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일치 피정을 다녀와서 (1)
“가톨릭 교회에 대한 피상적인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이제 일치 운동을 위해 좀 더 내가 겸손하고, 작아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대전 감리교 목사님)
“가톨릭 교회가 관여하는 사역(사목)의 영역이 이렇게 넓다는 것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장로교 여목사님)
“조금만 더 있으면 가톨릭으로 교회를 옮기게 될 것 같네요(웃음).”(기독교장로회 목사님)
“가톨릭의 아름다운 성전의 그림에 반했어요. 처음하는 십자가의 길이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 연습해야겠네요”(감리교 목사님)
“이제까지 가톨릭 뒷조사만 해왔는데, 이제는 가톨릭을 좀 공부해야겠어요.”(구세군 사관님)
“준비부터 가슴 설렜는데, 이렇게 함께 피정을 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기뻐요.”(성공회 여사제님)
“많은 개신교 목사님들이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함께 피정을 하는 뜻 깊은 일치 운동의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성공회 신부님)
“가톨릭의 피정에 개신교 목사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체험이자, 함께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광주교구 신부님)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 시작된지 어언 50여년이 지난다. 대한 성공회와 한국 천주교가 1965년 처음으로 일치 기도회를 시작한 이후, 1968년 이후부터는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공식적인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를 가져오고 있다. 위원회 차원의 기도회로만 이루어지던 일치 운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일치 운동의 다양한 사업과 만남을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전국 지방에서의 일치 기도회는 물론, 천주교와 개신교 신학자들 간의 만남과 대화, 신학생 교류, 교단장 간담회, 일치 성지순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연대적 협력에 이르기까지 하나되는 교회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금년 8월 16일부터 2박 3일간 부산 성분도 명상의 집에서 가졌다. 열린 그리스도인 일치 피정은 이제까지 벌여온 일치 운동의 사업적인 요소들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내적 소명과 신앙 체험을 가톨릭 교회의 피정의 틀 안에서 함께 나누고, 공동의 신앙을 고백하는 뜻 깊은 계기였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개신교측의 참석으로 본래 기대했던 저변 확대에는 어려움이 생겼지만, 열린 마음으로 피정에 참석한 개신교측 목사님과 성공회 신부님들, 그리고 천주교측에서 참석한 일치위원회 위원들과 각 교구별 일치운동 담당 신부님들 몇 분을 합하여 총 16명의 참석자들은 뜻 깊은 일치 피정을 함께 가졌다.
주교회의 일치위원회 위원장이신 김희중 대주교님이 함께 참석하셔서 값지고 의미 있는 만남의 질을 높여 주신 점과, 일치 운동의 중요한 지평인 영적 일치 운동의 기초가 되는 영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정학근 신부님의 수도회 영성의 역사와 베네딕도 영성에 대한 강의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신앙의 첫 마음을 일깨우는 소중한 계기였다.
사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오랜 일치 운동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만남과 접촉은 행사장에서 혹은 일시적인 친교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번 일치 피정에서는 2박 3일이라는 일정을 함께 지내면서, 아침예배, 공동 성무일도, 식사와 조별 대화, 전체가 어울어지는 나눔의 시간들을 통해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오해와 편견의 장벽을 허무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참된 일치의 체험은 만남과 열린 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지평에 갇혀 타자에 대한 배타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한 진정한 만남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대화적 지평은 사라진다.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은 누가 뭐래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 오해와 편견의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서로가 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다름에 기인한다. 그 다름은 결코 서로의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신앙의 공동 이해를 통해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 신학적 이해 지평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참된 만남의 체험이다. 솔직히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들이 상대방의 목회자와 사역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 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교회의 현실이나 진정성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거나, 상대의 목회자들과 열린 대화를 해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참된 인격적인 만남은 서로가 지닌 오해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참된 신앙의 힘과 그 신앙을 지탱해주는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 체험하게 된다.
인생에는 우연이란 사건들로 채워진 한 장의 종이와 같다. 내 삶에 중요한 요소들, 직장, 결혼, 종교들은 모두 우연한 계기를 통해 필연적 결과를 갖는 것들이라고 한다. 우연히 얻게 된 직장이 내 평생직장이 되고, 우연히 만난 배우자가 내 평생의 배우자가 된다. 그리고 부모님의 신앙이나, 내 가까운 친구들을 통해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신앙이 내 평생의 신념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우연한 사건들을 내 인생의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해석학적 용기이다. 신앙의 다름은 우리 삶의 궁극적 희망에 대한 다름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더 폭 넓게 자신을 열고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삶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축복을 진정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기는 사람과, 이런 기회를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흔드는 위기와 도전으로 보는 것 사이에 대화와 단절이 존재한다.
이 번 일치 피정은 앞으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겨자씨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아무리 미약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한 신앙의 언어를 함께 찾아가려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결코 먼 이웃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순례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가야할 일치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피정 강의에서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다. “진정한 영성은 우리가 찾는 신비적 갈망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갈망도 우리가 찾고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지금 여기서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 없이는 결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하나의 신비한 언어이다. 다름을 포괄해내는 언어, 삶의 참된 맛을 느끼게 하는 힘의 언어이다. 하나의 신앙 안에서 진정한 하나의 삶의 언어를 발견해내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첫댓글 송 신부님, 소식 전달 고맙습니다! 정말 뜻깊고 의미있는 연례피정이 되었으리라 상상이 되네요. 요원하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실현된다는 것에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발걸음들, 성령에 열려있으면서 그분의 뜻을 헤아리는 것들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추후 가능하면 강의 원고와 사진도 올려주시면 좀 더 생생하게(늦게라도)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국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을 위한 지속적인 대화와 나눔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