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숙, 지금 여기에서
ㅡ여성 시인보 백년 100인보 연작시 한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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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없다. ‘사는 법’이 죽는 법, 날지 못하는 날개는 떼어 버려요. 하루에 열두 번도 하늘 보는 법, 나는 있다 죽는 법이 사는 법, 해방 후 최초 등단 여성 시인으로 풀잎처럼 사는 법,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들꽃처럼 야행하며 사는 법, 스무 살 연극무대, 운동권학생으로 포복하며 사는 법, 곱디고운 소녀 같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오. 한 사발의 목숨을 위하여 전란 중에 북의 보위부에 조사받으며 사는 법, 피의 내림 길에서 죽지 못할 유서는 쓰지 말아요. 환도 후에는 되도록 몸은 작게 숨만 쉬며 사는 법, 전향한 남편이 정계 입문 후 남파 공작으로 몰리면서 수감 생활 뒷바라지 추운 몸 살 부비고 남은 불 지피면서 사는 법,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에서 태양에 살을 지지며 4남매를 데리고 단단한 열매로 사는 법, “가고 싶었다. 폐허로 변한 거리 그 모든 것이 포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한들” ‘생명의 향연’을 위해 전쟁의 외상과 더부살이 하며 사는 법
1983년 오월 정오, 무역 회사 초년병 시절, 그 당시 자유중국 대사관 앞길로 단발의 여사가 수채화처럼 걸어오고 있다. 나부끼는 한복 통치마와 나래 접은 저고리, 단아하고 쓸쓸하게 젖은 눈빛, 단숨에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홍윤숙 시인님이시죠, 신문에서 많이 뵈었어요.” 스치는 아카시아 향기가 잠시, 그해 겨울 시인님의 ‘사는 법’을 2,000원에 사서 지금 여기에서 읽는 법, 등단 후 행사에서 “선생님, 저 모르시겠지만 30년 전 명동에서 뵌 청년입니다.” 저녁의 미소가 은빛으로 사는 법
2015년 시월 저녁, 시협에서 받은 부고 문자 ‘단풍 따라 곱게 간 시인을 찾습니다.’ 마치 중국 대사관 앞이라는 것을 아는 듯이, ‘명동백작’에서 ‘사는 법’과 동동주하다. 장례식장 2호실 앞에서 멈춘 발, 마지막 시집은 ‘죽음 앞에 의연하고 당당하라’*, 이승 끝에 서서 보아, 날마다 이승의 끝에 서서 생의 문법을 외어 보아.
* 홍윤숙 시인의 영정 옆에 크게 써 조문객들에게 보낸 글귀이다.
ㅡ미네르바 2019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