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들이 기분을 가뿐하게 하는 요즘입니다.
한편 어머니 날, 5.18광주민주화 운동 기념일, 석가 탄신일 등 행사가 많은 달이기도 하지요.
이맘때면 혼자 훌쩍 여행을 가서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요번에는 일찍이 가족여행을 다녀온 터라
건너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집 둘째 종갑이는 요새 진학할 대학이 정해지고 졸업이 가까워오면서 나름 혼자 살아가기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저 혼자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아졌는데 아침식사는 더욱 그렇지요.
6시 45분 첫 수업에 맞춰 새벽 5시면 일어나 뛰고 돌아와서 아침을 만들어 먹고가니 이제는 챙겨 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아침에 밥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아이가 학교 가고 나면 내 방으로 가곤 합니다.
오늘 아침도 일어나 주방에 내려가니 제법 소리가 납니다.
지켜보자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눈치입니다. 계란을 풀고 후라이팬이 동원되는 등 뭐하나 했더니
맥시칸 음식인 케사디야를 만드나 봅니다.
그런데 마침내 달랑 한 개, 즉 피망 썰어서 스크램블드 에그하고 또띠야에 치즈올리고 아까 만들었던
에그에다 다시 치즈 엊어 덮어서 양쪽면을 익혀 치즈가 녹게하면 끝인데 달랑 한개 만들어 먹는
눈치 입니다.
저는 내심 그렇다면 어디 먹으라고 권하나 보자 하는 심사로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신문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 나름 성공을 했는지 한 몇 입 맛있게 먹고 실제로 "너무 맛있는 데요" 합니다.
저는 그저 무심히 "그래? 그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이 놈이 눈치가 있었는지 분위기가 그랬는지 절반을 먹고 나서야 "아빠 드실래요"합니다.
아마 줄 생각도 별로 없는데 하도 아빠가 뜨악하고 아무 말도 않고 신문만 보니까 민망했다 봅니다.
저는 '괜찮다'고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할 말이 많았습니다.
...야! 기왕에 만드는 것 아빠 것도 좀 만들고 그리고 권할거면 만들기 전에 물어봐야지,
아빠가 무슨 거지도 아니고 먹다가 권하는 것은 뭐냐? 섭섭하다 ..아빠 병원 누구는
지네 아빠를 제일 존경한다고 학교 프리젠테이션에 소개했다는데 등등...그렇지만 지금은 아침이고
오늘은 참자, 참아야 하느리라를 속으로 여러번 되내이면서 묵묵히 신문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맛있게 먹고 치우는 눈치입니다. 이때 새벽교회 다녀와 온 처가 들어와
둘째에게 스스로 아침 해결한 것을 고마와하며 칭찬을 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0교시가 없는 날인 줄 깜박 잊었는지 한 시간이 남는 다는 겁니다. 남는 시간에 뭘하지? 하는 눈치입니다.
옆에 처가 "그러면 종갑아! 식구들 위해서 케사디야 만들어주면 안돼냐?" 합니다.
둘째도 그럼 그럴까 하는 눈치인데 저도 그래 한 번 만들어 봐라 먹어보게 거들면서
"사람이 왜 공부하는 줄 아냐? 다름사람 다 도와줄려고 그러는 거다" 하면서 혼자만 만들어 먹은
서운함과 공부만 잘해서는(그렇다고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한 다는 얘기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을
실어 참지 못하고 말에다 뼈를 박았습니다."
말귀(아빠 삐짐)를 알아먹은 둘째가 그렇지 않아도 할 말 있다는 듯 요리하는 와중에 말문을 여는데
한마디로 그런 상황을 아빠가 자초했다는 논조입니다.
깜짝 놀라 엄마가 물어 봅니다.그게 뭔 소리데?
종갑이 말인즉슨 자기가 얼마전에 처음으로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서 아빠에게 드셔보라고 했는데 맛이
없다고 했답니다.
사실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 날이면 가끔씩 아이들 아침으로는 주로 김치 볶음밥 내지는 각종 볶음밥을 해주어 왔는데
언젠가 종갑이가 레서피를 물어보더니 직접 만들었습니다. 거기다대고 제가 맛이 없다고 들째에게
그랬다는 겁니다.
저는 아이가 맛을 보라고 했던 것은 기억나는데 제가 맛이 없다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대수롭지 않게 맛이 별로 없다 그랬는데 그 아이 입장에서는 민망하고 서운했나 봅니다.
내심 정말 당황스러었고 일을 저질렀구나 생각하면서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 했는지 상황을 되돌리고 싶고 사랑 없이 공의(맛 없으면 맛 없다고 하는 것)만 앞섰던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정말 아빠 노릇을 얼마나 더 해 봐야 잘 할 수 있나 한심하기만 했습니다.
다 훈련부족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소에 바른 몸가짐 마음가짐이 몸에 베어야 하는 것이고 나쁜 쪽으로 주머니 속에 감춰둔 송곳은 언제든지
삐죽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오늘도 배웠습니다.
정말 끝이 없네요. 여러분들은 저 같은 실수를 당연히 안 하시겠지요.
오늘보다 나은 아빠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당연히 반복하고 후회하고 또 반복합니다.
그래도 만인앞에 반성하시고 다짐하시는 "오~닥"이란 아버지를 둔 종갑이는 축복받은 아드님.
종갑이의 대학입학 축하 드리고
항상 재밋는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