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
* 품 일기 *
2020.11월- 코로나방역 3.0
<비 뿌리는 날> 11.1.일
가을 비 핑게대고 밖에 나갈 생각을 접습니다
진종일 이방 저방에서 거실로 옮겨 다닙니다
집밖은 코로나로 더하여 추위로 두려움이 큽니다
<추워진 날> 11.3.화
추워진 날씨 코로나가 크게 번질 것이라는 예고
환절기 감기조심, 집사람이 챙겨주는 두터운 옷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가슴이 저립니다
<헌집 고치기> 11.9.월
새집은 힘에 부치고 헌집 고쳐쓰자니 만만치 않습니다
자원을 아낀다는게 골격만 빼고는 다 헐어내야 합니다
차라리 싹 쓸어내고 빈터에 다시 짓는게 훨씬 낫답니다
<공짜는 없다> 11.12.목
모든걸 품어안는 흐뭇한 품마을이 있습니다
품마을 '품앗이'문화에서는 '공짜'는 없습니다
추수한 농산물은 제값 받고 '후한 덤'을 드립니다
<60년 지기> 11.16.월
이름만 또렷이 불러대는 60년지기들 입니다
코로나가 마스크를 씌워 만남도 죄가 됩니다
그래도 조심조심하며 얼굴을 봐야 안심입니다
<겨울이다!> 11.20.금
도깨비 바람이 불고 폭우까지 쏟아집니다
숨죽인 코로나가 겨울 제철을 만났습니다
붐비는 전철안 "집에 쳐박혀있지!" 쑤군댑니다
<방역2.0단계> 11.22.일
코로나 멈추지 않고 춤을 추며 달려옵니다
까짓거 활개짓하는 사람들에게 달려듭니다
뉴스는 코로나2.0단계로 높였다고 도배합니다
<사람이 몰려든다> 11.24.화
코로나 방역2단계로 산책로에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마스크 쓰지않은 사람이 하나없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노예근성' '단결된 힘'하며 비아냥과 칭찬이 똔똔입니다
<코로나 방역3.0> 11.28.토
확찐자 500명을 넘나들며 방역3단계 불을 붙입니다
나라를 경계를 뛰어넘어 지역간 이동도 통제 됩니다
민주도 시장도 학교도 무너지고 모든게 비대면입니다
2020.12월- 어딜 가시려구요?
<새벽에> 12.1.화
나이가 70이 넘으면 잠 설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용한 밤이니 명상하기도 책 보기에도 좋습니다
잠자리 들기전 새벽녘 산뜻한 머리로 일기를 씁니다
<밤에> 12.5.토
코로나 이전 젊은시절엔 밤활동이 많았습니다
낮에는 일에 골몰했고 퇴근후 밤을 즐겼습니다
코로나 이후 지금은 곧장 달려가 가정을 지킵니다
<아픈데 병원을 못가요>12.7.월
아픔을 참으면서도 병원 가기가 겁이 납니다
병원에 가면 바이러스가 달려들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마스크 쓰고 병원엘 다녀와야 덜 아픕니다
<할머니 마음> 12.9.수
옆집에 '홀로 할머니'가 조용히 살고 계십니다
저녁에 창문이 밝혀있어 빵을 사다 드렸습니다
잠시후 우리집 현관문'똑똑' 문앞에 까만봉지가 놓였습니다
<어딜 가시려고요?> 12.14.월. 1030명 확진
"어딜 가시려고요?" 밖에 다니기를 조심합니다
"누굴 만나려고요?" 당신도 숨은 보균자 입니다
"뭔 일을 하려고요?" 일손을 놓고 '집콕' 합니다
<겨울 쪽빛 하늘> 12.20.일
겨울날 영하의 날씨 천명넘는 코로나 확진자
따뜻한 햇살 맞으며 산책로를 한가득 메웁니다
쪽빛깔 하늘 콕찔러 물쪼르륵 코로나 씻어내 주렴
<저, 아직 살아있어요> 12.27,일
괴질(코로나19)이 살아 극성스러운 때면 나이 많은 노인은 죽음 입니다.
다시 한해 살아간다는 새해 소식을 알려야 할것 같아 '카톡'을 날립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세상에 고운 물결이 흐르도록 힘을 보태렵니다.
