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일을 처음 시작하던 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을 첫 사건으로 다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선배 변호사님한테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청구서를 세 번이나 퇴짜 맞아가면서 빨간 펜 교습을 받던 시절. 둘째 아이를 뱃속에서 키우는 내내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읽고 듣고 쓰던 때. 김동춘 교수님이 최근에 펴낸 책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에 그 시절 있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네요.
"내면화된 반공주의 때문에 범국민위 활동 초기에는 같은 유족들 간에도 서로를 적대시하거나 경원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유족들의 이런 모습을 국가폭력이 피해자들에게 미치는 이중적 파괴 효과라고 생각했다. (중략)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그러했듯이, 가해자들은 언제나 약자나 피해자들을 분열시키면서 자신의 지배를 영속한다. 유족들 내부에서 "순수 양민"과 "불그죽죽한 사람"을 구별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순수 양민 내에서도 "진짜 순수 양민"과 "가짜 순수 양민"의 차별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가장 "순수 양민"인가를 둘러싸고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사실 반공주의 권력이 만들어놓은 자장에 들어가서 스스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꼴이다. 모두가 동일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 권력이 "순수 양민"만 살려준다고 공식화해 놓으면 피해자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 유족들 간의 이러한 차별과 경계는 국가폭력의 상흔에 기인한 것이 틀림없다."
지금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분단체제에서 만들어지고 또 이를 지탱해온 의식의 근본을 바꾸지 못하면, 또 되풀이되겠지요. 올 초 당의 대표를 맡으면서, 이것을 바꾸는 역할을 맡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미처 아직 바꿔내지 못한 채로 내란음모조작사건을 겪게 됐네요. 이 소용돌이가 되풀이되는 것 막을 힘이 아직 모자라 저 스스로도 무척 안타깝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피해자인데도 다시 그 안에서 배제당하는 고통에 무감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이면서도 타인을 다시 배제하는 유형 무형의 가해에 대해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이 생기는 것을 다 숨기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머무르기만 해서는 안되니까요, 어찌하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 사태를 잘 극복해내서, 누구든 돌아볼 때 우리 사회가 누구를 굳이 배제하고 경계하지 않아도 될만큼은 나아졌다고 생각들게 만들어야겠다 싶습니다.
흔히들, 통합진보당이 여론의 공격으로 진보진영에서도 배제되는 듯한 때면, 뭔가 바꾸겠다는 말 즉시 해주면 배제에서 벗어날텐데 이야기들 하시지요. "양민 선언" 같은 걸까요. 하지만 저는 공식화된 여의도 정치 문법 따라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집권세력은 작은 틈만 있어도 "양민만 살려준다"고 선을 긋지요. 때마다 그 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책이라 보지 않습니다. 그 배제전략이 안 통하도록 우리 힘을 키워야 또 그런 일 안 벌어지지요. 헌신하고 아끼고 단합하는 진보당의 장점 키워가면서 더 민중 속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으니, 그 길 틀리지 않았으니, 부족함이 나타났으면 더 속도내서 힘 키우자는 것이 제 대책입니다. 분단체제 바꾸는 일 마음 단단히 먹고 해나가고 있었으니 더 힘 모으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몰아치는 여론 당장 바꾸지 못하는 게 무슨 정치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직하게 밑에서부터 쌓아가는 정치가 아니면 아무리 이름 있던 사람도 집단도 다 바람결에 흩어지더라구요. 선을 지워버릴 힘을 가진 가장 유연한 변화는, 밑이 튼튼하고 내부가 끈끈하게 뭉쳐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예상보다 더 빨리 진보당은 발전의 준비, 변화의 준비를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당원들이 헌신한 덕택이고, 이 사람들 우직하구나 하고 지켜봐오신 분들께서 기대를 거두지 않아주신 덕분입니다. 이 고비를 넘으면서, 어느새 우리는 변해있을 것입니다. 더 힘있고 더 유연한 모습, 더 격의없이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으로요. 그것이 우리 역사에 한 부분이나마 기여하는 것이겠지요. 해내야지요.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