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말이 있다.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이다. 또는 그 길은 도道를 의미한다. 즉 큰 도에는 인위적인 문이 없다.란 뜻이다.
사람에게는 사람나름 대로의 생각의 그릇됨(器)이 있다. 도량의 크기를 말한다.
큰
그릇은 물을 많이 담고 작은 그릇에는 물이 적게 담기듯, 사람의 됨됨이도 마찬가지이다. 그 물의 정도는 생각의 정도이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비움의 정도라고 역설적 표현을 할 수도 있다. 대도무문 ‘큰길에는 문이없다’라 하지만 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이는 큰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면 문이 보이지 않는다. 도한 보이는 작은문으로 들어가려해도 그 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 문은 보이는 현상의 문이 아니요, 그것은 본질의 문이요, 자연의 문이요, 우주의 문이요, 큰 바다의 문이기
때문이다.
인
위적인 많은 현상들은 큰 바다에서는 한낱 물방울에 지나지 안듯, 큰 바다와 같은 가슴의 문으로 보지 않으면 없는 문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도무문 그것은 상징적인 문이요. 압축적인 의미를 담고있기 때문에 그 문은 대선의문 대도의 문이라고 볼수가
있다.
그
대선의 대도는 본질적인 인간을 알게하는 문이요, 그러기에 그 문은 일반적인 문이 될 수가 없다. 또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게하는 문이기에 ‘대도’ ‘대선’은 인간이 인간답게 가는 길이요, 자신의 존재가 자신이 살아있음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하는 것이며 그길로 인도하는 문이다. 대도는 인간이란 주체가 세상을 위한 상징적인 주체이며 인간이란 주체가 세상을
위한 출구의 문이며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도무문’은 ‘인간자체’를 의미한다고 볼수가 잇다. 즉 인간이란 자체가 우주의 문이라고
본다.
책상이 하나의 형태를 지니기 위해서는 나무라는 재료와 그 책상을 만들기 위한 전계도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나무는 책상이 책상되기 위한 가능태이며 점계도는 가능태를 형태를 가능하게해주는 것이다.
자
연이란 현상태도 마찬가지이다. 그 자연의 현상태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조상은 모든 우주의 근원자를
음양오행(목화토금수)에서 찾았다. 그 음양오행에 의하여 우주의 모든 것이 생성되며 재창조해 나간다고 보았다. 인간도 그 근원자에
의하여 탄생되었기에 인간 자체가 작은 우주이며 작은 우주의 진공이 큰 우주를 형성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 자체에
음양오행에 의한 신명이 이루어지며 그 신명의 인간은 곧 자연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차안과 피안은 저멀리 하늘에 지상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턱하나 사이에 있다. 아니면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차
안과 피안은 영겁의 시간이다. 영겁의 시간은 초월의 미덕을 배우지 않으면 영겁의 시간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의 영겁의 시간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저멀리 하늘나라가 있음을 주장한다. 성서는 ‘하늘나라가 네 마음에 있다’라고 하며 불경은 ‘해탈하면 모두가
부처가 된다’라고 하며 고대 그리스의 한 현자는 ‘네자신을 알라’라고 하며 무명한 자신을 알기 위한 산파술을 택하였다. 성서와
불경과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은 상통하는 말이다. 아니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다. 인간은 이미 자신이 완성되어져 있는
인간임을 모르기에 자신이 부처이며 자신속에 하늘나라가 있음을 모르고 살았고, 자신이 하늘이요, 소우주인 하늘나라의 한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
간은 이미 완성되어진 인간이며, 소우주이며, 소우주의 집단이 모인 진공의 대우주이다. 하늘나라는 인격으로 완성되어진 인간 존재속에
내재한다. 아니 인간 자체이다. 인간은 곧 우주이기에 그 몸체를 지닌 인간은 한울이다. 성불하면 부처가 된다는 것도 인간
스스로의 혁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때 부처가 되며 한울이 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종교적인 하나님도 어디에서든지 사전적으로 찾을 수 있는 설명되어지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신명들린
인격적인 완성의 한울이며 신명의 한 하나님이다. 그 실체의 생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우주생성의 근원이신 오행이다.
4. 세상의 지식은 한울을 알기위한 소재이며 참고자료이다.
세상의 중심은 종교도 학문도 이즘(-주의)도 될 수가 없다.
세상의 중심이 종교가 학문이 이즘이 되려할 때 전쟁이나 파당은 인간의 생명을 유린하게 되고 인간은 마침내 그것들의 희생재물이 된다.
그
러나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다. 그 인간은 우주의 근원자인 오행에 의하여 창조되고 재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그 중심이 신명의
인간임을 인식하고‘자가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때 지구의 환란은 종식이 되고 그 종식은 후천의 재창조 과정속에서 부활한다.
선천의 환란은 종교가, 학문이, 이즘이 만들어낸 재앙이기에 후천의 부활은 ‘나’란 존재가 우주의 중심이며 신명의 인격적 신이며, 한울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5. 사이비성을 인정하고 버리는 마음을 지닐 때
아
름다운 꽂이 만발하고 차별의 세상이 아닌, 차이의 세상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후천의 세상이다. 어떤 종교이든, 학문이든,
이즘이든 사이비성을 안고 있다. 그것은 긍정이든지 부정적이든지 또한 그 아무것도 아니든지 부조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조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었기에 인간의 우수성이 인간의 발전을 앞당겼다고 하지만, 반면 인간의 재앙을 더욱 부추겼다. 주객이
전도된 주인과 도구의 관계 인간이 진정한 한울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가, 학문이, 이즘이
사이비성을 갖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부활을 앞당기며, 그 자신이 한울이며, 하늘나라이며 그때 비로소 하늘 문이
열림을 알 수가 있다. 그 하늘 문이 열린때 대도무문은 인간자체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