<해넘이 해맞이> 20.12.31.목
쥐띠해 코로나 '새길이 어지러웠노라' 해넘이를 합니다
길 잃어 따라나서지 않고 방향없이 해오름을 기다립니다
소띠해 아침 햇살 맞으며 '뚜벅 걸음'으로 해맞이를 합니다
2021. 1월- 매듭=성장판
<고운 물결 이루리> 1.1.금
나 하나 똑 떨어져 있어 갈곳 몰라 헤맵니다
너 함께 곁에 있어 '결'을 이루어 힘을 냅니다
코로나 이겨내는 물결 곱게 일렁이는 한해를
<죽음을 무릅쓰고> 1.5.화
코비드-19 유럽에서는 하루 몇만명씩 걸립니다
강력한 제재에 강한 탈출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전쟁때는 도망쳤지만 지금은 꼼짝없이 갇힙니다
<하얀 세상> 1.8.금
폭설이 내려 쌓여 온 세상이 새하얗습니다
탄천 하얀 길 뽀드득 소리내며 걸어갑니다
눈벽돌 눈집에서는 '까르륵' 아이들 하얀웃음
<매듭> 1.17.일
대나무 힘들때 힘을 모아 매듭을 짓습니다
사람도 어려운때 힘모아 성장판을 만듭니다
코로나 어려웁지만 힘모으면 밝은 내일입니다
<흰구름 타고 가요> 1.19.화
점심때 찬바람이 구름 몰아가 햇볕이 쨍합니다
해질녘 하늘엔 반 남은 검은 구름을 쫓아냅니다
먹구름 사이로 고개내민 흰구름 타고 집에 가요
<겁박 방송> 일기342
코로나 방역방송 외면하며 술퍼마시는 사람
겨울비 날씨예보 무시하며 길을 나서는 사람
마스크 하나 사서 쓰고 우산 사서 펼쳐쓰면서
<음산한 날> 1.22.금
겨울비 추적추적 심한 안개 자욱한데
더하여 미세먼지 지옥같이 음산한 날
아무렴 음울한 세상 집만한 곳 없어라
<봄날처럼> 1.24.일
때아닌 따스운날 겨울 잠깐 숨었나봅니다
천변에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 가득합니다
백로가 새끼 고니와 한가히 노닐고 있네요
<공짜로> 1.30.토
봄볕이 완연하니 늙은 나도 싱숭생숭
개나리 진달래 몇번이나 볼수 있을까
아뿔사 따순 마음에 된서리 내리시네
<얼굴> 1.31.일
찡그린 낯판떼기에 대갈통도 아픕니다
입꼬리 웃음꽃 피면 가슴속도 웃습니다
발다리 저림이 와도 얼굴은 펴고삽니다
2021.2월- 품앗이
<생명 전화> 2.1.월
세상이 나를 버리는데 살아서 무엇하나
한겨울 비 맞으며 한강다리를 걷습니다
초록빛 '생명 전화'가 새봄의 풀색입니다
<고향에> 2.3.수
눈비가 서로 엇갈려 봄인지 겨울인지
코로나 가는 길도 늘보처럼 오락가락
설날이 내일모랜데 고향에 갈까 말까
<품앗이> 2.12.금 *설날
60환갑을 넘기면 남살이 덤살이로 살아라 합니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이의 나머지를 사는 '남살이'
집을 건사하던 일 떠나 이제 세상 위한 '덤살이'로
<침묵은 똥> 2.15.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를 조잘조잘 계속해야 합니다
무거운 침묵은 금이 아니라 싯누런 똥입니다
<내 이름> 2.20.토
제발 '집사람'이라 부르지 말아 줘요
살아온 세월이 좁쌀같아 듣기 싫어요
뭐라고 부를까요 그냥 '이름' 불러줘요
<백신접종 1호> 2.22.월
세상이 왜이래? 하필 내가 왜 실험대상이냐구
부작용 무섭다구 꽁무니 빼는 꼬라지들하고는
"관둬라 내가 1호다" 팔걷어부치는 이들 많네
<품앗이 일> 2.24.수
