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열린의사회의 해외봉사현장
'아름다운 봉사중독'에 리비아 치료하러 간 천사들
열린의사회 의료구호 봉사 … 내전 후 찾아간 첫 해외 NGO "그들 눈에 가득 찬 슬픔이 진료의 손길을 더 바쁘게 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봉사에 중독된 사람들입니다.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북서부에 있는 리비아 석유공사 직영 종합병원인 오일클리닉 진료실에서 조주영 치과의사와 염혜숙 간호사가 칠순을 넘긴 리비아인 모하메드 도우 씨의 충치를 치료해주었다. 40분간 꼼꼼히 치료받은 어르신은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슈크란)를 연발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제 맘껏 음식을 씹을 수 있게 됐다며 거듭 인사했다.올해 설립 15년째인 국내 최대 민간 의료봉사 단체 열린의사회(이사장 고병석)의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22명이 구랍 18일부터 리비아에서 긴급 구호 봉사에 나섰다. 리비아 주재 한국 대사관과 현지의 대우·현대·한일건설이 후원하고 있다. 내전 후 리비아로 봉사활동을 온 첫 해외 NGO로 열린의사회로서는 66번째 해외봉사다.
석유 부국 리비아에 좋은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은 꽤 많다. 그러나 문제는 실력 있는 의사들이 사회주의적 체제 아래선 돈을 충분히 벌 수 없어 해외로 갔기 때문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트리폴리 중앙병원조차 인력부족으로 절반만 운영되는 실정으로, 부유한 이들은 리비아에 진출한 해외 유료병원을 이용하거나 이웃 튀니지·유럽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가난한 이들만 무상진료를 해주는 자국병원을 이용하고 있지만 내전으로 이마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봉사단장인 홍태용 김해한솔병원장은리비아에 간다고 하니 가족이 많이 걱정했지만, 그래도 리비아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봉사단은 가정의학과·내과·외과·이비인후과·비뇨기과·한의학과·치과 등 분야별로 의사 1명, 간호사 3명, 약사 2명으로 꾸렸으며, 의대·한의대생들은 통역과 진료지원 봉사를 맡았다. 모두가 왕복 항공료를 자비로 부담했고, 휴가를 내거나 병원의 문을 닫고 온 의사도 상당수다. 항생제·진통제 등 5,000만원어치에 가까운 약품 80가지도 직접 챙겨왔다.오일클리닉 진료실에는 벌써 400명 넘는 환자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김길섭 한의사는 한의대생 이지인 씨의 도움을 받아 사흘간 140명에게 침을 놓았다. 침 한번 맞으려면 3~4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도 환자들은 장사진을 이룬다. 내전 때 계속된 총격과 공습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 소화불량이나 불면증 환자도 부지기수다. 이일영 내과 전문의는 환자 셋 가운데 한 명은 가족을 잃은 여성이라며 그들 눈에 가득 찬 슬픔을 보면 더욱 열심히 진료하게 된다고 했다. 열린의사회는 의료진을 재편해 금년 초 다시 리비아로 의료봉사를 떠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