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인디포럼2010 데일리17호] 프로그래머 안시환 평론가의 추천2010 데일리17호] 프로그래머 안시환 평론가의 추천
인디포럼 영화제가 드디어 성대한 막을 올렸다. 첫 방문이라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 고민되는 관객, 2~3년 다녀봤는데도 여전히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관객, 그간 인디포럼을 꾸준히 찾은 마니아지만 워낙 독특한 작품이 많아서 늘 처음처럼 고민하게 되는 관객을 위해 준비했다. 인디포럼2010 프로그래머(김영남 감독, 주현숙 감독, 변성찬 평론가, 안시환 평론가)가 밤낮을 고민하며 함께 선정한 작품 중 안시환 평론가가 제안하는 맞춤 별 추천작 리스트!
두근두근, 올해가 처음이라면
- 추천작: 신작10 계몽멜로 <얼어붙은 땅>
5/27 THU 14:00 ㅣ 5/29 SAT 12:40 GV
“영화를 막 하려고 하는,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는 관객에게 추천합니다. 추측건대 이 영화를 만든 김태용감독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되게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면서 이런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을 키우지 않았을까 해요. 만난 적은 없지만. 아마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봤을 것이고 그들의 영화를 통해 어떠한 순간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를 배웠을 거예요. 그리고 그걸 단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영화로 이어가는 시도를 해요.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인 한 장면이 있는데 다르덴 형제의 어떠한 표현방식을 그대로 가져와요. 실제로 몇 년 전부터 단편영화를 봤을 때 그런 기법들을 차용한 다른 영화들을 자주 봤어요. 그런데 <얼어붙은 땅>이라는 이 영화만큼 다르덴 형제의 형식과 그 형식이 필요한 이유를 잘 이해한 작품은 드물었어요.
자기가 본 영화,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단지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화로 어떻게 결합을 시킬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들에 있어서 <얼어붙은 땅>을 만든 김태용감독은 하나의 어떤 적당한 사례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감독의 정신을 자신의 영화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잘 살려낸 성과들이 하나의 샘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안시환 평론가
- 추천작: 초청3 <흩날리는 것들>
6/1 TUE 14:50 GV
“이 영화는 오랫동안 단편영화에서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그러니까 이 질문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언제인가부터 사라졌었던 질문인데 그 질문을 다시 묵직하게 던지는 영화예요. 그 질문이 무엇이냐면,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것들’이에요. 두 개의 흩날리는 것들이 영화에서 제시되는데 간단히 말해 당신은 자본을 택할 것인가, 붉은 깃발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영화거든요. 붉은 깃발이 무얼 상징하느냐는 영화를 보고 (관객이) 판단할 문제지만 신자유주의 광풍이 부는 이 시대에 그리고 거기에 편승해서 살아가려는 시대에 정말 당신은 그렇게 살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초청을 했죠. 정말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영화의 첫 씬을 꼭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요즘의 단편영화들은 깊이 연출을 하지 않아요. 디지털과 함께 순간적으로 포착된 듯한 것들을 잡아내는 데에 치중하는데 이 영화는 첫 씬에서 헌책방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공간의 깊이 연출이 주는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그 장면의 깊이연출을 보지 못하거나 놓치면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의 깊이 속에서 표현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래서 꼭 첫 씬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는 팁을 주고 싶네요.“
한 두 해 방문했다면
- 추천작: 개막작 <910712 희정>
5/27 THU 19:00 ㅣ 5/31 MON 14:50 GV
“고통받는 대상을 영화로 찍는 것은 어떻게 보면 되게 쉬운 일이에요.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는 고통의 원인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에 대한 질문을 늘 갖고 있어요. 그 사람은 그 고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데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 고통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참 비윤리적인 거잖아요. 고통의 당사자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관객들에게 보라고 전시해버리는 행위죠.
<910712 희정>은 타자의 고통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쉽게 말하면 ‘재현의 윤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거죠. 카메라가 어떻게 타자의 고통을 대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작품이에요. 영화에서 다뤄지는 타인의 고통이 저는 정말 보고 싶었는데 타인의 고통을 보려는, 즐기려는 욕망은 정말 나쁜 욕망이에요. 관음증적 욕망인데 관객의 그런 욕망에 영화 대부분이 친절하게도 굴복을 해요. 그러나 이 영화는 끝까지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아요. 배신을 해버리거든요. 왜냐하면, 보고자하는 욕망의 가학적인 측면 때문에 그걸 배신하는 게 고통 받는 타자에 대한 어떤 윤리가 되거든요. 카메라의 윤리를 잘 지켜주면서 ‘재현의 윤리’라는 어떤 낡디낡은 화두를 잘 보여준, 잘 지켜낸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영화를 봤으면 해요.“
5년 이상 함께한 인디포럼 마니아라면
- 추천작: 신작4 노래의 날개 위에 <오디션>
5/30 SUN 19:30 ㅣ 6/2 WED 14:50 GV
“이 영화는 프로그래밍 회의를 하면서 저희가 동일한 이유에서 선정하자고 한 작품이에요. 꾸미지 않은 아마추어영화의 힘이 느껴지거든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정말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또는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청년들 같은 주민들을 모아서 만든 영화예요. 그래서 꾸미지 않은 연기가 어색함을 주기도 하고 투박한 느낌도 있죠. 그런데 역으로 그 날것 그대로의 어떤 느낌들, 아마추어들이 줄 수 있는 생동감 같은 것들이 <오디션>에는 있어요.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활기와 팔딱거리는 느낌을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많이 느꼈죠. 아마추어 배우들만이 줄 수 있는 그런 매력이 <오디션> 안에 잘 살아있어요. 그분들은 서툴지만, 굉장히 열심히 연기를 하는데 일반장편영화에서는 볼 수 없고 독립영화만이 줄 수 있는 활기라고 생각해요.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찍을 수 있는 영화, 카메라가 잘 단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생동감 같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예요. 그래서 인디포럼이 발굴하고자 하는, 발굴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안시환 평론가가 뽑은 신작전의 기대주
- 신작3 골방영화 <나는 다니고 싶다> 팽재훈 감독
5/27 THU 12:00 ㅣ 5/30 SUN 14:50 GV
“(또) 추측건대 자신이 느꼈던 것을 영화적으로 가장 솔직히 표현해낸 영화였어요. 이번 영화가 상영됐다는 것에 너무 도취하지 않기를 바라요. 정말 자신이 느낀 감정들과 분노, 고통 같은 것들을 멋 부리지 않고 가장 간결하고도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해내서 이 영화가 선정된 것 같아요. 자기의 느낌을 영화적으로, 영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잘 살려내는데 첫 장면에서 소년이 걸어 올라가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뭔가 음산한 느낌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김영남 감독님이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영화적 분위기가 살아있었거든요. 이것은 자신의 체험을 영화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멋 부려서 찍었다면 아마 실망했을 텐데 자기가 이 영화에서 충실 하고자 했던(보여주고자 했던,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잃지 않고 다음 영화도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예전에 다른 영화제에서도 젊은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 영화가 망가지더라고요. 그런 걸 봐서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시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남의 것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장기들에 충실해서 계속 시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이제껏 이야기했던 장점이라고 봤던 것들이 좋아서 선정된 작품인데 그런 게 사라진다면 감독님에게도 그게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을까, 본인이 느껴야 될 문제니 어떤 거라고 제가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요.“
사진 백희정(hydesuki@naver.com)
글/정리 안옥희(infinity-l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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