여든살 내게도 자진해서 할 일이 생겼습니다
맡겨진 일에 푹빠져 허리 아품도 잊었습니다
되갚는 품앗이 일에 나이도 아품도 잊었습니다
<품앗이꾼> 2.25.목
어렵게 일이 꼬인 젊은이가 선배를 찾습니다
살아온 지혜로 걱정꺼리 한가닥을 거듭니다
멘토요 롤모델 정이 통하는 품앗이꾼입니다
<봄의 시절> 2.28.일
공원에 산수유 노란 꽃망울 톡 틔우고 있네요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아빠가 보살피고 있네요
내게도 저런 봄의 시절이 있었던가 더듬거리네요
2021.3월 - 행복풍선
<3.1절에> 3.1.월
백년전 한목소리로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다'
그때는 하나의 땅덩어리 둘로 나뉘지 않았다
지금은 가슴아프게도 동서남북 넷이 제뿔뿔이다
<걸어라> 3.4.목
하루에 만보를 걸어라 그러면 건강하게 죽는다
여든살 동갑내기들 어물쩍 90살까지 살것 같다
두발로 당당히 걷자 평안한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맛깔난 세상> 3.7.일
겉삶을 위해 거칠게 돈만 버는 품팔이꾼
품팔이 눈엔 보이지않는 고운 품앗이 손
맛깔난 속살을 위해 마음 쓰는 품앗이꾼
<봄이 오다> 3.9.화
따뜻한 햇살에 몰려나온 사람들
주인 끌고가는 목매인 강아지들
때이른 봄날에 쑥을 뜯는 아낙들
<여름인가?> 3.10.수 *땅투기
더러운 LH땅 얘기에 뿔난 민심 뜨겁다
억울한 벼락거지들 부글부글 들끓는다
지금이 땡여름인가 머리통이 어지럽다
<품앗이 타령> 3.14.일
누군가 도움을 받고 '얼마드리면 되나요'
손사래 치며 '다른 이에게 품앗이하셔요'
도움을 이어가는게 '우리네 품앗이지요'
<강한 민원> 3.19.금
가로수 큰키로 자라 전깃줄이 묻혔네요
우리집 간판가려요 교통신호등 안보여요
봄맞이 풍성한 키큰나무 몽당 연필 되었네
<졸고있는 가로등> 3.20.토
새벽3시 어둠속 가로등이 졸고 있다
사람도 차도없는 거리에 홀로 외롭다
아무도 없는 밤길 가로등도 잠자고 있다
<봄에 안기다> 3.22.월
아픈몸 일으켜 하얀목련 벙근 봄에 안기다
이틀을 헤매다가 개나리 철쭉 봄길 나서다
머리 어지럽고 무릎 시큰대지만 상큼한 봄날
<행복풍선1> 3.23.화
당신의 행복풍선은 내가 찾아 드리리
모두가 제것만 찾다 행복풍선 놓치겠네
나의 행복풍선은 누군가 찾아와 줄거야
<봄이 달린다> 3.30.화
노랗다 개나리가 산수유를 이어간다
오늘은 연분홍 벗꽃이 팝콘을 튀긴다
겨울을 뚫고 봄이 여름으로 달린다 나도
2021.4월 - 품세상
<꽃잎 길> 4.4.일
연분홍 꽃잎 쏟아져 야시시한 꽃길
차마 밟을수 없어 폴짝 건너 뛰었네
폴싹 발등에 쌓인 꽃잎 보드란 손길
<뒈질뻔 했어요> 4.6.화
"얘야! 큰일 날뻔 했다" 자전거가 고꾸라졌다
"뒈질뻔 했어요" 깨진 하수구 뚜껑에 툴툴댄다
"다치진 않았니?" 걱정하는 사이 아이는 가버렸다
<상식이 통하는> 4.8.목
법대로 한다는 소리 정말 웃기는 얘기다
못된놈 다스릴 법이 착한사람들을 욕뵌다
법없이 사는 삶이 평안한 행복세상인 것을
<치매야> 4.12.월 *영화감상
'더 파더' 헝클어짐이 혼란 애툿 짜증이다
치매는 저런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헉!
