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마포두레생협 소식지에 쓴 글. 마포의료협동조합의 핵심사업인 건강검진에 대해 의견 나누어요
의료생협다운 건강검진 모델연구1/ 김종희 20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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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하반기, 마포의료생협은 건강공동체 조합원확대를 위해 ‘찾아가는 무료 건강검진’사업을 진행한다. 평소 건강관리하지 못했던 시장 상인들, 노점상들, 돌봄 노동자들 등 육체 노동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크다. 믿을 수 있는 주치의를 얻어 건강검진도 받고 속 시원히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설명도 듣고 해결방안도 찾고 싶을 것이다. 이번 건강검진 프로젝트가 진정 ‘건강’을 담아내는 ‘검진’이 되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직 머뭇거린다. 건강검진은 건강증진과 예방의 목적으로 전 국민적 사업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지만, 과잉진단과 불안을 대량생산방식으로 창출해내는 근원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머뭇거림을 어떻게 떨칠까?
1. 얼굴 없는 검진 : 검진통보서, “소변검사상 혈뇨가 보이니 진료 받으세요”
검진받기 전 검진대상자들은 대개 ‘혹시나’하는 옅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검진 후에는 결과에 따라 대개 불안이 증폭되거나 안도하거나 두 극점 사이에서 마음이 출렁인다. 불안이든 안도감이든 공통분모는 불안이다. 옅은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검진받은 이후 더 큰 불안감과 안도감으로 나뉘었다가, 어떤 계기가 새로이 주어지면 다시 ‘불안’을 매개로 ‘더 자주, 더 많이, 더 비싼’ 검진을 찾게 된다. 불안과 자본의 협동작품이 건강검진이다.
수많은 의료기기들은 불건강함을 암시하는 이상한 검사결과들 - 혈뇨, 혈변, 골밀도 수치 감소, 간수치 상승, 높은 혈압, 높은 혈당, 고지질혈증, 너무 빠르거나 늦거나 불규칙한 심전도, 엑스레이사진에 보이는 이상한 음영 등- 을 뿜어낸다. 의사는 이들 데이터에 근거한 ‘진단발행기’가 되어 검사기계들의 일부분으로 기계적인 서명을 다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읽고 언짢을 의사들이 많을 것이다. 전문가인 의사가 ‘진단발행기’로 표현되다니, 당황스럽고 기분이 상할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생활전반을 함께 검토하며 검사결과의 의미를 나누는 상담과정이 없는, 말 그대로 ‘얼굴 없는’ 검진판정표가 의사의 ‘서명’이라는 간접적인 얼굴을 달고 등기우편 배달되고 있지 않은가.
마을의사는 오랜 의학수련과정을 거친 특정분야만의 전문가가 아니다. 특정분야의 전문가란 무수히 많은 타 특정분야들에서는 문외한이 된다. 군자불기(君子不器, 논어 위정편)와 같이 마을의사는 하나의 용도에만 쓰이는 특별한 제기그릇이어서는 안된다. 낮은 골밀도 수치를 보며 성급히 새로운 환자의 탄생으로 이끌기보다, 생활의 힘을 잃지 않도록 환자의 생활전반을 함께 탐구하여 적절한 생활처방을 만들고 교육하는 君子不器 같은 마을의사가 필요하다.
‘얼굴 없는 검진’은 결코 건강을 발행하지 못한다. 오히려 검진대상자의 불안을 조장하며 불필요한 추가검사를 부추기어 환자군의 대량생산을 유도할 수도 있다.
2. 건강을 삭제하는 검진 : 검진받은 자,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얼굴 없는 검진’의 끝판왕은 건강에 대한 자신감 자체를 삭제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마포의료생협에서 진행한 ‘건강말하기 대회’의 한 사례를 살펴보자. 발표자로 참여한 요양보호사교육강사는 교육생들에게 평소 건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 일문일답은 이렇다. “건강하세요?” - “네 저 건강해요. 그런데 얼마 전 건강검진 받고 골밀도가 낮대요. 그때부터 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평소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건강검진을 받은 이후 ‘건강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건강검진은 예방을 위한 긍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건강의 주체성을 삭제할 만큼 위험한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마포의료생협은 건강의 주체성을 지켜낼 협동조합다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게 있는 숙제이다.
