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김성춘
틈이 고맙다
숨길을 터준다
숨쉴 수 없는 틈은 죽음이다
날숨과 들숨의 틈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틈은 쪼개면 쪼갤수록 또 다른 틈이 생긴다
문과 문 그 틈새로
캄캄한 틈에 달빛과 별빛이 오고
꽃잎과 꽃잎 틈으로 벌과 나비 오고
악수하는 손과 손 틈 사이
입술과 입술 틈 사이
달콤한 사랑의 틈이 온다
새벽 다섯시와 새벽 네시 오십구분 오십구초 그 틈새
푸른 새벽 찾아 온다
틈을 사랑하는 나는
일하는 틈 운전하는 틈 헬스하는 틈 틈
시를 읽고 시를 산다
밥을 먹고 밥을 쓴다
폰 메시지 보내고 폰 메시지 먹는다
오늘도 나는 손녀가 '뽀로로' 티비를 보는 틈새
잠시 틈을 내어
틈새 세상 바라본다.
<감상>
나는 개인적으로 김성춘시인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딴 이유가 아니라
시도 잘 쓰고 얼굴도 선비처럼 유하고
그 함자에 봄춘春자가 들어서 그렇다.
시인 중에 봄춘자가 있는 분이
서정춘시인과 김성춘시인이 있다.
두 분 다 봄처럼 싱싱하고 건강하고 동심이 가득한 분들로 알고 있다.
같은 글자가 이름에 들었다고 좋아한다는 말에
좀 편견이 심하다고 발끈할 분도 있을 것이다.
허지만 난 이런 틈을 좋아한다.
성격이 완벽한 분들은 그래서 싫어한다.
좀 못난 구석도 있고 바보 같은 틈이 있어야
더 믿음직스럽고 인간미가 넘치는 게 아닌가?
틈, 참 좋은 말이다.
틈이 없으면 우리는 숨을 쉬고 살 수 없다.
들숨과 날숨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울고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산다.
춤추고 노래한다.
운동 중에 가장 중요한 운동이 숨쉬기 운동이 아니던가?
명상이니 요가니 그런 정신 수양은 숨쉬기 운동에서부터 비롯된다.
숨쉬기 기본 동작이 어그러지면
건강이 악화되고 기력이 쇠한다.
온갖 질병들이 침노하는 틈이 생기게 된다.꽃잎과 꽃잎 틈으로 벌과 나비 오고 / 악수하는 손과 손 틈 사이 /
입술과 입술 틈 사이 /
달콤한 사랑의 틈이 온다 /...
사랑은 틈이 없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꽃에게 벌나비가 날아들 수 있는 것도 틈이 있어서다.
손과 손 사이에도 그 애틋한 틈이 있어
따사로운 정이 흐르는 것이다.
강과 산을 보라.
강이 산이 되겠다고 하고
산이 강이 된다고 가정해보아라.
그러면 뒤죽박죽 죽도 밥도 아닌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 것인가?
제자리를 잘 지키면서 틈을 가질 때
알맞은 거리와 간격을 가질 때
그곳에서 비로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싹 트는 것이다.
손녀가 '뽀로로' 티브이를 보는 동안,
그 틈새에 시인은 차분히 책상머리에 앉아
그 '틈'에 관한 시를 쓰고 있다.
그 틈이 그 자유가 얼마나 고소하고 고마울 것인가?
-나병춘(시인)
출처: 시인마을에 가득한 차향 원문보기 글쓴이: 청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