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가노(三姓家奴)'란 용어... 사실은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대사였다.
|'삼성(三星)'이라는 글로벌 기업과는 전혀 무관한
최근 '삼성가노(三姓家奴)'라는 말을 언급한 인물(왼쪽)과
이 말을 처음 했다고 알려진 인물의 드라마 속 모습(오른쪽).
‘삼성가노(三姓家奴)’.
'삼국지연의도병풍(三國志演義圖屛風)', 조선 19~20세기 초, 종이에 채색,병풍 각 : 171.2×53.3cm | 화면 각: 128.6×46.2cm, 4폭 병풍, 창덕 6510,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삼국지연의》는 선조 연간에 유입된 이래 민간은 물론 궁중에서도 가장 유행한 연의소설(演義小說)이었다. 국왕들이 《삼국지연의》의 일화를 그린 그림을 자주 어람(御覽)했던 사실이 《열성어제(列聖御製)》에 실린 숙종(肅宗, 1674~1720 재위)과 영조(英祖, 1724~1776 재위)의 시에서 확인되는 점과,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명으로 화사(畵師) 김덕성(金德成, 1729~1797)이 제작한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에 《삼국지연의》의 일화가 수록된 정황은 이를 반영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삼국지연의도》 는 모두 4폭 병풍 형태이며 전반적인 크기도 비슷하다. 병풍마다 불발기창이 있는 것을 볼 때, 장식적인 목적뿐 아니라 실생활을 위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화면의 소재와 도상이 여러 병풍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정형화된 초본(草本)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 병풍의 화면 배치 순서가 《삼국지연의》 속의 사건 전개 순서와 일치하지는 않는데 훗날에 순서가 뒤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각 폭의 화면에 지그재그형의 사선 구도가 사용되었다. 산과 암석은 선명한 녹색으로 칠하였으며, 외곽은 파란색 선으로 규정하였다.
제1폭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하다(死公明走生仲達)', 제2폭은 '주유가 적벽에서 크게 싸우다(周公墐赤壁鏖戰)', 제3폭은 '제갈량이칠성단에서 남동풍의 제를 올리다(七星壇諸葛祭風)', 제4폭은 '가맹관에서 장비와 마초가 싸우다(葭萌張飛戰馬超)'이다.
삼국지도병풍(三國志圖 屛風), 광복이후, 종이에 채색, 35×86cm, 삼척시립 2405, 삼척시립박물관
삼국지도 병풍(三國志圖 屛風)’(부분), 삼척시립박물관 소장
최근 정치권에서 갑자기 불거져 나온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썼는지는 이미 숱한 정치 기사가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건 물론 삼성(三星)이라는 글로벌 기업과는 전혀 무관한 말이다.
출전은 삼국지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사(正史)인 ‘삼국지(三國志)’가 아니라 대하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되겠다. 중국에서는 ‘삼국연의’라고 한다. 삼국지 중에서도 저 유명한 호로관(虎牢關)과 사수관(汜水關) 전투 장면이다.
후한 말(後漢末) 십상시의 난(十常侍 亂)이 일어나자 동탁(董卓)은 수도 낙양으로 입성해 황제를 바꾸고 정권을 잡는다. 이제 동탁을 토벌하자는 각지 제후들의 근왕병 연합군이 낙양으로 진군하는데, 동탁의 선봉장인 화웅(華雄)이 사수관에서 무용을 떨치자, 제후 중 한 명인 공손찬 휘하의 수염 긴 말단 기병이 난데없이 나타다더니 혼자 출전해 술 한 잔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 온다. 그가 바로 관우(關羽)였다. 그러고 나서 이번엔 연합군이 호로관으로 진군했는데, 그때 동탁 휘하의 굉장한 장수가 한 명 등장한다.
'삼국지연의' 속 여포를 그린 삽화.
바로 여포(呂布·?~198)였다.
이 장면이 ‘삼국지연의’ 5회에 나온다. 공손찬(公孫瓚)이 직접 여포와 싸우다 도주했고 방천화극으로 등을 찔릴 위기에 처했을 때 ‘둥근 눈동자에 고리 눈을 하고 호랑이 수염을 치켜세우며 장팔사모를 다잡고 나는 듯이 말을 몰아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장비가 등장할 떄 관용구처럼 늘 따라붙는 묘사 문장이다. 여기서 장비는 이렇게 외쳤다.
