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북풍의 계절이 지나가고 어느덧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습니다. 따스한 계절 기운이 여러분 삶에도 새로운 생명력과 감동을 선사하길 기대합니다.
오늘 소개할 고지도와 인문학 이야기는 여암 신경준(申景濬, 1712-1781) 선생이 제작한 지도 2장에 대한 것입니다. ‘강화이북해역도’와 ‘북방강역도’ 라는 지도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 지도에는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실학의 거인 신경준 지도를 그리다
여암 신경준은 18세기 조선 실학자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실학자들의 특징인 박학다식을 추구하면서도 각 분야에서 깊이 있는 저술을 다수 남겼는데, 특히 지리학에 대해서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국가에서 편찬한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 지리 분야를 신경준이 담당하여 제작한 것은 국가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국의 도로 위치와 거리를 상세히 표기한 <도로고> 등 다양한 지리 서적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신경준은 당대 여러 지도 제작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고지도 2점이 현재 남아있다.
여암 신경준의 강화이북해역도 지도
‘신경준의 고지도’로 이름 붙여진 이 지도는 현재 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지도상에 제목이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고지도의 경우에는 제목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자들은 내용을 살펴보고 가장 알맞은 이름을 지도에 부여하곤 한다.
첫 번째 지도에는 강화도를 중심으로 서해안 북부에 이르는 해안선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지도는 ‘강화이북해역도’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또 다른 지도는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지역과 국경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북방강역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지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대동여지도와 김정호일 것이다. 나라 전체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 주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일부 지역만을 상세히 제작할 때도 있었다. 신경준의 지도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할 것으로 지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도가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북방강역도의 백두산 일대의 모습
서해와 강화도 해안의 상세한 고지도, 강화이북해역도
강화이북해역도는 대형지도이다. 길이가 3m에 가까우며 폭은 90cm나 되기 때문이다. 한강하구부터 시작하여 강화도, 서해 여러 섬을 그려 넣었고 압록강 하구에 이르는 지형과 연안의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지도가 제작되던 때는 외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 한강 하구에 여러 산성과 진지가 설치되었고 강화도의 군사적인 중요도가 강해지는 시점이었다.
지도에는 서해가 일직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공간을 변형하여 시각적인 편의를 준 것으로 보인다. 아래 강화도를 그린 지도를 보면 이 지도가 단순히 풍경을 그리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각 해안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와 주요 시설, 군사요충지가 빠짐없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지도에 그려진 서해안의 암초들
군사적인 목적으로 해군의 선박운행을 염두에 둬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에서 주목할 점은 서해에 있는 암초 위치와 길이 등을 지도상에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암초에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 지도를 보게 되면 어느 섬을 끼고 돌아서 어떠한 길로 선박을 운행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파도가 거센 구간은 암벽에 부딪히는 파도를 묘사해 두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보건대 단순하게 해안을 지키기 위해 제작되었다기보다는 전시에 해군의 이동로를 명확히 할 목적으로 지도가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북방의 경계를 상세히 그린 북방강역도
여암 신경준의 북방강역도 지도
북방강역도는 1m정도의 길이로 제작된 지도이다. 앞선 지도보다는 작은 크기이나 수록된 내용은 매우 상세하다. 지도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면 일단 우리가 알던 한반도 북부의 모습과는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신경준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미 정상기와 같은 지도제작자에 의해 북부 지역의 모습이 현재와 동일한 형태로 지도에 표기되었기 때문에 신경준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이 지도는 중요한 지점을 강조하여 그려졌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북부의 모습과 달라 보이는 것이다. 황해도와 압록강 하구 일대를 매우 상세하게 그리고 있으며 동해안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표기되고 있다.
또한 백두산이 매우 강조되어 표시되고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백두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도는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에서 조선 부분만을 좀 더 상세히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지도에는 백두산이 과장되어 표기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백두산은 백두대간의 시작이라는 점과 압록강, 두만강의 발원지라는 점 등으로 예전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숙종연간에 청나라 목극등(穆克登)에 의해 정계비를 세우게 되면서 영토문제를 통해 백두산이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18세기부터는 백두산을 그리는 지도에 정계비의 위치가 꼭 표시되었는데 이 지도에도 목극등이 세운 백두산정계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필자는 이런 점이 고지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지형도에는 자세한 정보가 실려 있기는 하지만 본인이 사랑하는 지역을 강조하여 크게 그리거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경준의 지도를 살펴보며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고 군사적인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옛 선인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 출처 : 월간사람과山(2018년 3월호)/ 정대영의 고지도와 인문학 ]
첫댓글 ㅎㅎ 독자 여러부운~~~
불렀슈? ㅎㅎㅎ
@오로지 오늘밤 출발인가요?
@호호.호~와우 하하하하 당근이죠~
@오로지 당근을 몇개 갖고 갈까요?
@호호.호~와우 하하하하 多多益善~
@오로지 무릎 쑤셔요
@호호.호~와우 하하하하 그럼 무거우니껭 가져오지마요~ ㅎㅎㅎ
@오로지 거냥 조명이랑 가스2개 달랑~^^
@호호.호~와우 하하하하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