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 째 이야기 : 12월 15일(토요일) 맑음.
아침 5시 좀 넘어 출발.
오늘은 김성일 후배가 하루 종일 안내를 해준다고 한날이다.
9시 반 영덕파출소에 도착하니 김 후배와 초면인 건장한 엽사 한분이 계셨다.
수렵 싸이트에서 자주 이 땡포 박 글을 보고 있다는 60대 중반? 구미에 사는 여현탁 포수란다.
우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전, 오후 내내 장끼 두 마리를 봤지만 역시 살 녀석인지라 총도 대보지 못하고 끝났다.
점심은 김 후배가 우리에겐 생전 처음 먹어보는 통 닭다리가 들어 있는 닭죽을 쐈다.
저녁은 여 후배가 산다고 미리 찜을 하는 거였다.
그러나 이 땡포 박이 더 선배인데 초면에 어떻게 얻어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사야지.
역시 여 후배는 체격이 좋아서인지 말술이었다.
다음날은 모 밴드에서 돼지사냥을 할 때 꿩을 많이 만났었다는 안동 전종복 후배의 조언을 따라 창수면으로 방향을 잡자고 제안을 하니 김 후배가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다.
다음날은 하루 종일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린 너무 의아했다.
우리가 초행이니까 김 후배는 자기 친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고 안내만 해주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결국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16일(일요일). 맑다가 오후 흐리고 눈.
김 후배가 어제 취기로 큰소리를 쳤지만 깨어나면 마음이 바뀌겠지 하고 파출소로 가니 먼저 와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정확하고 의리의 사나이엔 틀림없다.
김 후배는 우리가 찾던 곳을 세세히 알려주고 황급히 떠났다.
엽장을 보니 꼭 그림 같았다.
2시간 이상을 샅샅이 뒤졌으나 역시 그림만 좋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 누가 사냥을 했단다.
이젠 11시도 넘었고 우리가 떠날 시간이다.
여 후배를 찾으니 장끼 두 마리가 냇가에 앉았으니 그걸 잡아가란다.
우린 그냥 간다고 하니 빈손으로 어떻게 가냐고 자기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는 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 후배는 지난 금요일 두 마리 잡았기 때문에 선배님은 꼭 잡아가야 한다고 하니 어찌 그냥 떠날 수가 있겠는가?
길쪽 방죽은 내가, 건너 들판 방죽은 아내가 그리고 냇가에는 여 후배가 치고 나갔다.
냇가엔 갈대와 잡풀이 무성하고 개울이라 앞으로 나가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꼭 선배를 위해 어렵게 헤치고 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
“꽈드등!”
선달 아내가 나가는데,
“쏘세요! 쏘세요!”, 안타깝게 여 후배가 소리를 친다.
“탕! 탕!!”, 그냥 간다.
나는 까투리는 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보냈다.
여 후배를 만난 나는 정말 미안했다.
“미안합니다! 장끼만 쏘다보니 총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힘들게 날려 주신 건데 미안합
니다!”
나는 여 후배가 쏜 줄 알았다.
나중에 파출소에 와서야 아내 정포가 두발을 쏜 것을 알았다.
여 후배가 너무 애타게 쏘라고 하셔서 쐈더니 안 맞더라나?
각설하고,
이젠 다시 다리근처에 세워 놓은 차로 돌아 가야한다.
내가 맨 앞, 여 후배, 아내 정포가 방죽을 따라 걷는데,
어라? 우리 ‘루키’가 강 아래서 포인을 하고 있지 않는가?
“‘루키’가 포인했어요!”
명견인 여 후배 포인타(5살)가 앞서서 쫒아간다.
한 20m쯤 쫓아가니까 개 앞 10여m에서,
“꽈드등! 꺼겅껑껑!!!”
선달님이 갈대를 배로 깔고 아주 얕게 전속력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거의 무아지경에서 재빨리 총을 들어 쭉~ 끌다가,
“탕!”. “명중!”
“선배님! 역시 명포숩니다! 축하합니다! 잘 쏘시네요! 무척 빨랐는데!”
정말 너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깊이 내쉬었다.
만약에 이걸 빼먹었으면 고생을 해준 여 후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여 후배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제가 잡은 것이 아니라 여 후배님께서 잡아 주신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우린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나도 모르게 어제 처음 만난 여 후배를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여 후배님! 안녕히 가세요! 우리 또 만납시다!”
“네! 선배님!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읍니다!”
손을 흔들며 떠나는 나는 어느새 콧등이 시큰해졌다.
저런 훌륭한 후배님들 덕분에 나는 이렇게 행복하고 살맛이 나는 것 아닌가?
아참! 전종복 후배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