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바가노르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그로워스 단원 9명이 한겨울인 지난 1월 15일부터 2월 12일까지 현지를 방문, 농구를 비롯한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 장애아동 가정 방문 등 활동을 통해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였습니다. 단원들을 대표하여 정태용 학생의 소감문을 소개합니다.
겨울에 다시 찾은 몽골, 바가노르!
2024년 1월15일 고대하던 몽골에 도착했다.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눈으로 가득 덮인 몽골의 설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을 보고 있자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3시간의 차량 이동 끝에 드디어 바가노르에 도착했다, 지난해 7월에 바가노르를 떠난 이후 이곳을 잊고 지낸 날이 없었다. 5개월
넘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최선을 다한 이유는 다시 이곳에 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바가노르 게르촌을
마주하며 설레는 마음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드디어 불확실한 미래를 뚫고 다시 이곳에 온 것이다.
본격적인 일정은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오전 10시, 단원들은 대관한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10분이 넘어가자 학생들이 한 명씩 오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보고 단원들의 마음속엔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마주한 아이들은 지난해 7월에 만났던 중학생 이하의 학생들과 다르게 다들 너무나 크고
성숙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듦과 동시에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교육 :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
걱정을 안고 첫 번째 교육인 사회성 증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농구가 주된 목적이었던 아이들은 처음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때문에 주 교사인 류시윤 단원이 적잖게 당황을 했다. 하지만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니 아이들은 금세 수업에 열의를 다해 참여했다. 특히 제르메바트라는 학생의 수업
참여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처음엔 빨리 농구가 하고 싶어서 저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눈에도 보였다.
프로그램은 주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알고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우며 그런 이해를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굉장히 심도 있는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저렇다 하는 것이지 실제 활동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았다. 보통 미술, 게임, 글쓰기 활동을 응용
하여 위에서 열거한 효과를 끌어냈다.
마지막 날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에서 우리는 교육의 성과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 : 농구
학생들의 성숙도가 교육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 농구가 훨씬 컸다고 할 수 있다. 교재와 수업을 모두 초보자
수준에 맞췄으나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입문단계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체 또한 훌륭했다.
하지만 농구를 맡은 정태용, 권선재 단원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누르고 수업에 들어갔다.
첫 날은 우리의 예상과 많이 다른 학생들의 정확한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의 시간을 가졌다.
드리블, 슛, 속공, 3대3 경기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던져 아이들의 실력을 낱낱이 파악하고자 했다. 한 가지씩
아이들을 테스트할수록 아이들의 현재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기초가 굉장히
부족했고 꾸준한 연습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학생들에게 꽤 힘든 체력훈련을 부여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단순히 공만 몇 번 던지고
가는 것을 넘어 다른 것을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 아이들의
마음과 시간은 고된 훈련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고 짧은 시간이기에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했고, 수업을 힘든 훈련에서 조금 더 즐거운 경기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 덕분인지 수업이 끝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만족도는 올라가고 자발적인 참여는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날 학생들과 선생님들 모두 서로 끈끈해진 유대를 느낄 수 있었다.
농구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기 위해선 큰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들은 자신을 성장시키고
그 성장은 즐거움과 행복을 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서로 걷고 있는 시간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조금 더 즐기고 싶었고 현재의 시간이 즐겁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장하는 환경에 따라, 또는 각자가 걷는 시간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 다를 텐데, 아이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꽤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 교훈을 통해 다음 수업은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시간,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 장애아동 가정방문
바가노르에서 한 달 동안 꽤 많은 것을 하기로 계획을 짜두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장애아동
가정방문이다. 지난여름에 너무 짧게 끝났던 일정을 조금 심도있게 수행해보고 싶었다. 게르촌에 사는 장애아동의 가정을 방문해 여러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상황과 욕구를 직접 마주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가정방문은 총 3주에 걸쳐 진행되었다. 방문한 가정의 수는 15가구, 모든 가정에 찾아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방문했던 가정들은 모두 바가노르 게르촌의 취약계층이었다. 게르에 살기도 하고 작은
벽돌집에 살기도 하는 등, 외관은 다양했지만 생활하는 모습과 그들의 미래라는 점을 본다면 공통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애아동 가정이 처한 핵심 문제 네 가지
첫 번째, 집안에 가득한 석탄 연기.
아무리 몽골 전체가 석탄에 의존해 난방을 해결하는 상황이라지만 집 안에 있는 화로를 통해 방안을 데우는 삶을 산다는 것은 건강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방문했던 모든 가정은 석탄을 태우며 생겨난 연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번째, 일 할 수 없는 보호자.
삶을 개선하기 위해선 교육과 노동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아이를 집에 두고 떠날 수 없으며 아이를 맡길 시설 또한 굉장히 미흡하기에 24시간 아이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이런 현실에서 경제적으로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세 번째, 교육의 부재.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고 있는 보호자들 또한 자식이 겪고 있는 장애 대한 정보와 대처 방법을 얻을 수 없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네 번째, 게르촌까지 미치지 않는 국가 보건망.
우리가 만난 아이들 중에서 70퍼센트가 뇌수막염으로 인한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이런 뇌수막염은 조기에 대처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한 질병이다. 하지만 많은 아이가 주사 한 대를 제대로 조치받지 못하여 뇌수막염에 걸려 사망하거나 평생을 뇌장애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은 너무나 슬프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만 한다.
28일을 돌아보며
현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엔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특별한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랬기에 교육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확실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방향도 우리가 임의로 정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면서 앞선 우리의 생각이 참 오만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짜 교육이라 함은 대상인 학생들이 어떤 것을 배우더라도 본인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활동에서 이것을 지키지 않고 선생님들이 심어둔 목적을 투영할 때 아이들은 집중하지 못했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펼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을 땐
많은 학생들이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의 경험이 우리가 앞으로의 활동을 해내기 위해 정말 크고 갚진 시간이
된 것 같아 굉장히 기쁘다.
몽골의 취약계층 가정과 장애아동 가정의 상황이 장기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선 당장 코앞의 일들을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교육을 꾸준히 받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20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많은 추억과 좋은 감정을 쌓았다. 그 순진하고 깨끗한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여 나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고싶다.
처음 바가노르에 다시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해도 ‘무언가 할 게 더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5개월 넘는 준비의 시간을 거치고 나름의 비장한 각오를 품은 채 몽골에 다시 도착했고, 28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내며 나만의 사명감이 생겼다.
‘지금부터의 내 인생은 몽골의 기후난민과 함께 하겠다’
내가 만난 학생들이 웃을 때 나도 행복했고, 실망하며 울상을 지을 때 나도 함께 슬펐다. 나와 정으로 묶인
아이들이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내 인생에서 더는 몽골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