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의 고독 / 우원규
잠을 자다가 실눈 사이로 비친 검은 몸짓
맹인처럼 지팡이 두 개로 이리저리 불안을 가늠해 보며
비상경계 태세로 전진하고 있다
무엇이 그다지도 두려워
창백한 벽지 위를 저벅저벅 유령처럼 걷고 있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몸짓이지만
까만 밤을 비열하게 갉아 먹고 자라서
칠흑같은 검정은 스스로를 가두는 높다란 벽이다
한껏 펼쳐도 새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날개는 어설프기만 하다
껍질보다 딱딱한 의지는 시커먼 고독을 속으로 삭이며
냉냉한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인다
외로운 순례자는
혼자서 가는 길을 걸림없는 자유라고 되뇌며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도 동공이 아리어
갈라진 벽 틈새 속에서 쓸쓸하게 잠이 든다
한 몸짓이 이유없이 이렇게 혐오스러운 건
태초에 내려진 저주의 효력인가
(* 이 시는 제 등단작입니다.)
첫댓글 좋은 작품까지 감사합니다. 좋은 시 자주 부탁드립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