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말하면 나야뭐 여러 꽃님들 덕분에 힘 안들이고 예쁜 야생화 감상하니 너무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요.
단지 염려 되는 것은 야생화의 열기가 너무 과열되어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나의 속 좁은 이기심에서 그냥 한번 딴지 걸어본거니까. . . .
용서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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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자연을 사랑한다고 야생화를 찾는다면서 하면서
여러분의 행동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다고, 야생화를 사라지게 하고 있지는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정답던 우리 꽃 들.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 흔하던 나리꽃도 패랭이꽃도 산마늘도 이젠 동네 뒷동산에서는 볼 수가 없군요.
몇 년 전엔 깽깽이풀도 있었는데 . . . 어느놈이 그만 . . . .
해가 지날 때마다 작년에 피었던 그 자리,
그 야생화가 생각나 다시 찾아가 보면 없어지곤 하는군요.
누구의 잘못일까요 . . .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 오히려 야생화의 멸종을 불러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오늘도 님들 . . .
희귀한 야생화를 찾아 심산 유곡을 헤메셨나요. 멸종위기의 야생화를 보시고 환호 하셨나요.
그 때 또 그 발 밑에는 또 얼마나 많은 야생화가 짓밟혔을까요 . .
님의 야생화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또 다른 야생화가 울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야생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야생화를 훼손도 하지 않던데 . . . .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멸종 위기의 야생화를 보았다고 자랑하시렵니까
비싼 보석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의 속된 자부심과 무엇이 다르지요?
특이한 것- 한정품 소유했다고 뽐내고 귀족 행세하려 졸부들과 무엇이 다르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언가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런 것은 자연의 속성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속세의 비싸고 희귀한 물건을 가지고 뽐낼 일이지,
왜 하필이면 그 소박한 야생화를 가지고 . . . . . . . .
하물며 야생화를 채취하는 일에 있어서는 분노가 치솟습니다.
꽃 말입니까. 원예종 사실이지 더 예쁘고 고상하고 여러분의 정원과 혹은 실내와 잘 어울리고 다양합니다.
야생화
그 꽃이나 화려함이 대개 줄기와 키에 비해 빈약합니다. 야생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들판이나 산기슭의 그 풀더미 속에 있기에 그 주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것입니다. 조화미라고나 할까요,
무엇이나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있어야 아름답지 방바닥에 있으면 추하듯이 . . . .
논밭에 산야에 있는 흙은 더럽지 않으나, 거실이 이나 방바닥에 뿌려진 흙이 더러운 것처럼 . . . . 야생화가 있을 곳은 자연 그대로의 산과 들입니다
얼마 전에 죽은 유명한 부시맨이 그 미국에서의 그 잘해주는 대우를,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아프리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살다 갔다지요,
야생화의 고향은 생육조건이 맞는 제자리의 산과들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한다해도 결국엔 죽이기 쉽상이지요.
나는 아닐꺼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 때문에 오늘도 야생화는 하나 씩 사라져가고 있지 않을까요.
혹시 여러분이 진짜로 육종학이나 식물에 관해 연구하는 연구 기관에 있다면 모를까.
그런 곳에는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과 거기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는 갖추었으니까. . .
진정 희귀한 야생화가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면, 우리가 그것을 채취해다 어줍잖은 지식으로 키우려다 죽이는 일이 아니라,
정 못견디겠거든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에 알려주는 일일 것입니다.
야생화의 연구는 공인된 연구소에서 공인된 연구진에 의해서 만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연구되어 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시는 푸른산빛님의 글 일부를 인용합니다.
참으로 인상깊고 존경스럽습니다.
『1년여 전에 카메라를 사고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초막 주변의 넓은 땅에
야생화를 캐다 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한참 잘 못 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밥알이 밥그릇에 담겨 있을 때는 먹음직스럽고 이뻐 보이지만
누군가의 콧잔등에 붙어 있다면 오히여 더럽고 추해 보이는 것과 같이
야생화란 야생상태에서 자생할 때만이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야생화가 뽑혀진 자리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고
뽑아 가는 사람(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보게 됩니다.
물론 뽑아 가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 모두의 것을 왜 너의 것인냥 뽑아 가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화단이나 화분에 심도록 만들어진 원예종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야생화를 뽑아다 심는 것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산골에 들어와 머물기 5년 여.
단 한 포기, 단 한 송이의 야생화도 옮겨 심지 않았는데도
초막 주변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금낭화를 비롯해 환삼덩굴, 마디풀, 별꽃아재비, 진득찰, 박주가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