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히 있는 충성 (사2-123) 2022-5-21(토)
찬양 :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본문 : 사36:11-22절 ☞ https://youtu.be/ND9W_pF19vs
<스콘> 앱 개발을 위한 40일 기도회 27일째 어제 통신판매업 허가가 나왔다. 이제 모든 서류가 다 처리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앱 개발로 다시 돌아가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될 수 있게 되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인도하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주님의 날을 온전히 준비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에는 랍사게가 유다 말로 항복하라고 외치자 유다의 신하들이 유다말로 말하지 말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랍사게는 무시하며 외친다. 12절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신하 즉 앗수르 왕 산헤립의 보냄을 받는 랍사게의 충성됨을 묵상하게 된다. 그는 보내신 분의 뜻을 헤아리며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울림이 있다.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메시지 성경의 번역은 이렇다.
<내 주인께서 너희 주인과 너희에게만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나를 보냈다고 생각하느냐?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쪽은 바로 저들이다. 머지않아 자기 똥을 먹고 자기 오줌을 마시게 될 저들 말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랍사게는 자신을 보낸 산헤립을 위해 충성하고 있다. 어느 자리나 충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악을 위한 충성에는 모순이 있다.
랍사게가 하는 말에 모순이 무엇인가? 그는 마치 자신이 유다의 사람들을 도우러 온 것처럼 말하고 있다. 자신들 때문에 유다의 백성들이 곤욕을 치루고 있는 것인데,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고집을 부려서 그런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외친다. 15-16절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한마디로 유다의 왕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앗수르 왕의 말을 듣고 항복하면 먹을 것, 마실 것, 좋은 땅을 주겠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땅을 침략하여 황폐하게 만들어 놓고는 항복하면 좋은 땅과 음식을 주겠다는 이들의 말은 고통하는 백성들에게 솔깃하게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나 모순이며 사기다.
문득 예전에 보았던 남한산성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그곳에서 청나라의 침략으로 나라를 다 빼앗기고 남한산성에 갇혀 지내던 시절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와 백성을 위해 오랑캐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주화파의 주장이 생각난다. <나라(왕)가 있고야 백성이 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왕)가 있다.>
그야말로 다 맞는 말이다. 남한산성에서 인조는 결국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다는 쪽을 선택했다. 지도자로서 히스기야 왕은 얼마나 갈등이 되었을까? 자신의 잘못된 통치로 인해 침략을 받고 속수무책으로 46개 성이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백성이 고통하고 있다. 이제 하나 남은 예루살렘은 완전히 포위되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왕으로서 얼마나 자책이 되었을까?
자신만 욕을 먹는 것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겪고 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욕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절
‘이 열방의 신들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런데 히스기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이렇게 대처했다. 21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산헤립에게 충성된 신하 랍사게가 있다면 히스기야에게도 충성된 신하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정도되면 왕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히스기야 왕의 말에 충성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는 것인가?
세상을 호령하는 산헤립의 말에 충성하는 랍사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나라가 다 멸망해 가는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신하는 많지 않다. 이들의 충성됨이 큰 울림으로 들려진다. 이 신하들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왕이 잠잠하라 하신 그 명령에 충성됨으로 잠잠하고 왕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알리고 있다. 주님 ~
지금 교회는 세상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힘겨운 시간을 지내고 있다. 랍사게의 비난하는 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이런 시간에도 히스기야의 신하들처럼 충성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오늘 주님은 그런 충성됨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앱을 개발하는 일에서 주님의 꿈을 실현하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목회의 길이야 이제 범위가 눈에 보여진다. 그러나 앱 개발의 현장은 그 범위를 어디에서 어디로 결정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그리고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한계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가야 하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작은교회와 젊은 세대 사역자들의 플렛폼과 비빌언덕이 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처음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또 세상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기에 고민에 또 고민을 한다. 주님 ~
오늘 주님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끝까지 충성됨으로 나아가라고 하신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란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내게 주어진 자리에 충성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나아가는 자 되기를 결단한다. 나는 대표가 아니다. 주님이 대표이시기에 세상과 다른 결론으로 나갈 수 있다. 주님의 뜻 하나만 붙들고 할 수 있는 것 없지만 충성으로 나간다.
주님,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이 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자리에 주님이 명하신 일 하나만을 생각하며 그 일에 충성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잠잠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성할 수 있음을 봅니다. 주님께 맡깁니다. 주여 인도하소서.
<라마나욧 선교회 중보기도 제목>
1. 2022년 예수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변화되게 하소서.
2. 스콘(스스로 창조하는 콘텐츠)앱이 젊은 세대의 플렛폼으로 설 수 있도록
3. 라마나욧선교회의 사단법인 작업이 잘 이루어져 건강한 선교단체 되도록
4. 30억 씨드머니가 속히 모금되어 사역이 정상화되도록
5. 땡스기브가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