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 사도직 (1)
이 글은 ‘가톨릭평화신문’과 월간 ‘레지오 마리애’에 연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평신도사도직 교령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네 번에 나누어 싣는다.
I.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움
21번째 세계 공의회(또는 보편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이전 공의회들과 다르다. 첫째, 공의회 소집 동기가 다르다. 이전 공의회들은 공의회를 소집해야 할 상당하고 긴급한 사유가 있었다. 이단 문제, 교회 분열, 세속 권력의 간섭 배제, 교회 생활의 폐해 근절과 규율 확립 등등.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 소집의 특별한 동기가 별로 없었다.
둘째, 공의회 결실인 문헌들의 성격이 다르다. 이전 공의회들은 교리적 측면에서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이단에 대해서는 단죄했다. 또 교회 규율과 관련해서도 법적 규율이 주를 이뤘다.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6개 문헌들은 일반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전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제재나 단죄, 처벌 같은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다. 교리 상 오류를 단죄하고 교회 생활의 폐해를 척결하기보다 시대의 도전과 요구에 대해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신학적 종교적 답변을 제공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공의회다. 이 새로움은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가 공의회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화’ 또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는 아조르나멘토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하여 사회나 시대 상황에 적합하게 맞춰나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23세는 아조르나멘토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는 표현으로 풀이했다. 요한 23세의 눈에 교회는 정적이었고 고착화돼 있었다. 바깥세상은 변하는데 교회는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교회는 이제 오래된 공기를 갈아야 했다. 시대의 징표들을 식별하여(마태 16,3 참조) 쇄신을 이뤄야 할 때가, 아조르나멘토의 때가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었다.
1) 신앙 진리에 대한 이해의 새로움
이런 정신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 진리를 새롭게 이해했다. 진리 자체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돼야 함을 이해했다. 성경에 맛들이기, 전례의 토착화와 능동적 참여,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 참여에 대한 이해 등을 새롭게 했다. 비가톨릭교회와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식, 현대 무신론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식도 새롭게 했다.
2) 교회에 대한 이해의 새로움
공의회는 교회를 새롭게 이해했다. 이전까지 교황을 최고 정점으로 그 아래 주교들과 또 그 아래에 신부들과 부제들이 포진하고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적 교회관이 주를 이루었다. 공의회는 이런 위계적 교회관보다 교회를 신비체로 보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 자녀로서 똑같은 품위를 누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친교의 공동체로 이해했다.
3) 세상에 대한 이해의 새로움
공의회는 나아가 세상을 새롭게 이해했다. 이제 세상은 이전처럼 교회가 담을 쌓고 멀리해야 할 부정적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나름대로 질서를 갖고 있지만 그 질서는 복음 정신으로 개선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교회는 비록 현세에서 나그네 살이를 하지만 현세 질서를 하느님 뜻에 맞도록 개선하는 일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이 현세질서를 개선하는 일은 특히 평신도에게 맡겨져 있다. 평신도는 나름대로 교회 성장을 위해 봉사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속에 살면서 누룩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공의회는 이렇게 평신도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했다.
※ 신학적 원리
여기에는 근간이 되는 신학적 원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강생의 원리였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시려 몸소 사람이 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과정과 결실
1959년 1월 25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치는 예식을 집전하고 난 교황 요한 23세는 대성전 옆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추기경들에게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공표했다. 교황은 이 공의회가 ‘일치 공의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갈라져 나간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표들도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준비 과정을 거쳐 1962년 10월 11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회했다. 전 세계 2908명 교부들 가운데 2540명이 참석한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유럽이 거의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아프리카에서 379명, 아시아에서도 300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해 모두 9명 주교가 참가했다.
공의회가 1차 회기를 마친 후 1963년 6월 3일 요한 23세 교황은 82세 나이에 위암으로 선종한다. 요한 23세 후임으로 교황 직에 오른 밀라노 대교구장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추기경, 곧 바오로 6세 교황은 1963년 9월 29일 공의회 2차 회기를 개했다. 교황은 개회 연설에서 4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교회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 교회 쇄신, 그리스도교 일치의 촉진, 현대 세계와의 대화였다.
이렇게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5년 12월 7일까지 4차 회기에 걸쳐 모두 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 등 모두 16개 문헌을 공포하고 12월 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주례한 장엄미사로 폐막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폐막은 또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신호다.
[평신도, 2017년 봄(계간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