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끝없는 싸움, 한글과 한자 싸움판의 앞에 서다.
1972년 6월 나는 군대를 만기 전역을 했다. 나와 보니 1970년부터 한글전용을 하겠다는 정책은 그 반대 세력에 밀려서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문교부장관이 한글전용을 반대하고, 민간에서는 일본 식민지 때 경성제대를 나온 이희승과 이숭녕 서울대 교수가 중심이 되어 ‘어문회’란 모임까지 만들고 한글전용을 반대하고 있었다. 신문들도 한글전용 반대편이었다. 한글학회와 한글단체는 그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니 밀리고 있었다. 나는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다시 그 싸움판에 나서게 된다.
1970년 국어운동대학생회를 이끌던 1세대가 모두 군대에 가게 되고, 한글학회 최현배 회장까지 갑자기 돌아가시니 한글 쪽 전력이 흔들리게 되었다. 2년 반 뒤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보니 한글학회 새 회장은 우리 전국국어운동대학생회 지도 교수이셨던 서울대 언어학과 허웅 교수가 맡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회 지도교수는 내가 나온 동국대 국문과 김성배 교수가 맡고 있었다. 우리 졸업생들도 다시 모여 돕지 않으면 그동안 애쓴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그래서 1972년 말쯤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를 조직하게 되었는데 내가 회장을 맡게 되었다.
학생회 초창기는 서울에 있는 대학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 학생회가 주축이었는데 제대를 하고 보니 지방까지 16개 대학으로 늘어나 활동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자혼용 세력이 너무 드세게 나오기에 한글 쪽도 더 힘차게 나서야 할 판이었다. 나는 대학생 후배들 활동을 도와주고 이끌면서 한글학회가 중심이 된 한글단체들의 행사나 모임 때마다 도와주었다. 한글단체가 힘겨운 싸움을 하다 보니 젊은 일꾼들이 더 필요해서 학생 때의 지도교수였던 허웅 한글학회 회장과 어른들이 우리를 더 찾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끝없는 싸움, 한글과 한자 싸움판 앞장을 서게 되어 40년이 흘렀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1970년부터 한글전용을 전면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한글학회와 한글단체는 모두 환영하면서 앞으로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학생회 회원들은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으로까지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1969년 우리 대학생 모임이 낸 회지 ‘내일’에 나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은 싸움이고 앞으로 더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라고 썼다. 그런데 몇 해도 지나지 않아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한자 혼용파는 계속 한글 앞길을 막았고 우리 말글살이는 혼란스러워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되었다.
나는 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한글학자여서 그 분위기 때문에 한글운동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겪은 남다른 경험과 각오에서 이 겨레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 일에 나선 것이라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보였다. 그래서 내 스스로 먼저 나서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학생 때는 “왜 어른들은 우리 한글은 훌륭한 글자라면서 쓰지 않을까?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는 것이 가장 좋은 말글살이다.”라는 단순한 경험과 깨달음에서 이 일에 나섰지만 수십 년 활동하면서 공부를 하고 보니 이 일은 수천 년 이어온 우리 겨레가 이루지 못한 숙원이었고 자주독립운동, 생존 투쟁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겨레는 수천 년 동안 이웃 힘센 나라, 중국과 몽골에 짓밟히고 마침내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온 것은 우리 얼과 말글이 바로 서지 못하고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대주의 반자주 세력과 힘센 나라의 말글을 남보다 잘해서 저만 출세하고 잘 살던 이기주의 전통이 우리 말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들의 참모습과 어찌하면 우리가 저 반민족, 사대주의와 이기주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을지 보였다. 그러니 이 싸움판을 더욱 떠날 수 없었고 선봉장이 되어 싸우게 되었다.
그동안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한글기계화 선구자 공병우 박사, 시민운동가 기독청년회 전택부 회장, 한글학회 허웅 회장과 한갑수 이사, 원로 언론인 문제안 선생님들과 많은 선배들을 모시고 이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랑을 받은 것을 출세하거나 돈과 명성을 얻은 것보다 보람 있게 생각한다. 더욱이 한글학회에 들어와서 세종대왕과 주시경 스승, 조선어학회의 이윤재, 최현배, 이극로, 이인, 이은상님들이 한 일과 큰 뜻을 알고 그 분들이 이루지 못한 뜻과 꿈을 이어받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스승은 돌아가시고 선배들은 늙었으니 힘이 남은 내가 죽는 날까지 그 분들의 높은 뜻과 이루지 못한 꿈, 우리 얼말글 독립을 이루어 후손에게 물려줄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