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다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11/2)
*제1독서: 지혜 3,1-9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제2독서: 로마 5,17-21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복음: 마태 11,25-30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찬미 예수님, 오늘 위령의 날을 맞아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특히 이번 위령의 날은 엊그제 일어났던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의 기간에 맞이하게 되어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무수히 많은 10대 청소년들 잃었었는데 어찌하여 또다시 수많은 20대 청년들을 잃는 아픔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는 많은 시민들의 방문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뉴스 인터뷰를 보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여 눈시울을 붉히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그것을 보면서 새삼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선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중요한 심성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선종하는 이들과 그 가족을 위해 장례를 돕고 연도를 바치면서 정성을 다해 위로하며 기도를 해야하는 소중한 사명을 수행하는 이들이므로 언제나 어디서나 죽은 이들을 위해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부활성당에 가면 외부 한쪽 면에 “Hodie mihi Cras tibi” 라는 라틴어 속담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으로 ‘오늘은 내가 먼저 죽어 여기 와 있으니 내일은 네가 올 차례이다.’ 라는 말로 누구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려줍니다. 즉 죽음을 피해야 할 두려움 아니라 잘 맞이해야 할 반가움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잘 준비할수록 삶이 충실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앞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일은 바로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하시기를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특별히 연옥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선행을 쌓아야 합니다. 오늘 지혜서에서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정화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연옥영혼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의 일면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봅니다.
또한 2독서 로마서에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불손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모든 이가 구속되어 하느님의 의로움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우리 덕행의 보화가 연옥영혼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어제 모든 성인 대축일이 천상교회 성인들의 전구를 강조했다면 오늘 위령의 날은 지상교회 신앙인인 우리의 기도와 선행을 강조하여 연옥영혼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죽은 이들을 위한 묘지 방문과 기도를 11월 위령성월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실천하기를 당부합니다. 그런 행위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사는 게 복잡하고 힘들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지나친 걱정과 고민으로 불안할 때 우리에 앞서 돌아가신 이들의 묘지를 방문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가야만 하는 곳은 정해져 있으며 세상의 시간과 삶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육신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갈 뿐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