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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90mm 굴절로 보는 하늘이 경탄보다는 아쉬움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2014년 가을부터 시작됐던 것 같고 작년 5월 궁수자리 대상들을 다른 별지기의 돕으로 보고 메그레즈90으로 별 보는 아쉬음은 더욱 깊어졌던 것 같다.
아직 90mm로 더 보아야 될 것이 많이 있지만 GS 12인치 돕에게 밤하늘을 당분간 양보하고 집에서 쉬어야 될 것 같다. 한참을 트레스12(12인치 돕 애칭)로 밤하늘을 보고 난 후 메그레즈90으로 다시 보면 그 때는 지금과 다르리라 생각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Ⅰ 3월1일
날씨가 모처럼 좋아서 하현임에도 불구하고 관측 준비를 한다. 황원욱님에게 메시지를 남기니 오후 늦게 달빛으로 온다는 연락이 온다.
하늘이 훤할 때 달빛으로 가는 건 처음이다. 들에는 파릇파릇한 기운이 솟고 있다. 벌써 봄을 준비하는 농부가 있다. 곡식 한 알 생산하지 못하는 별을 보러 나는 지금 달리고 있다. 나는 잉여인가? 초월인가?
달빛에 도착하니 해가 질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늘은 점점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1. 페르세우스 이중성단
광축을 맞추고 파인더 정렬을 한 후 나의 트레스12(12인치 돕 애칭)로 처음 본 대상이다. 메그레즈90으로 항상 기분 좋게 보던 대상인데 트레스12는 또 다른 감흥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충분히 냉각이 덜 된 상황에서도 20mm 아이피스(75배율)로 본 이중성단은 거의 점상에 가까운 별상과 별들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정말 필요할 때 돕으로 잘 바꾼 듯 하다.
안드로메다는 서산으로 기운지 오래이고 M76부터 48까지 감탄에 경탄을 하며 쭈욱 보았다. 천장 부근에 M1과 마차부 자리의 산개성단이 있었는데 보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굴절로 천장 부근의 대상을 호핑하려면 거의 고행 수준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별 보는게 너무 편하다. 거디다가 트레스12는 90mm 굴절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별들의 패턴사이에 암흑대처럼 있는 검은 공간들이 확연히 구분된다. 저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리온 대성운
필터없이도 후방까지 풍부한 성운기를 느낄수 있다. 나는 필터를 끼면 주위 별들의 감흥이 죽어서 되도록 노필터로 성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젊은 별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트라페지움의 중심부를 90mm 굴절보다 좀더 상세하고 풍부한 성운으로 보니 그럴듯하다.
m1과 m41,42는 별의 탄생과 소멸이 일어나는 중요한 대상인데 90mm 굴절은 그것을 실감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상을 보여 준다.
은하수를 배경으로 은하처럼 보이는 m1도 나쁘지 않으나 트레스12로 보는 m1은 중심에 중성자 별의 회전으로 인한 성운의 발광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에 좀더 신경써서 보면 안에 필라멘트 구조도 보는 날이 있으리라.
m78은 보고 정말 놀랬다. 90mm 굴절은 뿌연 성운기만 보여 주었는데 트레스12는 머리 부분에 두 개의 눈처럼 빛나는 두 별을 보여 준다. 이것이 혜성의 머리처럼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m78은 이 두별의 빛을 반사해서 보이는 성운이라고 한다.
m46은 정말 보석 같은 대상이다. 특히 엉성한 47과 대비되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 안에 있는 행성상 성운은 필터 없이도 바로 보인다. 메그레즈로 필터 끼고도 그렇게 보기 힘들던 놈인데...
사자 자리 은하들 그리고 목성
m95.96,105는 길잡이 별로 삼고 있는 5.3등급 별이 보여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는다. 105번 근처의 유령처럼 떠돌던 먼지 덩어리들도 트레스12는 은하라고 나에게 알려준다. 사실 산개 성단은 아직 스케치 할 엄두가 안나고 은하는 스케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하고 싶다.
메그레즈90의 감흥 유통기한이 3년이었는데 트레스12의 그것도 이와 비슷할거라 생각이 드는데 유통기한이 끝나면 본격적인 첫 스케치를 사자자리의 은하에서 시작하고 싶다.
꼬리 부분의 세 은하 중 ngc3628(햄버거은하)의 암흑대가 선명하다. 14mm에서는 암흑대가 좀 무너지고 20mm에서 좀더 선명하다. 거기다 아이피스 한 시야에 세 은하가 동시에 들어오니 더욱 좋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목성 대적반 눈썹까지 보인다. 목성의 시상이 좋기도 하고 고도도 적당하다. 목성의 고도가 내년부터 점점 낮아 진다는데 볼수 있을 때 열심히 보아야지.
