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넘치는 교회체제
말씀운동은 30여년의 뿌리를 내리고 한세대를 지내면서 이제는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30여년 전 녹음테이프 몇 개를 얻어 밤새워 듣던 소중한 말씀, 음질이 좋지 않은
테이프지만 생명의 끈을 이어주며 밤새 귀 기울이던 간절함은 먼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의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야생의 동물은 우리 안에 가두고 먹이를 주면 야성이 사라진다.
우리에 갇혀 인간이 주는 먹이를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과 충치로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야생의 정글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 된다. 즉 야생동물이 아닌 한낱 돌보아 주어야 살 수
있는 애완동물이 될 뿐이다.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노예이며 학대와 같다.
말씀운동은 말씀자체에 생명과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간다.
말씀운동은 성도가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는 생존과 생명운동이다. 자연에서 높고 낮은 산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들을 보면 몸에는 근력이 붙어 있고 이빨과 발톱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하여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으며 눈에는 생존과 생명이 이글거리고 있다.
그러나 말씀이 풍요로운 시대는 야생의 동물이 우리 안에서 먹이를 받아 먹는 동물과 같은
형상이다. 먹이를 찾아 거친 산악을 헤쳐 나가는 힘을 잃고 우리 안에서 안주하는 것처럼
풍요로운 말씀은 오히려 영적 신앙의 힘을 잃어버린 모습이 아닌지 서글퍼진다.
그동안 말씀운동은 부단한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많은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와서 어두운 영적
대적자와 싸우는 날카로운 무기를 갇추게 되었고 거친 광야에서 시련을 통하여 신령한 예배의
삶은 신앙의 근력을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씀의 능력을 잃어 영적전투를 멈추고
세속의 유혹과 세상이 주는 평안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 진다.
교회는 끊임없는 영적 전투의 방식으로 생존해 간다. 영적전투를 멈춘 교회는 교회로서의
생명을 잃은 더 이상 교회 아닌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전투력을 상실한 교회의 성도 역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으며 교회의 체제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이러한 대형교회는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교회는 건물의 크기나
성도의 수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영적 전쟁을 수행하느냐에 의해 교회의 생명이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살아 있는 교회는 말씀이 주는 영적 자양분을 섭취하고 힘을 키우며
견고한 체제로 대적자와 더불어 싸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체제 역시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체제일 수밖에 없다. 말씀에 대한 신령한 교육은 신령한 체제를 이루어
가며 그리스도의 반석위에 세워지는 든든한 교회가 된다.
물론 이 땅에 불완전한 성도가 모인 지상의 교회가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말씀에 붙잡혀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 가는 교회를 지향하며 체제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오직 말씀에 의해 인간의 사고와 방법이 제외된 체제, 말씀을 사랑하며 처음사랑을 버리지 않고
말씀에 붙잡히고 말씀만 믿으며 말씀만 사모하는 열정으로 이루어진 교회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동안 말씀운동 산하의 교회들이 총회와 노회의 체제에 매이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인간이 조작해 낸 체제의 종이 된 것 같다. 이제는 구습과 관습에서 벗어나 알량한 기득권도
과감하게 내려놓고 거친 세상을 헤치고 어두운 영의 대적자들과 싸워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교회의 체제를 소원해 본다.
그리고 대자연의 드넓은 들판과 험산준령을 넘나드는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는 맹수와 같이
풍요로움이 넘치는 참된 자유가 있는 체제를 두손 모아 기도드린다.
- 언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