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 조규남 파주아버지학교 지도목사님 (2011. 08. 20)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이 깨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의 음악, <Beethoven's Silence>는
멕시코 태생의 서정적 피아니스트로 세계에 알려진 Ernest Cortazar가 악성 베토벤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해 낸
악성 베토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인간적 안타까움으로 베토벤을 위해 작곡하여 헌정한 이 음악은
그가 베토벤의 침묵의 세계를 이해하고 베토벤이 일생을 통해 치루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장미의 가시처럼 그 밑에 숱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 꽃피워진 것들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아픔 없이 눈물 없이 그리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 없이 이루어진 일이 있을까요?
베토벤은 그 대표적 상징입니다.
음악을 통해 환희의 벅찬 감동으로 다른 사람들의 청각 세계를 열어주고 있는 그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일은 없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현실처럼 엄청난 고통은 그에게 더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흠모하며 칭송합니다만, 사실 다윗의 생애처럼 불행한 사람 또한 없습니다.
다윗은 일개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의해 이스라엘의 2대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목동의 신분을 떠나 왕좌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릴 때쯤부터 그의 고통은 시작됩니다.
나라와 왕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웠건만 오히려 왕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숱한 난관을 거쳐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왕위에 오른 후 다시 시작됩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적은 외부에 있어 이 기간
그는 그 연단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후 그의 적은 자신 안의 탐심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자신의 충복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탐내어 저지른 간음과 살인
그리고 이러한 죄의 결과에 의해 죄의 씨앗이었던 어린 생명의 죽음...
더 나아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한 고통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가장 가혹한 치욕의 형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여 전쟁의 승리가 말병거의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잠시 망각하는 헛된 교만에 빠져 수많은 백성을 죽게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원했던 성전 건축을 자신의 손으로 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겨 주어야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가 대부분 기록했던 구약성경의 시편(Paslm)은 거의 모든 내용이 고통의 탄식과 참회로 점철돼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철저히 자신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위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이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다윗의 이 고통,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 침묵의 비밀은 소망의 빛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베토벤의 임종에 대한 기록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는 임종시 빛이 들어오는 방안의 커텐을 가려 달라고 하며 어둠 가운데 쓸쓸히 죽어갔다고 합니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의 음악은 눈을 통해 그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두웠던 청각의 세계처럼 마지막엔 시각의 세계마저 차단하고 말았습니다.
기독인의 입장에서 안타깝게도 그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다는 기록은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그의 침대 위 주변에서 그의 영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찬양을 부르는 천사들의 음성을 영혼의 귀를 열고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게 안타까운 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듣지 못한 베토벤의 침묵의 세계,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들을 수 있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시39:9) 다윗의 침묵의 세계,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어떠한 종류의 침묵이건 인간의 침묵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귀를 열어 들어야 할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천재지변의 재앙들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 진노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인간의 고통 가운데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는 그분의 사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이 깨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입을 열어 호령을 발하시면 천지의 산천초목이 두려워 떨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베토벤의 침묵이 깨어질 때 장엄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듯,
다윗의 침묵이 깨어져 탄식이 터져나올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침묵이 깨어질 때 우리는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얼음 펭귄의 침묵 - 곧 따뜻한 바람이 불면 그것들은 녹아내릴 것이고 침묵을 깰 것입니다.
AbrahamJo
* 아래 첨부파일 통해 Beethoven's Silence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