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 박일만
꽃 피우기는 영 글러버린 화초를 내 놓았다
춥고 긴 겨울이었다
화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부동자세로
성자처럼 겨울을 났다
큰 눈이 와 잎에 가지에 쌓여 온몸이 축 처졌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를 닮았다
이른 봄
앗!
내다버리려던 눈길을 때리는 촉
불에 데인 듯 화들짝 놀랐다
꽃을 피우려고 필사적으로 솟아오른 꽃대
삶과 죽음이
한가지로 겨울을 났다
[시작노트]
코로나 19로 온 지구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봄. 겨울 같은 구석이 아직도 남아 봄을 시기하고 있다. 봄은 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자칫 질투와 갈등이 번져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일 수도 있다. 자연의 이치를 망각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인류에 대한 신의 경고랄까. 세계는 지금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은 청정한 지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일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아름답던 지구에 인류라는 족속들이 나타나 파헤치고 뒤엎고 오염시키는 바이러스. 그 죄의 대가로 지금 혹독한 벌을 받고 있다고 여겨진다.
버려져 얼어 죽었을 거라고 여겼던 화초가 한데에서 그 추운 겨울을 나고도 살아남아 꽃대를 밀어 올리는 힘을 보고 나의 경솔함을 반성을 하는 계절이다. 자연은 그처럼 위대하다. 거스르지도 말고, 오염시키지도 말고, 보존하고 가꾸어야한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잘 살고 잘 죽는 일의 단초가 될 것이다.
< 힐링문화, 2020. 여름호>
<박일만 시인>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애지),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서정시학),
『뼈의 속도』(실천문학) 등
☞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우수 문학도서 선정
☞ <뼈의 속도>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