메시에 그리고 바흐
아이피스의 배율에 따라서 은하의 느낌이 다른 것은 물론 같은 아이피스로 보아도 1~2분 사이에 보이는게 많은 차이가 난다. 메그레즈90에서 트레스12로 바꾸면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다. 90mm 굴절은 광량 부족으로 어두운 대상들을 볼 때 그 차이들을 감지하기 어려운데 12인치 돕은 딥의 변화들을 예민하게 반영해 주는 것 같다.
밤하늘을 관측하면서 하는 생각중 하나가 나는 관측 대상을 그리 많이 확대 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 대상을 한번 휙 보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왜 굳이 밤하늘에 수도 없이 많은 은하들을 찾아 헤매 다녀야 되는지 아직 그 답을 확실히 내릴 수 없다. 나는 전 우주에 천억개가 넘게 있다는 은하들을 찾아 떠돌기 보다는 메시에 목록에 있는 대상들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사실 메시에 목록이 관측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일단 별지기의 ABC에 해당되기도 하고 별들의 탄생과 우주의 깊이를 아는데 메시에 대상들은 큰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보는것에만 만족한다면 메시에 대상들을 몇 번 보는 것으로 실증이 나겠지만 그 의미까지 떠 올리면 식상함이 좀 더 늦게 오리라 생각된다. 90mm 굴절은 내 공부가 짧기도 했지만 우주의 깊이를 떠올리기에는 너무 빈약한 상들을 보여준 것 같다.
바흐의 인벤션 1번은 거의 6달 치고 있고 골드베르크 4번은 3개월째 연습하고 있지만 아직도 칠 때마다 새롭고 고칠게 나온다.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절대로 긍정을 하지 않지만 나의 꿈이 로잘린 투렉의 기품있고 깊이있는 바흐 연주를 하는것인데.... 투렉여사는 90의 나이에 명상에 가까운 골드베르크 녹음을 남기고 있다. 나도 90세까지 연습하면 그거 비슷한 소리가 나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바흐 피아노 연주에서 굴드를 많이 거론하는데 나는 투렉을 최고의 연주로 평가한다. 둘이 비슷하면서 다른 점들이 있는데... 투렉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연주의 기품과 깊이도 있지만 레파토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내 성향과 좀 맞는 듯...
밤 하늘의 메시에 대상들을 눈에만 보이는 표면적인 관측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아는 관측을 하고 싶다.
처녀자리 은하들
m104 솜브레로은하
20mm로 쨍한 암흑대를 보여준다. 14mm는 암흑대의 선명함이 무너진다.
메그레즈90은 처녀자리 은하단에서 주로 메시에급 은하들만 보였는데 트레스12는 더 어두운 은하들까지 보여주어 이 은하가 그 은하인줄 확정하는데 힘이 든다. 그래도 차분한 배경의 별들과 은하들의 배치가 정갈하고 단아한 맛이 있다. 그리고 제 각각의 은하들의 모양이 재미있다.
이곳은 20mm 보다는 14mm 또는 10mm(150배)로 보는 게 좋은 듯하다. 광량을 죽여서 배경을 까맣게 하고 시야각을 죽여 별들의 개수를 줄여서 처녀자리 은하들을 좀 더 단아하고 정갈하게 하는 것 같다. 은하의 주위 별 배치와 은하의 모양을 기억해서 그 은하의 연구된 특징들을 기억하며 그 은하를 보면 보는 맛이 더 좋을 듯 하다. Different 와 Indifferent.
한참 낑낑거리며 은하들과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같이 동행한 황원욱님이 내일을 위해 장비를 접기 시작한다. 잠시 후면 달도 뜨는 관계로 같이 장비를 접고 집으로 향한다.
Ⅱ 3월 2일
날이 좋아 어제의 보다 만 처녀단 은하의 단아함이 눈에 밟혀 다시 달빛으로 향한다. 서쪽으로 지는 대상부터 어제처럼 다시 훓어 나간다. 처녀자리와 큰곰자리의 은하를 볼 생각때문인지 연속 이틀을 본 때문인지 트레스12로 보는 대상들의 감흥은 떨어진다.
이날은 어제 장비만 펴고 돕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보지 못한 ms 1570으로 보는 감흥이 컸다. 트레스12로 관측하고 나서 1570으로 찾아서 보았다. 도트파인더를 쌍안경에 다니 대상 도입하기가 너무 쉽다.