“세 가지 성을 가진 종놈아, 게 섰거라(삼성가노휴주·三姓家奴休走)! 연인(燕人) 장비가 여기 있다!”
중국 드라마 '삼국'에 등장하는 장비.
장비와 여포가 5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고, 관우가 달려들어 다시 30여 합을 싸웠어도 승패가 가려지지 않아 유비가 나서자 지친 여포는 그만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는 유명한 장면이다.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원래 여(呂)씨였던 여포(呂布)가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의 양아들이 돼 정(丁)씨가 됐고 다시 동탁(董卓)의 양자로 들어가 동(董)씨가 됐다는 의미이다. ‘여呂·정丁·동董’이라는 세 가지 성(姓)을 다 가진 천한 놈이란 뜻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와 관우는 늘 점잖은 문장으로 대화하지만, 장비는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으로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관우가 유비를 ‘형(兄)’이라고 부르는 반면 장비는 곧잘 ‘꺼거(哥哥)’라고 부른다.
그런데, 과연 장비가 여포에게 ‘삼성가노’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사실일까?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동탁이 군사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가 권력을 독점할 때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 병주자사 정원이었다. 동탁은 정원의 양아들이자 심복인 여포의 절륜한 무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그 유명한 적토마를 몰래 선물해 여포를 포섭하고, 여포는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을 새 양아버지로 받아들인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스토리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사서(史書)에는 여포가 정원의 측근으로서 우대를 받았다고 나온다. 하지만 정원과 여포는 상관과 부하 관계였을 뿐 양부와 양자였다는 내용은 없다. 여포의 거듭된 배신을 좀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소설적 장치일 뿐이다. 적토마 얘기도 소설에서만 나온다. 다만 여포가 ‘동탁을 아버지로 모시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장비의 저 일갈은 어떻게 된 것일까. 삼국지 애독자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장비는 저 상황에서 실제로는 절대로 저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저 상황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장비의 삼성가노 발언’은 허구이다. 유비·관우·장비가 동탁 토벌 연합군에 참여한 사실이 정사에 나오지 않고, 전투에 참여했다 해도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록된 것이 없으며, 당시 전투 중 장비가 여포를 만날 일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출정하는 관우에게 술을 건네는 애니메이션 '요코야마 삼국지'의 한 장면.
술 한 잔 식기 전에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것이다.
그럼 화웅은 또 어떻게 된 것일까? 관우와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라 손견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비 삼형제가 여포와 일전을 겨뤘다는 얘기도 당연히 소설에만 나오는 지어낸 얘기다. ‘여포가 관우·장비와 2대1로 싸웠는데도 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무공이 뛰어난가’를 운운하는 것도 다 소설 속 캐릭터를 두고 하는 말일 뿐이다.
소설 속에선 화웅(華雄)이 처음 사수관으로 나올 때 당초 여포가 군사를 이끌고 가려고 했는데, 화웅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라고 말한 뒤 자신이 출전한다. 저 정도 수준의 군사라면 여포까지 나갈 것 없고 본인이 처리해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화웅이 한 말이 아니라, 실은 이보다 수백년 전 공자(孔子)가 무성이란 마을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제자 자유에게 한 말이다. 마을이 잘 다스려지는 것을 보고 ‘너는 일국의 재상 정도는 해야 할 인물인데 이런 작은 마을이나 다스리고 있다니 되겠느냐’라는 안타까운 속마음을 실어 말한 농담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삼국지연의’에서 실제로 칼을 쓰는 무장들의 대화에 나오게 되니 나름대로 그럴듯해졌다.
중국드라마 '삼국'에 등장하는 여포. 방천화극을 든 채 적토마를 몰고 있다.
이후 여포가 다시 동탁을 배신하고 그를 죽였다는 소설 속 설정은 사실이었다. 정사에선 여포가 동탁의 시비(侍婢)와 정을 통한 뒤 이 사실을 동탁이 알까 걱정하던 차에 사도 왕윤이 그에게 접근해 동탁을 죽이자고 말한다. 여포가 동탁과 ‘부자 사이’임을 말하자 왕윤은 “죽을까봐 걱정하면서 어찌 부자 관계를 운운하느냐”고 반문했다. 드디어 여포는 입궁하는 동탁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다.