컴컴한 큰 영상관에 관객은 나와 단둘뿐
<밤2시> 4.18.일
밤2시 잠깨 일어나 다시 잠들기 힘들어라
책상에 걸터앉아 책 펼치다 창밖을 보니
건너편 907동에도 하나둘셋 불이 밝혀있다
<오후가 지루하다> 4.21.수
오전에 유치원 갔다온 네살 박이의 오후
할매도 엄마도 함께 놀아주지를 않는다
"엄마야 하루가 아직도 많이 남았나?"
<품세상> 4.22.목
고마움 뜸들여 되갚음하는 맛갈진 품앗이
다함께 행복을 찾아 정이 넘치는 품마을
사랑이 꿀이 되어 물밑으로 흐르는 품세상
<노매드 랜드> 4.26.월 *영화감상
몸하나 건사할 집도 가정도 꾸릴 여유가 없는
무너진 도시의 삶 캠핑카로 집을 나선 나그네
한번도 가보지않은 낯선 땅 찾아나선 유랑자
<어라 왠 눈?> 4.30.금
봄날이 음산하다 찬비가 몰아친다
흰눈이 쌓인 설악산 이게 뭔 일이람
4월은 가고 오는 5월의 상서로움일까
* 품세상 *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행복품앗이'
시대정신을 많이 얘기하고 있다.
산업화시대에는 돈과 경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
"돈 많이 버세요. 돈복 받으세요." 덕담의 으뜸이었다.
경제가 최우선이어서 독재도 감내가 되었고 어떠한 가치도 이를 바꿔칠 수가 없었다.
'돈이 최고요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었다.
돈이 행복이었으니 건강을 잃으면서 까지도 돈벌이에 혈안이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참으로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그 반성이 '민주화'였다. 물론 정치권에서 즐겨쓰는 말이었다.
돈을 가벼이 여기고 '공정과 정의와 평등'인 사람중심 사회를 내걸어 흔쾌히 따라주었다.
불공정했던 구습을 적폐청산하여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마고 약속했다.
하지만 구호에 그쳤다. 그들만을 위한 그믈을 쳐놓고 불공정 불의 불평등을 저질렀다.
돈 세상이었을때 불평등은 운명으로 받아들였으나 믿었던 자의 배신은 너무 큰 쓰라림이었다.
심하게는 국민이 힘을 실어주었다며 그들만을 위한 특별법을 마구 만들어 특권을 휘둘러댔다.
특별법이 자기 발목을 옭아매고 그 그믈에 걸려 무너진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직한 척, 정의인 척, 공평한 척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돈 챙기는 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지위와 명예를 얻고 더하여 돈까지 챙기는 파렴치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상식에 어긋난다고 나무라면 '법 어긴건 아니라'며 오히려 면박을 주는 오만함까지 보여주었다.
우리의 생활이 여전히 돈에 얽매여 있고 오직 제 식구를 챙기는 법률에 온통 파묻혀 있다.
지금껏 추구해 왔던 풍요와 특권의식으로 주저앉은 세상을 제자리를 찾아 올바로 세워야한다.
돈과 제 밥그릇 챙기는 이 세태의 안타까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나지 않는 것도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마련해 가라는 신호로 보여진다.
'상식'이 통하는 행복세상, '정직'이 제자리에 서는 정의사회를 '시대정신'으로 삼을 때다.
좀 늦기는 했지만 이제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찾아가고 있다.
되돌아보면 '돈'이라는 것도 사람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자고 태어난 것이었다.
생활편익 도구인 '돈'이 삶의 절대적 가치로 둔갑하여 물질만능의 사막화시대가 되었다.
사람이 돈의 노예로 추락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상식을 벗어나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한 특별법을 남발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부정직한 치부와 특권은 단죄되어야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고 정의이다.
정직, 정의로운 세상과 도덕,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행복과 품앗이'를 살펴본다.
인류에 널리 회자 되고 있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즐거움 기쁨 여유로움 재미 웃음 보람 가치감 만족감 평온감 안정감 희망넘침 의욕 성취' 등등
행복은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며 괴로움 슬픔과 교차해 가며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있다.
행복감을 오래 간직하고 행복한 순간을 많이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심을 한다.
