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목백일홍 / 박일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절은
막 번지기 시작한 초록을 펼쳐 보였다
바라보면 아쉬움만 가득한 숲에서
흰 관절을 드러내며 악수를 청하는 그를
배롱나무라고도 했는데
동백꽃지고 처서까지 가는 계절을 이으며
절간 자락을 붉게 붉게 흔들며
온 몸을 달군 채 반겼다
먼 길 찾아 나선 내 발목 가시를 빼주며
잊지 않고 지켜온 맨살로,
눈물 섞인 얼굴로 바라보던 당신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절 마당에서
당신의 결심은 단호하고
돌아가야 하는 길은 멀고
이내 아득해 지는 숲을 보며 우리는
빈 배처럼 줄에 묶여 흔들렸다
쉽게 떠날 수 있을까
당신은 또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대웅전에서 관음 앞에서
게걸음을 끌고 온 내 일상이 비로소
합장한 탑을 닮는다
자진하는 몸빛
제 몸을 덥혀서 산야에 번지는 초록을 식히는,
자미화라고도 했다, 당신
<전북문화재단 시선집,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
[박일만]
· 전북 장수 육십령 아래에서 출생
·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詩) 수료
· 2005년 《현대시》 등단
· 문화예술 창작지원금 수혜(2011, 2015)
·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2019)
·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2015.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뼈의 속도』 2019.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
·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전북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