트레스12로 자세하게 보고 쌍안경으로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그 대상을 다시 한번 보니 감흥이 새롭다. 이놈의 실시야각이 4.5도인데 6.5도인 다까하시 파인더 보다도 훨씬 시원한 맛이 난다. 당분간 트레스12와 같이 밤하늘을 탐색해 나갈 듯 싶다.
목성 영,경,식
사자자리 은하를 보는데 ngc3628의 암흑대가 어제처럼 뚜렷하지 않고 삐리리 하다. 그래서 옆에 있는 목성을 보았는데 영현상이 보인다. 스바루님께 말하니 가니메데 영 현상이라고 한다. 잠시 후에 가니메데의 경현상도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유로파가 목성 그림자로 들어가서 어두워지는 식현상이 일어나는 때를 맞추어서 스바루님과 같이 보았는데 나는 아이피스를 바꾸느냐고 밝기의 변화를 극명하게 느끼지 못했다. ㅠㅠ
m51, 101 부자은하
목성의 시상이 너무 좋아 큰곰자리에 있는 은하들을 본다. 작은 은하로 뻗어 가는 브리지가 선명하며 큰 은하의 나선팔은 물론 작은 은하가 돌돌 말리는것도 보인다.
m101 나선팔이 잘 보인다. 계속 보고 있으니 나선팔이 점점 퍼져 나가고 암흑대가 뚜렷해진다. 마치 암모나이트를 보는것과 같다.
북쪽 하늘이 유난히 까맣고 별들이 많다. 작은곰 자리의 5.7등급의 별이 보인다. 그것보다 더 어두운 자잘한 별들이 보인다. 적어도 6등성의 별들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럴 땐 맨눈으로 하늘 보기. 도날드 의자에 앉아 북천을 바라본다. 스바루님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장비를 접는다.
하현달
북천을 맨눈으로 보며 상념에 잠기다가 달이 뜨고 문필터를 끼고 트레스12로 분화구와 계곡들을 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아직 저고도에 있어서 표면이 일렁거렸지만 90mm 굴절로 보는 것과는 정말 비교 불가일 정도로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달 공부 하신 분들는 분화구와 계곡들의 이름들과 그 크기 등을 아는 것 같던데.... 달이 떠있을 때 집 근처에서 트레스12를 펼쳐서 그 하나하나의 의미들을 새기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앞으로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이틀 연속 관측은 지양해야겠다. 몸도 너무 힘들고 스케줄도 한참 꼬이는 것 같다. 운동도 금요일 하루 밖에 하지 못했다.
마태 수난곡
바흐 최고의 곡으로 얘기되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마태수난곡. 이번에 라이프치히 토마스 합창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 전에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공연한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종종 반주자로 서는 피아노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싸지만 합창곡 음향은 좋은 발코니 석을 예매했다.
가사를 몰랐을 때는 그저 합창곡 위주로 들었는데 가사를 아니 독창곡의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마음에 화가 올라 올 때 이곡을 차분하게 들으면 좀 진정이 된다. 무신론자인 나는 마태수난곡을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과정에서의 수난으로 읽기 보다는 위대한 이상을 가진 인간의 고난에 대처하는 과정으로 읽는다. 그 과정이 의연하기도 하고 눈물겹다.
예수의 고난에 비하면 나의 갈등들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가?
지금은 올드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마태수난곡으로 평가하는 리히터 1970년 공연. 내가 생각하는 바흐 음악의 정수는 단단함과 경건함인데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리히터의 해석인 것 같다. 예수, 바흐, 리히터 위대한 세 영혼의 하모니
.https://youtu.be/CXPpiXdpIq4?list=PL244CEA0602505065
첫댓글 돕의 애칭이 트레스 ( 스~트레스) ..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약간 당혹 스럽구만유..농입니다.
점하나 찍으니 남이 되는군요. ㅋ. Trespass 줄여 봤습니다. 나쁜 남자 코스프레입니다.
칸트주의자는 아니지만 Transcendental(초월)을 줄이려다 다 생각하시는 그 어감이라서 이걸로... 생각해 보면 두 말의 근원은 일맥 상통하는면도 있는듯 합니다. ㅅ_ㅎ
보고도 표현하기가 참 힘든데
현우님의 글을보면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새장비로 더 깊은 우주를 헤메고 다니시니 부러울 뿐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썼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더 깊은 우주를 보기보다는 이제껏 보아왔던 우주을 더 깊게 볼것 같습니다.
열정과 집념에 박수를 짝짝짝!
제가 몇년동안 보고 쓴것을 하룻밤에 다 보시고 음향이 믹싱된 후기까지!...
그런데 왜 갑자기 알파고가 떠 오르죠?^^
격려에 없는 열정과 집념이 생길것 같습니다. ㅅ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