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2 - 주의 입성을 찬양하라 / 돌들이 소리쳐서라도
스가랴 2:1~13, 시편 80~1~2, 8~13
로마서 11:25~32, 누가복음 19:28~40
대림절 둘째 주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어린 나귀 새끼를 협조 받아서 타고, 군중들의 연호를 들으며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셨습니다. 군중들은 앞을 다투어 자기 겉옷을 벗어서 입성 길에 깔았습니다. 입성 중에 제자들은 그런 주님을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이것은 시편 118편 26절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읊으며 노래하고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그 시대의 가장 문제가 되는 모순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입니다. 거기서 무슨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것과 대결을 펼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로 보면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는 근본 문제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성하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제자들과 군중들은 그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 진군에서 새로운 희망을 봤습니다. 기존의 종교에서, 기존의 율법에서 찾을 수 없었던 희망이 보였습니다. 기뻐서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것을 못마땅해 하면서 저런 말 하는 사람들을 왜 꾸짖지 않습니까? 라며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요구와 달리 꾸짖기는커녕, 만일 그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 하셨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군중들과 제자들을 두둔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볼 때는 그 환호와 찬양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매우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를 바리새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이, 사역을 완성하는 십자가 행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주님이 왜 예루살렘에 오르시고, 거기서 무엇을 하시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지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참으로 자기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왜 필요한지, 저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이 오히려 자기들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보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예수를 보고 찬양하지 그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군중들이 자리를 깔고 제자 그룹이 찬양하는 장면에 대해서, 만약 저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누가 되었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찬양받아 마땅한 행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늘의 평화가 이 땅에 내려앉는 절체절명의 순간, 하늘의 구원이 이 땅 가운데 임재 하는 순간이 바로 성탄임과 동시에,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탄 때에도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라고 외쳤고, 지금 예루살렘 입성 순간에도 시편 말씀을 인용해서 제자들이 그 사역의 의미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은 누가 외쳐도 외쳐야 하는 ‘카이로스’적인 시간입니다. 돌들이 외쳐도 외쳐야 하는 그래서 마땅히 찬양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데, 심지어 돌들까지도 아는데, 초등학생들까지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는 모르고 있는 겁니다. 물론 성탄이 세계적인 문화가 당연히 캐럴을 부르고 찬양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었지만, 그런 문화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분의 예루살렘 입성이 갖는 의미를 바로 인식해서, 깨달아서 하는 찬양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지요?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이 갖는 의미를 바로 알고 찬양하고 있는지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 26절에서는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처럼, “시온으로부터 해방자가 나와서 야곱의 후손을 모든 불 경건에서 돌아서게 하리라.” 70인역 이사야 59장 20절, 21절 말씀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야곱의 후손들, 지금의 믿음의 후손들을 구원하기 위한 해방자의 발걸음입니다. 27절은 그래서 그들의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전히 복음의 적이 되어 복음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로마서 편지를 받는 사람들, 즉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수용해서 유익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이 갖는 의미, 그 복음성, 그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거부하고 저항했던 차원과는 다른 의미의 진리를 받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도 전파되어 여러분들이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라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그런 하나님의 선물과 부르심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결코 철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절대로 어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해서 여러분들에게도 옮겨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부하자, 복음 전파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눈을 돌렸고, 그 결과 하나님의 약속의 복음, 그 사랑의 복음이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는데, 그들은 그 복음을 수용하고,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돌고 돌아 다시 그들에게도 갈 것입니다. 복음의 고장에서 거절당한 복음이 다시 이방인에 의해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자비를 베푸시려고 온갖 불순종을 다 참아오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거부하면, 거절하면, 저항하면, 하나님을 돌들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드러내고 찬양하며 그 의미를 확인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며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마땅한 바, 주님의 입성을 겉옷을 펼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 십자가와 부활 생명의 의미와 본질을 알아차리고 찬미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래서 우리에게 너희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 말씀을 증언하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찬양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르셨습니다. 겸손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예루살렘 입성이지만 우쭐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왕의 입성이고 하늘의 영광과 평화의 입성이지만, 권력자들처럼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그 힘을 악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제 3자의 이익을 구한 것도 사적 용도로 쓴 겁니다. 주님은 오히려 겸손하셨습니다. 권력을 포기했습니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로 했습니다. 사랑과 자비로 이루는 하나님 나라, 그 역사적 장면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이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예루살렘의 도성의 폭과 길이가 얼마나 넓어야 하고 성벽은 어디에 쌓아야 하는지 측량하려고 가는 것이다, 그렇게 천사가 해석해 준 다음에 다른 천사가 나서서 해석합니다. 저 젊은이에게로 달려가서 예루살렘에는 사람과 짐승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벽을 둘러 쌀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생명이 회복되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당신 스스로가 성벽이 되고 화염이 되어 그 많은 생명들을 모두 회복시키고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라, 오라, 그 북녘 땅 바벨론을 탈출해서 오라, 제국을 탈출해서 오라, 이집트를 해방하여 온 것처럼 해방군으로 오라, 내가 너희를 사방으로 흩었지만, 이제 다시 너희를 온 천하에서 불러 모으겠다, 이제 탈출하여 시온으로 오라, 내가 성벽이 되고 화염이 되어 너희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해치는 자는 나, 여호와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른 자이기 때문에 자기 눈이 찔린 것처럼 인식하고 내가 직접 개입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개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 주 설교 말씀에서 증언한 것처럼 이리 떼는 바벨론과 같은 제국 세력이지만, 그런 이리 떼를 주먹으로 쳐서 멸망시키고 너희를 해방시킬 것이다, 이제 나와서 시온으로 오라,
내가 너희의 해방자가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루살렘 사람들아 너희는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여라, 그랬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해방하여 같이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해방의 날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되면, 온 세상의 주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래서 군중들과 제자들이 알아차리고 환호하고 찬양합니다. 우리 또한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바로 주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첫댓글 돌들이 소리쳐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뻐하고 찬양할 것이다. 왜? 예루살렘 입성은 그 당시 근본적인 모순의 현장 종교와 정치의 야합 현장이었기 때문에, 그 모순의 현장을 도전하러, 그래서 모순을 뒤엎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주의 입성은 민중들에게 희망의 발걸음이다. 그것을 민중들이 몰라서 하지 못하고 제자들이 외면한다면, 자연의 돌까지라도 참여하여 외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