그런데 ‘시비’라니? 춘추시대 월나라의 서시, 한나라의 왕소군, 당나라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이라 일컬어지는 왕윤의 수양딸 초선은 어디로 간 걸까? 4대 미인 중에서 실존 인물은 3명뿐이었다. 초선은 소설 속에만 나오는 가공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일본 작가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는 동탁이 죽은 뒤 초선이 자결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요시가와 삼국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국내 여러 번역본이 이 설정을 차용했는데,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서도 이 얘기가 아주 처절하게 묘사됐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묘사된 동탁, 초선, 여포.
세월이 흘러 군웅의 한 명이 된 여포는 하비 전투에서 조조에게 패해 포로가 된다. 부하에게 배신당했다는 소설 속 설정과는 달리 실제 여포는 부하들에게 ‘나를 죽여 내 목을 가지고 항복하라’고 했으나 아무도 말을 듣지 않자 스스로 나가 항복했다고 한다. 소설보다는 상당히 기개 넘치는 말로였다.
이문열 삼국지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여포의 마지막 장면이 있다. 여포는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나를 부하로 삼아 천하를 평정하라’고 말한다. 조조는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옆에 있던 유비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유비가 여포에게 자비를 베풀 것으로 짐작했으나, 유비는 ‘조조가 여포마저 얻으면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이라는 생각에 냉정한 어조로 뜻밖의 말을 한다.
“정건양(정원)과 동 태사(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제서야 여러 차례에 걸친 여포의 배신을 되새긴 조조는 여포를 죽인다. 유비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포가 조조에게 살려줄 것을 청하고, 조조가 유비에게 이를 묻고, 유비가 이런 대답을 했으며, 조조가 그 말을 듣고 여포를 죽인 것은 모두 정사에 나오는 사실이다.
결국 여포를 죽게 한 것은 정원과 동탁으로 대표되는 그의 주군에 대해 여러 차례 반기를 들었던 여포 자신의 ‘배신의 이력’이었던 것이다.
자, 다시 ‘삼성가노’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여포가 사실은 세 가지 성(姓)을 지닌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이런 말이 역사에 기록된 것도 아니며, 그 말을 했다는 사람도 그 시점에 그 현장에 있었을 리 만무하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말일까? 아니면 그런 말이 당시에 실제로는 없었다고 해도, 그 말이 가리키고 있는 당사자는 숱한 배신을 저질렀으며 결국 그 배신 때문에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어넣은 것이 사실이니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이것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형편없는 욕설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현대에 그린 말 탄 고선지 초상화.
현대 중국어에서도 그렇지만, 과거 상대방을 ‘가노(家奴)’나 ‘노(奴)’라고 지칭하는 화법은 ‘이런 종놈의 ××’ 정도에 해당하는 최악의 비하어였다. 당나라 때 고구려 출신의 장수 고선지가 전공을 세우고 조정에 직접 보고를 올리자, 그를 시기한 강(羌)족 출신의 상관 부몽영찰은 ‘개 창자를 씹을 고구려 ××(啖狗腸高麗奴)’이란 아주 심한 욕설을 하는데, 여기서 ‘××’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노(奴)’였다. 부몽영찰은 이어서 ‘노(奴)’가 들어가는 더 심한 욕을 하지만 강도가 너무 심해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이에 대해 고선지(高仙芝)는 항변하는 대신 아주 절제되고 인내심 어린 언어로 ‘내가 이 자리까지 오른 것은 당신 덕분이다’라며 부몽영찰(夫蒙靈樽)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해 줬는데, 역사서에 남은 두 사람의 말을 보고 후세인들은 과연 어떤 판단을 했을까.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종종 고상해 보이는 ‘사자성어’를 찾아 적시에 써먹어 유식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네 글자로 돼 있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 그럴듯한 고사성어는 아니다. ‘삼성가노(三姓家奴)’는 단기천리(單騎千里), 비육지탄(髀肉之嘆), 삼고초려(三顧焦廬), 수어지교(水魚之交), 고육지계(苦肉之計), 괄목상대(刮目相對), 칠금칠종(七擒七縱), 읍참마속(泣斬馬謖), 국궁진췌(麴窮盡膵), 육출기산(六出祁山) 등 삼국지에서 유래된 다른 사자성어처럼 깊은 뜻을 함축한 성어라기보다는 그냥 욕이라고 봐야 할 말이다. 만약 이런 욕설이 원래의 어감(語感)을 잃은 채 무분별하게 사용되거나, 발화자 스스로 도덕성에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더욱 곤란할 것이다.
