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잘려 죽다니!
어린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의 성인에 대한 수업때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듣고 난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견진을 할때
세례명을 바꿀수 있다해서 바꾸려하자 수녀님이 말리셨다.
그러시면서 수녀님 하시는 말!
"미사때 사제가
황금쟁반인 성반에 성체를 담아 올리듯
세례자 요한의 머리도 쟁반에 담겨 희생된것이지
그것이 충격적이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옳은 말을 하고 불의 앞에 생명을 내어놓는 희망의 순교이지!"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으로 피의세례를 받았다고 교부들은 전한다.
그는 자신의 수난으로
이날을 거룩하게 하였고 자신의 붉은 피로써 빛나게 하였다.
그는 지혜서가 말한바와 같이
"그가 사람들 눈에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정의를 증거하기 위한
조명빛은 핏빛이어야 함은 두렵고 떨리는 사실이다.
왜 쟁반에 하필 머리를 담았을까?
답은 확실히 누구의 머리인지 보여줄수 있었다.
온전한 수치심을 느낄수 있겠다.
예수님의 옷벗김이 연상된다.
온전한 봉헌은 자존심까지 포함된다.
썩어 밑거름이 되는 삶이 부활이다.
죽지않으면 다시 살지 못한다.
철저한 죽음의 표징이 바로 쟁반의 머리를 잘리움이다.
인생의 허무하고 불의했다.
어느 젊은 아가씨의 춤사위 하나에
술기운에 놀아나 그흥돋음의 댓가로 들어준것이
가장큰 예언자의 머리가 즉석에서 잘려 과일술안주도아닌 잔치 분위기를 띄우는 술안주가 된다.
우리의 죄의 잔치에서
죽음이 아닌 죄의 회개와 용서
그리고 구원을 위한 만찬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바로 성반위에 올려지는 주님의 살과 피다.
주님 역시 빌라도와 군중 ㅡ
바로 우리 자신인 군중에 의해
비참히 죽어 천상잔치의 음식이 되지 않았던가?
쟁반! 쟁반에 음식을 담으면
어느 그릇보다 잘 그릇위의 음식이 잘보이지 않는가?
세상 모든이에게
보여주고 알리려는 쟁반위의 양식인것이며 희생인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그런 구원의 잔치를 위한 쟁반위 희생제물이었다.
희생의 참의미는 주님만이 아시고 갚아주신다.
십자가의 예수
그젊은이 옆에 어머니 마리아!
세례자 요한 어머니 엘리사벳은 다행히
그 쟁반위 아들의 잘린 목을 보지는 못했으리라!
내 하루의 작은 희생이 죄의 회개와 누군가에게 필요한 밑거름인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