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의 하루는 잘 길들여진 배설이 꼭대기층에서 지하 정화조로 폭포수처럼 쏴아 비명을 지르며 낙하하면서 시작된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도미노로 강화되는 누추한 생의 의지들 옆방에 사는 커플은 또 하루분의 욕망을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고 TV 속에서 24시간 돌고 도는 꿈결같은 영화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닭장 속의 닭들은 밤하늘 쏟아지는 별빛을 향해 온 몸으로 절규한다 비록 갇혀 사는 죄인들이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승리의 횃불처럼 타오르는 저 하늘의 붉은 별이 되고 싶기에 천지를 뒤흔드는 그 웃음소리가 오히려 애절하다
블랙홀
고도의 이성이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는 전철 안 사람들의 가랑이 사이로 미끄러지듯 몰래 기어다니고 있는 빨간 뱀의 갈라진 혓바닥
참 예의 바르게 다소곳이 앉아있는 한 여인의 가지런하게 모인 무릎과, 무릎을 살짝 덮고 있는 짧은 치마 사이의 신비로운 암흑 속의 공간이 블랙홀처럼 시선을 빨아들여서 암흑 속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을 추적하게 한다
음흉한 신비로 가득 찬 암흑이 잔뜩 우울한 한 사내의 영혼을 잠시나마 위로해 준다 블랙홀의 중심을 곁눈으로 슬쩍 들여다보면 옆집 여자의 넋 나간 듯한 뇌쇄적인 웃음소리가 울려 나온다 아무 생각 없는 듯이 순진하게 웃어대는 파열음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숨이 넘어갈 듯한 그녀의 웃음 소리엔 페로몬 향이 난다
전철 안에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신비한 블랙홀이 여러 개 있다 각각의 블랙홀에는 독특한 향이 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옆집 여자의 얼굴은 몽환적인 페로몬 향 속에 그냥 묻어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