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양의 싸움 - 주여 우리는 당신을 갈망합니다.
다니엘 3:13~28, 시편 25:1~10,
계시록 18:21~24, 마태복음 10:16~33
대림절 첫째 주일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마지막으로 창조절기가 끝나고,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성탄을 고대하는 대림 절기에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이리와 양의 싸움이 펼쳐지는 현장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리가 주님 오심을 더 고대하겠습니까? 양이 주님 오심을 더 고대하겠습니까? 그건 당연히 양들입니다. 성탄은 양들이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리와 양의 싸움, 참 절묘한 표현입니다. 우리 시대의 싸움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주신 요한계시록 18장 21절 이하는 이리를 누구로 표현했습니까? 바벨론 제국입니다. 그 당시로 보면 만만한 세력이 아닙니다. 세계를 제패하는 가장 강력한 나라입니다. 지금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중국이 그런 제국들입니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제국세력들이 자기 논리로 재편해서 모든 이익을 흡수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만듭니다. 예전에는 일제가 그랬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그렇습니다. 그런 제국세력들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민중들을 수탈하는데, 부역세력들이 앞장서서 민중의 고혈을 짜냅니다. 그런 바벨론 제국과 같은 강력한 세력을 놓고 성경은 이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세력들과 상대해서 싸우는 양들의 현실, 참으로 고단합니다. 그렇게 보면, 보입니다. 대통령 하나를 끌어내리기 위해 싸우는 전투가 아닙니다. 그 세력들 또한 제국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합니다. 일제 친일부역자들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매국노들이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맺어서 한반도 침략의 발판을 깔아줍니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 <사드>를 강제로 배치해서 미국의 이익에 복무합니다.
록히드마틴이라는 무기제조회사를 최순실이 만났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무조건 밀어붙이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누가 되었든, 그 세력들은 나라니 국가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국민이 하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이리는 생리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그 부역세력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죽든지 말든지 자기만 살려고 하는 반생명적인 세력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친일부역세력들을 반민특위로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승만의 방해공작으로 흐지부지되면서, 그 세력들이 대통령도 되고 그 딸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세력들이 재벌이 되고 경찰이 되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반을 장악하고 그들의 세상을 만들었으니, 결국 친일세력들이 집권하는 치욕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잔재청산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런 잔재들을 청산하려고 나선 세력, 싸우는 국민은 힘이 약한 양 같습니다. 상대가 쉽지 않습니다. 피를 흘리는 전투가 됩니다. 온 국민이 나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거리에서 촛불집회를 해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다립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늘의 기운입니다. 오늘 98장에서 예수님 오소서를 간절히 부른 이유도 그것입니다.
예수님 오소서, 임마누엘 우리 주, 이곳에 오셔서 기도 들어 주소서, 능하신 주께서 크신 일을 행하사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랬습니다. 200만 양들이 나가서 비를 맞으며 하는 전투이지만,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달라고, 그 기운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 우리의 역사 물줄기를 바꾸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오늘 본문에 보면, 부역세력들, 총독과 임금들이 너희를 제국의 세력에 넘겨줄 터인데, 그런 위기에 처할 때, 핍박이 올 때, 그 때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증거 할까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의 영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국의 세력과 그 부역세력들을 상대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본질이고 대림절의 의미입니다. 대림절은 그런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 분이 오셔서 이리와 싸우는 양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고 이 시대를 역전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과 혼돈의 시대에 국민들은 참 지도자, 참 메시아, 정말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을 위해 자신을 던져줄 사람,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 대망사상이 깊은 나라입니다. 남의 나라 노예로 430년이나 핍박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로 모세가 등장했습니다. 왕조 시대에 고통을 받을 때 예언자들이 메시아 자리를 대신해 주었습니다.
그런 메시아 대망사상은 국민이 힘들수록, 국민이 핍박을 받을수록 깊어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희망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성탄트리를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캐럴 몇 곡을 더 부르기 위해 길거리를 장식하는 기독교의 문화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너무 팍팍하고 도저히 그냥 앉아있을 수 없어 횃불을 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이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를 보낸다, 이리 가운데로 파송하신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리 가운데 파송하려면 이리를 이기려면 누가 가야해요? 사자나 호랑이나 힘이 센 동물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약한 동물 양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양들이 가서 이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죽기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런 세상에 양을 보낸다고 하셨을까요? 게다가 두 가지를 주문합니다. 하나는 지혜롭게 하라, 다른 하나는 순결하게 하라는 주문입니다. 여러분, 양으로 가서 싸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순결하게 싸워야 합니다. 지혜롭게 싸워야 합니다. 양들은 지혜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싸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혜와 순결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요? 지혜롭게 한다는 것이 순결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것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합리화할 수도 없습니다. 양이 이리와 싸우는 일입니다. 순진한 자와 영악한 자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지혜롭지 않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순결하지 않고는 이겨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순결성을 유지하되 지혜롭게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비겁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용기를 보십시오. 그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절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화형 시킨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더 강력하신 분이시다, 그렇게 고백하고 저항합니다. 그래서 실제 풀무 불에 던져 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몸도 상하지 않았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으며 옷도 타지 않았고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오히려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제국의 왕도 굴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다시 시작되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정말 오늘날 제국의 이리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용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먼저 우리는 교회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사명이 왕적 사명, 예언자적 사명, 제사장적 사명이 있는데, 그 중에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특히 권력자가 되는 왕의 불의와 잘못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고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둘째는 교회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도 바울이 위의 권세에 순종하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권세에 순종하지 않고 저항하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경적인 척 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사회적 상황에서 보면, 권세는 권력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모든 권력은 누구로부터 나와요?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이 권력입니다.
그래서 권세에 순종하라, 그 말은 국민의 심부름꾼이 대통령과 공무원은 국민의 권세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은 97%가 하야를 원하고 퇴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공무원이 그런 국민의 권세와 요구를 거슬러 오히려 국민권력에 저항하고 청와대를 거점으로 농성 중에 있습니다. 국회와 법무부와 검찰청과 경찰청 등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이미 국민은 권력을 거둬들였고, 대통령에서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권력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요청입니다. 주님의 오심, 성탄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에서 공적 생애의 취임식을 통해 당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년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주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민중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이뤄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런 나라를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길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진리의 촛불을 듭니다. 그 거룩하고 영적인 싸움에 신앙의 이름으로 나섭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일어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