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진지하게 챙겨서 본 것은 6년쯤 되었을까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영화를 보고 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이제 100번째 영화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 외적인 코멘트를 다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100번째 영화글이니 만큼 조금 특별한 영화를 선택하였습니다. 조금은 사심 가득히 만나게 된 영화, 그리고 펑펑 울었던 영화, 가슴 깊숙한 곳에 영원히 살아 숨 쉴 영화. 이 특별한 감정을 함께 나누고 싶기에 이렇게 글에 대한 코멘트를 남깁니다.
'태양의 노래'를 만나게 된 것은 소녀시대 멤버인 태연이 출연하는 뮤지컬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서이다. 영화만큼이나 뮤지컬을 좋아하고, 소녀시대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소식은 당연히 매력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기에 정보를 찾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태양의 노래'는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태연의 인기는 압도적이라 뮤지컬의 표를 구할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영화를 만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뮤지컬 '태양의 노래' 또한 잊지 못하지 않을까. 물론 태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성이 워낙 작품과 잘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처음 '태양의 노래'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화사한 해바라기였다.(재미있게도 뮤지컬의 공연포스터에도 해바라기가 들어가고, 유이의 죽음 이후 유이의 시신을 장식하는 것 또한 해바라기이다) 그러나 영화의 시놉시스를 접하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나를 잠식한 이미지는 어둠-안타까움 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유이와 유이의 음악은 그런 어둠과 대비되며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태양의 노래'는 아름다운 OST를 가진 작품이다. Goodbye days라는 메인에 Skyline과 It's happy line이라는 압도적인 라인업으로 구성된 태양의 노래 ost는 그야말로 최고라는 찬사를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악들이다. 그리고 '태양의 노래'는 작품의 메인테마인 'Goodbye days'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림과 동시에 '카오루(유이 分)'의 삶과 죽음을 그려낸다. 그것은 카오루가 느끼는 어둠의 세계에서 지내야 했던 고통부터 시작하여 그녀가 점차 세상으로 나와 빛과 마주하는 것을 그려낸 '태양의 노래'에서 OST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신경계통에 이상이 오는(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카오루라는 소녀는 '어둠'을 의미한다. 자외선을 쬐면 안되기 때문에 낮에 자고 밤에만 돌아다닐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행복은 아무도 없는 역 앞에서 '스트리트 라이브(Street Live)'를 할 때 뿐이다. 라이브는 태양이 지고 시작하여, 태양이 뜨는 시간까지 이어진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It's Happy line'.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흐릿한 날들을 보내며 느껴야 하는 아픔과 슬픔을 노래하는 카오루는 작품 내에서 의사가 '무서운 것은 자외선보다 동반되는 신경쇠약'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너무나 연약하고 부서질 듯이 희미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카오루의 일상에 '후지시로 코지'가 들어온다. 서핑을 좋아하는, 태양 아래에서 활동하는 그를 카오루는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렇게 카오루는 '코지'를 꿈꾸는 것을 통해 세상으로 날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만남. '코지'는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 카오루는 '당신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고' 라고 말하는 Goodbye days를 부른다. 그러나 아직 Goodbye days는 미완성 곡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노래와 그녀에게 빠진 '코지'는 그녀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간다. 지금까지 혼자서 노래를 불렀던 그녀가 나아간 새로운 세상에서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노래한다. Skyline. 세상으로 나가고, 날아오르고 싶지만 방 안에만 갇혀 살아야 하는 슬픔을 노래한 Skyline을 통해 카오루는 세상으로의 비상을 꿈꾼다. '날아오르는 방법을 모르는 것 뿐, 누군가가 가르쳐 준다면 좋겠는데' 라고 노래하는 카오루의 옆에는 '코지'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위해 노래한다. 'Goodbye days' 하지만 역시 아직 'Goodbye days'는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지'와 만나 행복함을 느끼던 카오루는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을 잊고 태양에 노출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에게 '태양을 보여주고 싶었던' 코지가 있었다. 태양을 보지 못하는 카오루는 집으로 서둘러 도망가며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태양을 상징하는 코지는 자기가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코지는 그녀의 병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카오루를 위해 음반을 녹음해주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존재이유인 '서핑'마저 포기한 채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나 카오루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병으로 인해 신경이 마비되고 곧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된 카오루는 '기타를 치지는 못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목소리가 있다' 라고 말한다. 비록 무너져 가는 몸 안에서 생명을 외치는 카오루는 이제 연약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슬프다. 무너지는 육체안에 갇힌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코지와 카오루의 가족은, 카오루를 위해 마지막 녹음을 준비한다.
