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열 글쓰기와 토론 레포트

얼굴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신체 부위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손이다. 이것은 손이 예민한 피부 조직을 가진 것과 동시에 노동의 수고로움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로 손등에는 무수한 시간의 강이 흐르고, 강바닥에는 세월의 자취가 흔적을 새긴다. 손의 눈금은 주인의 은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말로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의미를 잃어버리는 내면의 이야기들을 소리도 없이 축적해 간다. 그것은 배출되지 못한 앙금의 찌꺼기일 수도 있고, 표현하지 못한 권력에 대한 상승 욕구일 수도 있다.  손은 수없이 많은 신경과 뼈,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근육으로 이루어진 동시에 얇고 연한 겉피로 덮여있어 정교한 작업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구조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최신식의 손 대체품들은 완성도나 견고함에 있어서 결코 숙련된 장인의 손끝을 대체할 수 없다. 더불어 손이 주는 아날로그적 향취도 한몫한다.  손의 말단부인 손가락 중 약지는 특히 온도에 민감해서 탕약의 온도를 잴 때 약지를 넣어보아 온도를 가늠한 것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찾는다. 반면 검지는 질감에 민감한 편이다. 태어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조카는 낯선 물건을 접할 때마다 검지로 꾹 눌러보아 재료의 질감을 파악한 후 안전한 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혼반지를 왼쪽 약지에 끼는 이유를 아는가? 이 풍습은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 손가락에서 나온 특별한 정맥인 ‘베나 아모리스(vena amoris)'가 사랑의 근원지인 심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낭만적인 전설을 차치하고서라도 약지의 제한과 구속의 속성은 결혼의 상징성과 묘하게 부합한다. 왜냐하면 약지는 다른 손가락에 비해 움직임의 가용 범위가 좁은 편인데다, 그로 인해 반지가 빠질 가능성도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역사상 가장 크게 도약한 계기 중 하나로 도구 사용을 들곤 한다. 이는 손의 자유에서 기인한 것으로 인간의 손은 도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직접 도구를 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많은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거대한 가치를 선사한다. 그러나 손의 상징적 의미는 오히려 힘이나 지배, 즉 어떤 이의 영향권이나 권한이 미치는 범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표현한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문구에서 그 가치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즉, 자구적 의미만을 놓고 보면 손은 시장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하는 존재이나 문구 전체를 고려할 때 그것은 오히려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 정반대의 표현이다. 손의 실용적 기능이 자유의 가치를 낳고, 그 자유가 다시 다른 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가 손의 구속성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반영하게 된 것이다.  손은 음성 언어로는 부족한 감정이나 상황을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며,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 이미지를 실어 나르는 손짓은 침묵의 예술 언어이다. 악수라는 행위는 손과 손이 마주침과 동시에 손의 악력, 온기, 감촉 등을 통해 서로의 느낌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를 동반하며, 궁극적으로 상대와의 정서적 합일에 의한 교감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처럼 손을 통한 교감은 공상과학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외계인과의 조우 장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종교 의식이나 명상에서도 손의 동작을 통해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고, 영적 세계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통로로써 이용한다. 그들에게 손은 영적인 힘을 상징하며, 신성시 여겨진다. 교회 의식 중 하나인 안수 기도는 성직자가 병자의 이마에 손을 얹음으로써 교감을 통한 치유를 갈망하는 행위이다. 나 역시 어릴 적 할머니께서 ‘내손이 약손이다’ 하며 만져주시던 그 거칠지만 따뜻하고, 주름과 굳은살이 가득한 투박하지만 편안했던 그 손의 감촉을 더듬으며 너무나 그리운 할머니와의 영혼 교신을 꿈꾼다.                                    2012. 3. 19  p.s. 너무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