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발달학회]뉴스레터_2014-1교수님 글입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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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맘으로 마음의 길을 열다
한맘으로 마음 길을 열다.
Together with Your Menti!!
사람은 왜 아픈가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허했다. 전혀 자율적이지 못한 자율 학습 시간이 지루했고 교과서의 한 줄이 무의미한
간판처럼 보였으며 의미가 잡히지도, 암기가 되지도 않았다. 뇌가 막혀 버렸던 모양이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는데 정신과 의사는 "고3병" 이라는 치열하고 탁월한 진단을 내린 후 약 한 봉지를 내밀었다.
의사는 눈을 맞추지도 않은 채 무표정하고 우월한 몸짓으로 "고3병이구만!" 이라고 말했다. 약은 마음을 치유하지
못했고 나는 다시 의사를 찾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 참 편하네!! 헛웃음이 울렸다. 나는 이상과 김수영. 까뮈의 시와
소설, 좌백의 무협지를 몰래(왜 학교에서 이런 책을 읽으면 안 되는가?) 읽다가 학주에게 귀를 잡혀 끌려 나갔고
제도권 교육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국어책과 고문을 읽으며 고3시간을 보냈다.
나는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에도 아무 이유 없이, 정말 아무 이유없이 괴로웠다. 상담 과목을
배우던 어떤 수업 시간 교수님에게 무심결에 물었다. "그런데 말예요. 사람들은 왜 아프고 이 아픔이나 고통,
공허함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나요. 사는게 무엇이길래요. 그런 게 먼저 아닌가요?" 교수님은 바빴고 말이 없었다.
다른 교수님은 심리학은 과학을 지향하는 학문이라고, 증거와 실험, 조사를 통해 말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답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고 반감을 품었으며 여전히 혼자였다. 그 대신 문학과 철학, 인문학의 뒷길을 방황하다가
"사는 게 별거 없다' 라고 말해준 초등학교 중퇴 어머니의 지혜를 따라, 그러나 사실은 취직하는 게 두렵고 사회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서, 대학원을 진학했고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런 후 십수년이 지난 후 내담자와 함께 고민하고
길을 간 끝에야 " 사람은 왜 아푼가(2012)"라는 글이 나왔다. 책의 서문에서 나는 홍수 길에 만났던 달팽이에 대해 옮겼다. "탄천이 물에 넘쳤고 달팽이가 피난을 간다. 달행이의 걸음은 느리고, 집은 얇고 바스락거려 나는 그를 옮기기 바쁜데,
달팽이는 먹은 색깔 그대로의 똥을 눈다." 달팽이는 나이고 내담자이다. 무엇 때문에 아프고 그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무한히 반복되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내담자와 간
길에서 함께 묻고 얻고 서로에게 가르쳐 주었던 나의 내담자의 질문과 고민, 그 답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다시 거듭될
그 숙제들을 모아 내 안에만 파묻혀있던 나에게 껍질을 깨는 축복을 안겨 준 학생들과 연구소를 만들었다.
한맘정서상담연구소를 소개합니다.
선생이 되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눈들이 나를 보고 있었고 그 눈들은 내가 품었던 의문들을 다시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 질문에 내가 같이 해야 했고 해답을 풀어야 했다. 당황스러웠다. 아픔, 상처, 가치와 의미는 심리학의 주제가 아니고 윤리학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얻은 것을 돌려주고 함께 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한맘정서상담연구소는 졸업생들과 함께 2012년도에 갑자기 만들어졌다. 연구소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돈을 대서 설립한 자의 사유물도 아니다. 주인은 학생들이고 졸업생들이며 상담자이며 내담자들이다. 연구소는 공부하는 곳이며 사랑방이고 노는 곳이다. 나는 아푼 마음과 몸과 함께 가는 법을,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 가는 법을, 또한 상담을 공부해서도,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먹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실은 용기를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학생들에게 얻었다.
2년이 지나면서 개인 상담이나 심리검사, 미술치료, 놀이치료, 가족치료, 부부치료 외에도 지역아동센터에서 미술과 놀이치료를 중심으로 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과 개인상담을 열었고 졸업생들과 대학원생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또한 아동 청소년 및 부모와 함께 하는 바우처 사업에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다. 지금은 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2급 수련 과정을 열고 있으며 강원랜드롸 협약하여 도박중독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연구소를 거져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더 공부에 더 열의를 품게 되었으며 대학원을 진학하고 전문가의 길을 가는 졸업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개인 상담이나 치료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담의 정신과 현실 사이의 철로선은 좁혀지지 않는다. 돈 있는 사람들은 대학병원이나 비싼 큰 시설을 찾고 상담자는 운영자가 되어 버린다. 운영자는 망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조급해지고 비싼 검사와 상담을 뺑뺑이 돌리듯 하며 상담자에게 저임금을 지불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아픈데 돈이 없어 상담을 찾지 못한다. 상담 자체도 아직은 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상담에 품는 두려움이나 거부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학생들은 자신의 문제를 풀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이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일부 학회와 전문가는 내담자에게 정당한 비용을 받을 수 있는 정신과 재주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학회성원들을 모아높고 슈퍼비전비와 집단 상담료, 사례 발표비 등을 과도하게 책정해 돈을 버는 다단계 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놓지 못한다. 스무살 많은 사기꾼의 현란한 화술에 속아 결혼해 한국에 온 중국 교포가 있었다. 두 딸을 낳았지만 남편은 돈을 벌어오지도 않았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내를 폭행했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났다. 급기야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딸들에게 성추행을 범했고 아내는 놀라서 집을 나왔으며 정신과를 찾았다. 푸근한 얼굴로 내담자를 품는 내 친구 베스트 프렌드 정신과 의사는 연구소로 딸 둘을 보냈다. 치료자였던 제자는 돈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약소한 상담비는 연구소에서 지불했다)열심히 어린 딸들과 아내의 상처를 함께 했고 치료했다. 의사는 진료비도 없을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친구와 제자와 상담자들과 산다. 우리 연구소는 그런 곳이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학생들이 좋은 삶을 살며 정당하게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곳
간난하지만 상처 입은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곳
학생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는 곳
멘티와 멘토가 함께 갈 수 있는 곳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연구소이다. 연구소는 그 길 위에 있다. 학회의 멘토가 멘티와 함께 갈 수 있기를,
한맘, 더 큰맘, 하나의 맘으로 같이 마음 길을 열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