 아비된 마음으로 무엇을 느낄까 하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아비된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그 딸의 아비가 함께 우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쏟는 아들과 손녀의 사진은 내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 벅찬 감동입니다.
이렇게 울 수만 있다면 이들은 가장 행복한 아빠와 딸이니까요.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일곱 살 엘라가 그토록 통곡하며 회개한 내용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식들이라 하더라도 그 깊은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분위기에 고조된 일시적 감정이든,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이든 다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정서 분위기 그 자체가 좋게 여겨질 뿐입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과 야곱으로 3대에 걸쳐 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제 이 아이는 자신이 접했던 놀라운 이 사건을 평생토록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의 문전에 있을 때 십자가를 기억하고, 아빠의 기도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 줄 놀라운 '은총의 표적'(시86:17)입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쏟으며 회개 기도를 하는 엘라의 모습을 보며 잠시 지피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 지난 날의 죄가 너무 커서 내 회개 기도로도 다 고하지 못 해 사함받지 못한 죄들을
저 어린 손녀딸이 할아버지를 대신해 속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어린 것이 무슨 그리 죽을 죄를 많이 지었기에 통곡하며 울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아비의 축복입니다. 아비의 또 그 아비의 축복입니다. 축복의 역류현상입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하니 아침 저녁으로 초가을 분위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엊그제 다녀 온 치악산의 새벽은 발꿈치로 이불을 끌어오게 하였습니다.
가을이 오면 나는, 나는.... 생각나는 무명 시인의 시가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나는 꽃이어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날려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가을이 오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테니까요.
Abraham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