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정보 7월호 원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를 통한 가톨릭교회의 변화
송용민 신부
(삼산동 성당주임/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인류의 역사는 점진적인 발전이라기보다는 역사를 앞서 위대한 시대정신을 읽고 살아간 사상가들의 예언자적 통찰과 도전을 통한 혁신과 변혁의 역사였다고 말해도 좋은 것 같다. 물론 시대의 변혁은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민중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가 전제되겠지만, 일상과 사유의 고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예언자적 통찰로 세상을 새롭게 이해한 위인들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역사의 중심축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복음적 삶으로 해석한 예언자들과 성인들에 의해 2천년을 지탱해왔다. 특히 20세기 인류 역사의 정신사적 변혁 속에서 가톨릭교회를 혁신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사건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의 교부들의 역할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공의회 개최 50주년을 맞으면서 이 공의회에 대한 평가가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현대 가톨릭교회를 과거의 전통적인 교회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교회의 비전을 열어주었다는 데에는 가히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단을 단죄하고 제도 교회의 결속을 공고히 하려던 이전 공의회들과는 달리 시대의 징표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자 했다. 그야말로 21세기 패러다임에 맞춰 일치와 대화, 협력과 화해라는 새로운 인류의 가치들을 교회 안에 받아들여 ‘사목 공의회’라고 부를 만큼 세상에 열린 교회, 끊임없이 개혁하는 순례하는 교회, 그리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본질을 되찾고자 현대 세계에 적응(Aggiornamento)하려는 교회상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공의회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의 전환점인 문지방 위에 선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할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가톨릭교회는 과거 전통적으로 교황권과 주교들에 의해 통치되던 제도교회에 앞서 교회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에 초대를 받은 인류 공동체 전체를 대상으로 보편적인 복음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온 인류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예외 없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초대되었다. 하느님은 당신의 신적 생명으로 온 인류를 초대하셨기에 비록 명시적으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심지어 하느님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들까지도 구원을 바라는 하느님 백성의 범주로 이해하였다. 이 하느님 백성들 가운데 세례성사로 거듭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명시적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과거처럼 특별히 자신들만이 선택된 이들이라는 배타성을 벗어나 아직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표징이자 도구로 이해되었다. 교회헌장 1항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임을 확인했고,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세상과 동떨어져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인류와 피조물에게 봉사하는 ‘그리스도의 성사’로서 이해되었다. 한 마디로 교회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 제도 교회들에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세상에 보편적으로 드러내야할 도구로서 봉사하는 영적 교회로서 자신을 이해한 셈이다.
이러한 보편주의적 입장에서 가톨릭교회가 공의회를 통하여 분명하게 밝힌 점들 중에 하나는 비그리스도교, 즉 타종교에 대한 달라진 입장이었다.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온 인류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보편적 형제애는 타종교에 대한 교회의 포용주의적 입장을 대변해준 것이다. 하지만 본래 공의회 교부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점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속에서 유대교가 그리스도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지였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역사 안에서 보여주셨다면 분명히 유대교가 체험한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계시, 백성들과 인격적으로 맺은 계약신앙과 십계명을 통해 전해준 윤리적 지침들과 같은 것들이 폐기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모태의 역할을 했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공의회는 아브라함의 신앙으로부터 성조들의 역사에 이르는 유대교의 신앙 유산들이 그리스도교와 정신적인 공동 유산이라고 밝혔고,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이 결코 철회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유대교와의 화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으로 남은 유태인 학살(Holocaust)에 대한 교회의 자성과 책임도 한 몫을 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고, 치유하며, 이들과의 화해와 치유를 모색하는 것이 공의회가 추구하는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공의회 교부들은 유대교만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교와 큰 전쟁을 치루면서 서로 갈라져 상처를 입은 이슬람교도 주목하였다. 무슬림 역시 우리와 같은 유일신을 흠숭하며,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신앙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밝혔다. 더욱이 무슬림이 예수님과 성모님을 공경하면서 도덕 생활을 중시하고,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통한 종교적 삶에 존중을 표현하였다. 미래의 교회가 처하게 될 중대한 기로는 아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무슬림과의 대화가 될지 모르겠다.
공의회 교부들은 서양의 종교만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모든 종교들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진리에의 목마름을 보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뇌하는 죽음과 고통의 문제, 참된 행복과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한 종교적 상념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동양의 종교들, 특히 불교와 힌두교, 수많은 민족종교들이 보여주는 종교적 수행의 삶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형태로든 초월적 신을 섬기는 신앙 형태들과 금욕생활이나 깊은 명상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힌두교의 전통, 무상한 세계의 근본적 불완전성을 긍정하고 자기 수행을 통하여 궁극의 깨달음(해탈)을 찾는 불교의 종교성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양식과 행동 방식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는 않다.”(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공의회는 타종교들을 끌어안으면서도 가톨릭교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이 결코 소홀히 될 수 없음을 밝혔다.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와 협력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 하는 것이 참된 종교 간의 대화를 이루는 정신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다른 종교인들의 정신적 도덕적 자산과 사회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증진하도록”(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촉구하였다. 이 말은 종교 간의 상호 공존이 과거의 종교적 분쟁과 투쟁을 벗어나 참된 화합과 공동선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종교들과의 관계의 개선을 통한 직접적인 화해와 친교를 찾는 것은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종교심의 자발적인 표현으로서 종교 자유에 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인간이 가진 존엄성으로부터 이해된 종교 자유의 권한은 그리스도교가 소수인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는 곳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강요되거나 그 자유로운 선택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듯 현대 가톨릭교회가 문지방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세상을 향한 봉사와 화해를 추구하는 예언자적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기로에서 선택한 삶과 신앙의 가치들이 여전히 모든 가톨릭 신앙의 영역에 골고루 펼쳐져 있지 못하지만, 되돌릴 수 없이 분명하게도 가톨릭의 보편성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