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정보> 2013년 5월호
가톨릭 교회의 종교간 대화에 대한 입장과 한국 교회의 종교간 화해와 협력
한미숙(포콜라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
가톨릭 교회는 현대화(aggiornamento)의 적응의 일환으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감하면서 비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우리 시대(Nostra Aetate)」를 선포하였다. 이 문헌은 짧지만 4세기 이후 약화되었던 종교간 대화의 문을 재개하는 전환점이 되었고, 교회헌장, 사목헌장,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문과 함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는”(1티모 2,4)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를 천명했다. 그리스도교는 자연종교와 달리 하느님 자신이 인간 역사 안에 드러내신 계시종교로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출발한다. 즉 말씀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말씀을 살고 선포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여러 대종교 경전들이 영성적 명상의 원천들로 오랜 세월 해당 종교 신자들의 삶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쳐온 지혜의 샘을 발견하며, 이러한 공통의 종교적 가치들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1964년 성령강림절에 비 그리스도교 사무국이 설립되었고, 1988년부터는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로 개칭되었다. 이 평의회는 지역교회 위원회와 교류하며, 가톨릭신자들과 이웃종교인들 간의 상호 이해, 존중, 협력을 촉진시키고, 종교연구를 권장하며, 대화에 종사하는 이들의 양성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대화와 사명(Dialogue and Mission)」, 「대화와 선포(Dialogue and Proclamation)」 두 문헌을 발표하여,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종교간 대화의 4가지 형태(삶의 대화, 행동의 대화, 신학적 대화, 종교체험의 대화)를 소개하며 그 지침을 주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잘 준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즉 자신의 종교를 잘 깨닫고, 상대자의 종교를 알고 이해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최근에는 세계교회협의회와 함께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함을 그리스도교가 함께 공동 확인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하는 그리스도인 증언」이라는 합의 문서를 작성하여 반포하였다. 위 문헌들은 종교간 대화가 활발해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적절치 못한 양상들에 잘 대비시켜 줄 것이다.
종교의 요람지인 아시아에서는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 선 수행이나 요가 등 불교나 힌두교 사상을 신앙의 이분법적 사고로 받아들여 일종의 이중 소속(double belonging) 행태를 취하기도 하고, 무슨 종교에 속하든 인간이 선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종교무차별주의’ 성향도 나타났다. 따라서 교회는 혼합주의나 상대주의 형태를 피하고 교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교도권의 해석을 따를 것을 요청하고 있다. 2011년 제12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에서도 그간 발전된 노선을 따르면서 종교간 대화를 말씀 선포의 필수적 부분으로 여기며 존중과 대화는 상호적인 것으로 평화와 이해를 촉진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자신의 종교를 고백할 자유와 양심의 자유의 필요성에 대해 재확인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화를 위한 개방을 악 이용하거나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요구하는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충돌과 폭력이 일고 있어서 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이슬람 지역에서의 몇몇 개신교파들의 공격적인 선교활동은 무슬림 근본주의자들로 하여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를 구별하지 않고 반(反)그리스도교로 대처하며 사상자와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종교간 대화는 신학적 차원에서도 심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다원주의 종교신학의 등장으로 마찰도 있었지만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화 자체를 위한 대화에 치중하지 않고, 그리스도 중재의 유일성과 보편적 구원의지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계획으로, 역사를 앞질러가지 않고 그 징표를 읽어내며 따라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 안에서 일치와 다양성의 모범을 찾을 수 있다. 초대 교회부터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교회에 원동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한 교회의 여정은 불고 싶은 데로 부는 성령의 활동을 좇아가면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 23-24)
교회가 본격적인 행동의 대화를 취한 것은 1986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아시시에서의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회 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도회는 종교인의 역할을 되새겨주었고, 2001년에는 25주년을 맞이하여 또 한 번의 기도회가 열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초월적인 목표를 향한 형제적 여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에는 2차 기도회 10주년을 맞아 베네딕도 16세에 의해 “진리의 순례, 평화의 순례”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세계 평화 기도의 날이 마련되었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 상호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서 함께 걷는 대화의 순례를 계속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분이 우리를 소유하고 있기에 그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위의 두 차례의 기도회에는 한국의 유교 및 불교 대표도 참석한 바 있다.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식에는 그동안의 대화와 관계를 축적해 온 결과를 보여주듯이, 여러 종교 대표단이 참석했다. 가톨릭교회의 종교간 대화는 지향과 실천에서 변함없이 지속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로 공식 활동에 나선 것은 2000년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담당 사제(고 김몽은 신부가 KCRP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와 평신도들이 국내 종교간 대화 협력기구인 KCRP(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접촉을 가지면서 종교간 대화가 시작되었으나, 2000년에 최초로 위원장으로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가 임명되면서, 대희년을 맞아 자연스럽게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석탄일에 불자들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게 되었고, 그들도 성탄에 우리에게 축하전문을 보내온다. 2002년에는 교황청 종교간 대화 위원회의 아시아지역 12개국이 참여하는 자문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대화의 활기를 띠게 되었다. 2004년부터는 김희중(히지노) 대주교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아시아 주교협의회 및 교황청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서 정기적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년간 KCRP 대표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대화가 매우 활발해졌다.
CBCK 종교간 대화위원회는 KCRP와의 협력이 확대되면서 불교, 원불교, 유교의 학자를 초대하여 그들의 교리의 가르침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으며, 신자들을 위한 종교간 대화의 길잡이로 아린체 추기경의 책들을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비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반포 4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행사로 국내 각 종교계 대표들과 유다교 및 이슬람교 대표를 초빙하여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한 공동기도회 및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2010년에는 교황청 종교간 대화 위원장 토랑 추기경을 초대하여 국내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비롯하여 종단본부들을 방문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된 ACRP(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제3차 총회를 계기로 태동한 KCRP는 국내의 사회 현안이 되고 있는 주제나 정부 정책에 대해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한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셈 종교간대화' 서울 주최 시 선언문 초안 준비에도 함께 기여한 바 있다. 매년 4개 종단 성직자들의 정기 축구시합을 비롯하여 상호 만남을 통해 좋은 형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 개최를 앞두고 개신교내의 갈등이 커짐을 보면서 KCRP 종단이 함께 힘을 실어 지지하는 성명서도 낸 바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국제사업단까지 구성되어 아시아에 종교 간의 갈등이 있는 여러 나라에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한 물적, 영적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또한 ACRP와 WCRP(세계종교인평화회의) 총회에 국내 여러 종교 대표단이 함께 참석하면서 대내적으로뿐 아니라, 1993년 창립된 북한의 KCR(조선종교인협의회)과도 교류하며, 나아가서는 한·일, 한·중 정기만남도 갖고 있다. 한국의 종교간 대화는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되는 좋은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층에서 공적으로 이뤄지는 대화와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일상에서 사랑의 계명을 사는 삶의 대화이다. 그리스도인은 말로 하는 선포가 아닌 말씀을 사는 증거의 삶을 통해 올바른 신앙을 증거할 때, 이웃 종교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도 맞이할 수 있다. 필자는 이웃종교인들을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을 때 그리스도교 정신이 전달됨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벽이 허물어지고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나아가서 종교간 대화는 종교가 갖는 본질적인 가치를 보편적인 차원에서 비종교인들과 공유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각종 형태의 청소년들의 사회 문제 현상은 어느 때보다 종교교육을 통한 영적, 윤리적 함양이 요구되고 있어서 보다 긴밀한 연대를 통해 사회전반에 기여할 필요가 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