마지막 녹음에서 카오루는 모두에게 '나가달라' 라고 말한다. Goodbye days는 완성되었지만, 아직 카오루는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오루는 세상에 'Goodbye days'라는 음악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런 카오루의 시신을 둘러싼 해바라기는, 태양을 꿈꿨지만 태양 앞에 나서지 못한 카오루의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게 카오루를 보낸 코지와 카오루의 가족은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 Goodbye Days는 그렇게 완성된다. 카오루의 일생이 담긴, 그녀의 영혼을 담은 Goodbye days는 카오루의 죽음을 통해 완벽한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둠 속에 숨어있었던 Goodbye days는 카오루와 만남으로 인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카오루 자신의 영혼을 담은 채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렇게 카오루는 태양 앞에 나서지 못했던 자신의 슬픔을, 노래를 통해 승화시킬 수 있었다.
코지와 만나기 전의 카오루는 말했다. 밖에 나가고 싶다고. 그것은 자유를 선택하고자 했던(죽음을 각오하고라도) 그녀의 영혼을 보여준다. 그러나 코지와 만난 이후에 카오루는 말한다. 자외선 차단복을 입고 '덥다'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귀찮으니까 벗을까?' 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에게. 죽고 싶지 않다고, 죽음이 나에게 찾아올 때 까지 살겠다고. 열심히 계속 살아갈 거라고. 지금까지 딸을 위해 절대로 차단복을 벗지 못하게 그녀의 자유를 제한한 아버지는 마지막에라도 딸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오루는 스스로 '삶'을 선택했다. 그것은 코지를 만남으로서 세상과 마주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지는 그녀의 CD를 방송국에 보낸다.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보낼 거라고. 그렇게 카오루를 세상에 알려서 사랑받게 만들겠다고. 태양 아래서 살아가는 코지는 그렇게 카오루를 햇살 아래로 이끈다. 그리고 결국 카오루의 음악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게 된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카오루가 부른 '태양의 노래'가 완성된다. 카오루는 죽었지만, 카오루의 영혼은 'Goodbye days'안에서 살아 태양 아래에서 흐른다. 그렇기에 그녀의 음악은, 그녀는 '태양의 노래'가 되었다.
OST를 부른 유이 자신이 카오루를 연기했는데(유이는 현역 가수로 활동중이다) 전문적인 연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이가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로 멋지다. 특히 영화의 최후에 나오는 'Goodbye Days'의 녹음장면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감정을 표출시키는, 눈물을 터뜨릴 뻔 하다가 자기 자신을 추스르는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오히려, 가수였기 때문에 그것을 살려낼 수 있었을까? 그 뿐만 아니라 창백한 얼굴에 청순함을 갖춘 외모 또한 '카오루'라는 캐릭터(자외선에 노출되지 않아 하얗고, 그만큼이나 위태로운)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또한 전형적인 일본영화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감정의 흐름에 비중을 두는 일본영화답게 부드럽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전개와 OST에 중시한 분위기. 그리고 적절하게 섞여 들어가 작품에 녹아드는 유머코드는 작품이 지루해지지 않게 관객들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작품 외적인 부분도, 작품 내적인 부분도 충실하게 연출된 영화는 흔치 않다. 감히 단언하건데, '태양의 노래'는 10점 만점에 10점도 모자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카오루의 삶, 영혼 그리고 노래. '태양의 노래'는 그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래서 너무나 슬프게 그려낸다. 이 영화를 만나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몇 번을 봐도 희석되지 않을 순수한 감정이다. 그렇기에 '태양의 노래'는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끊임 없이 숨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