◦ 단기천리(單騎千里) : 말 한 필로 천리를 내달리다. 관우가 하비에서 고립하게 되자, 關公三約(관공삼약)을 내걸고 투항한다. 조조가 온갖 금은보화를 써서 유혹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침내 유비의 행방을 알아차린 관우가 곧바로 유비에게 천리길을 달려간다. 이 모습을 보고, '단기천리'라 하게 되었다.
◦ 비육지탄(髀肉之嘆) : 허벅지 살을 탄식한다는 뜻. 허송세월에 대한 자기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삼국시대의 영웅 유비가 형주의 유표 밑에서 식객 노릇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날 유표의 공관에 초대되어 술대접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변소에 갔다가 자기의 넓적다리에 유난히 살이 찐 것을 보았다. 술자리로 돌아온 유비가 눈물을 흘리니 유표가 까닭을 물었다. "나는 전쟁터에서 말안장을 떠난 적이 없어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소. 허나 요즘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이처럼 놀고만 있으니, 넓적다리에 살이 다시 붙었소.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 벌써 이렇게 늙었는데, 해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을 슬퍼하고 있었소이다."
◦ 삼고초려(三顧焦廬) :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는 뜻으로,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그 일에 힘씀을 이르는 말이다.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로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한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 임금과 신하(臣下) 또는 부부(夫婦) 사이처럼 매우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이르는 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親)한 사이를 일컫는 말.
◦ 괄목상대(刮目相對) : 오지(吳志)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삼국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손권(孫權)이 그의 장수 여몽(呂夢)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을 나무라자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다. 후에 노숙(魯肅)이 찾아가 전과 달라진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워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한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하였다.
◦ 칠금칠종(七擒七縱) : 일곱번 사로잡아 일곱번 놓아주다. 상대방을 마음대로 다루거나 쥐락펴락 한다는 의미이다. 三國志(삼국지) 촉지(蜀志) 諸葛亮傳(제갈량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 촉(蜀)나라의 유비(劉備)가 죽고 유선(劉禪)이 왕으로 올랐을 때 제갈량이 남쪽 오랑캐를 토벌하러 나섰다. 오랑캐의 두목은 옹개였는데 제갈량은 오랑캐들이 내분을 일으키게 만들어 옹개를 죽게 했고 곧 맹획이오랑캐 장수가 되었다. 맹획(猛獲)은 아주 강직하고 용감한 남방의 새로운 영수(領袖)로, 제갈량에게 사로잡히자 비겁한 방식으로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맹획을 생포했다가 살려 보내기를 일곱 차례나 했다. 결국 강폭(强暴)한 맹획도 진심으로 승복하면서 다시는 촉한에 대항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제갈량은 맹획에게 촉한의 관직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의 벼슬이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이르렀다고 한다.
◦ 읍참마속(泣斬馬謖) :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비유하는 말이다.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말이다. 촉(蜀)나라의 제갈 량(諸葛亮)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部將) 마속을,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 국궁진췌(麴窮盡膵) : 제갈량이 두 번째로 위나라 정벌을 떠나며 후주 유선에게 올린 '후출사표'에 나오는 명문장이다. 국궁(麴窮):삼가 공경스럽게 저의 몸을 바쳐, 진췌(盡膵):수고로움을 다할지니, 사이(死而):다만 죽은 후에야, 후이(後已):그칠 따름이다.
◦ 육출기산 구벌중원(六出祁山,九伐中源) : 기산에 여섯 번 나가고, 중원을 아홉 번 어우른다는 뜻으로 각각 제갈량과 강유가 북벌을 여섯번, 아홉번 시도한 것을 뜻한다.
출처 및 참고문헌: 〈조선일보 2022년 08년 13일(토) 문화·라이프 〉종교·학술[유석재의 돌발史전(유석재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문화유산 정보〉, Daum·Naver 지식백과]
첫댓글 파리 에펠탑에서
아리랑 프레시몽
https://youtu.be/zBjjbmtdZYw
PLAY
고봉산 정현욱 님
지금 우리나라는 시골마을에서까지 몇명만 모이면 체재전쟁이 벌어저 서로 낯붉히고 삿대질하며 패가 갈리는 세상이 되다보니 진영간의 논쟁수단으로 묘한 사자성어를 만들어 공격하기 일수인데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가 여포를 두고 욕한 사자성어 三姓家奴를 三星家奴로 둔갑시켜 유포한 저의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