지금은 조기검진만이 진정한 예방이라는 믿음이 팽배해지면서 검진을 재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막강하다. 그렇게 건강검진이 예방의 기본골격이 되면서 건강의 주체성은 그만큼 악화될 우려가 있다. ‘얼굴 없는’ 검진은 ‘샅샅이 뒤져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해 내고야 말겠다는 강박적 불안심리를 부채질한다. 건강에 대한 다양한 관계망이 부실한 가운데 진행되는 건강검진은 개체적인 건강염려증을 집단적으로 유발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건강검진, 함부로 받지 마라’(이충원 예방의학 전문의)고 현직 의사는 외친다.
인도 라다크 산악마을에 돈과 개발이 유입된 후 마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소개하는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이야기는 지금 여기 한국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난이라는 개념의 탄생, 전통문화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외국인에게 구걸하기 시작하면서 마을공동체는 붕괴되어갔다. 개발의 환상이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던 라다크 사람들에게 거지의 삶을 안겨주었다. 건강검진에 대한 맹신이 병을 모르고 건강했던 사람들에게 ‘건강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며 ‘환자화된 삶’을 강권할 지 모른다.
3. 건강을 담는 검진 : 의료생협다운 건강검진이란?
척박한 환경의 미국 로제토 마을이 보여주는 높은 건강수치의 비밀은 무엇일까? 정처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의 모습과는 달리, 로제토 마을에는 얽히설키 공기처럼 존재하는 마을살이관계가 풍성하단다. 길가다, 새참먹다가, 마실가다가 나누는 정겨운 마을살이 그 자체가 건강의 비결이라고 전문연구자들은 분석한다. 마을이 약손인 것이다. 정기건강검진은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TV를 보는 우리는 모두가 시청자가 되듯이, 검진공화국이라는 병원화된 삶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은 모두 환자가 된다. ‘마을이 약손인 건강공동체’와 어울릴만한 의료생협다운 건강검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전국의 선배 의료생협들도 건강검진을 주요 사업으로 시행하여 왔다. 경영의 안정과 조합원들의 건강증진예방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본전략은 검진에서 발견된 고 위험군 조합원에게 식습관생활개선, 운동처방 등 건강실천단과 건강관계를 맺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의 성과와 평가가 궁금하다. 그리고 협동조합 차원의 조직적인 건강검진사업을 통해 얻은 조합원의 건강증진과 건강 주체성을 평가할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의료생협의 건강검진사업이 마을건강의 뿌리내림으로 수렴되기를 바라며, 의료생협다운 건강검진을 위한 몇 가지 필요조건들을 생각해보았다. 첫째, ‘얼굴 없는 검진’에 건강생활나눔의 온기를 채워 줄 마을의사들이 필요하다.(구체성이 떨어진다 지적받음-2014년 6월 지금 생각으로는 마을방문건강상담을 특화하는 왕진위원회를 두면 좋겠다는 생각) 둘째, 건강검진으로 증폭되는 불안의 회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건강생활관계망을 넓혀야 한다. 셋째, 검진대상자를 일상생활을 나누는 소집단별로 구성하여, 개인단위의 신체기관별 건강주제를 마을생활단위의 관계성 건강주제로 이끌어야 한다. 교회/절/성당에 같이 다니거나, 합창단모임을 함께 하거나, 노점상일을 하면서 자주 만나는 작은 생활공유집단들을 검진대상군으로 삼자. 그것이 ‘얼굴 없는’ 익명성을 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넷째, 검진대상자가 의료‘소비자’의 위치를 넘어 건강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실험되어야 한다. 일상을 나누는 생활공유소집단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건강욕구를 담은 마을건강지표 만들기 대회를 열어보자. 의료‘소비자’측면의 조합원 ‘할인’제도를 이런 참여형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포상제도로 바꾸어 나가면 어떨까.
빠르고 확실해 보이는 진단을 발행하는 검진보다는 머뭇거리고, 머리 긁적거리며, 생활세계를 들여다보라고 이끄는 조금은 힘든, 그러나 시원한 산행과 같은 검진이 의료생협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