진한 행복감을 누리려면 스스로 고통이나 괴로움을 선택하여 훈련과 단련을 할때 더 감동한다.
마라톤 완주의 성취감은 그 큰 고통을 이겨냈을 때 온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한 바 있다.
학문에서도 예술에서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행복은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자주 보아온다.
오랜 전통으로 우리에게 내려온 '품앗이'가 있다.
'함께함 나눔 배려 이타 칭찬 친구되기 이웃돕기 마중물 상부상조 품어안기' 등등
농사짓던 시절 이웃이 함께 품앗이로 힘을 보태어 힘든 농사일을 해왔다.
집안과 이웃의 경조사에도 품앗이로 서로 나누어 도움을 주었다.
정의가 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일구는 것은 행복세상을 위함이며 품앗이는 이를 실행하는 길이다.
행복은 이념이고 가치이다. 품앗이는 행복을 위한 실천이고 행동이다. 이것이 '행복품앗이'이다.
돈돈하면서도 돈 때문에 사는 삶을 혐오하며 돈 말고도 보람과 가치를 찾고있는 것이 시대 흐름이다.
오래 묵은 김치(묵은지)가 우리 몸 특히 바이러스 면역에 좋듯이 오래된 품앗이가 오늘에 필요하다.
주고받기에 더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보태고 뜸을 들였다가 '되갚음'하는것이 '품앗이'의 기본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행복을 위한 품앗이'를 살려내야 한다.
'고마움'은 다음 세대까지도 이를 갚아야한다는 선조들의 '품앗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품앗이 경영'이 오랜시간을 뜸들여가며 다음세대에 까지 훈훈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시대정신을 실행해 나가는 길에 '행복품앗이'를 길어 올려야하지 않을까?!
2021. 3
코로나이후
2020년이 갈림길이다. 헌길을 버리고 새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들 야단들이다.
코로나19가 지금껏 걸어온 '과학의 길'을 바꾸어 '생명의 길'로 새 이정표를 강요받고 있다.
과학만능 금전(돈)만능 조직만능 기계(도구)만능으로 벌여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멈출때가 되었다.
물자(자원)낭비와 자연파괴로 인한 환경훼손은 지구궤멸과 인류멸망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20세기말 부터 깨친이들이 예고하여왔으나 귀기울이지 않다가 드디어 코로나로 얻어맞은 꼴이다.
코로나 전까지만해도 화려했던 그림들은 사라지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날의 과학문명이 내다버린 전통 문명의 원칙, 가치, 뜻 살리기를 다시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새마을과 헌마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 헌마을을 부수고 새마을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헌마을을 품고 새마을을 탄생시켜야 했다. '새마을' 이름값 하느라고 헌마을을 허물었다.
헌마을을 없애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고 이제 돌아보며 후회하는 분위기다.
헌마을을 품어안고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외면하면서 부정하려다가 제 꾀에 넘어간 것이다.
이런 교훈이 산업화과정에만 있었던게 아니다. 지금 민주화과정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더 큰 사회문제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더 깊은 갈등은 양극화로 치닫는 혼란을 주고 있다.
헌마을과 새마을, 산업화와 민주화를 몽땅 아우르는 유연한 품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품앗이 정신을 너른 품에 다 담아내는 '품마을 세상'을 이루어야 할 당위성이다.
<품마을>
왜? 품마을이냐고 묻는다.
양극화 사회로는 사람다운 삶을 살수 없다.
평화로운 세상은 양극화 속에서는 누릴수 없다.
소시민들은 양극화의 싸움질에 질려 그 답을 찾고 있다.
따라서 품마을에서는 다음을 명심하기로 한다.
흙한줌 풀한포기도 귀한 생명이다.
작고 거친 품앗이어도 모든게 고마움이다.
정자나무 아래 모여도 그게 열린 마당이다.
모두가 주인이고 모두가 하나같이 품앗이꾼이다.
법이 없어도 반듯한 말씀이면 곧 법이다.
언제 누가 넘나들어도 '방가방가!'다.
<품세상>
1. 경쟁에 지치지 않는 마을
2. 돈에 치이지 않는 마을
3. 사람 냄새가 물씬나는 마을
4. 일등도 꼴등도 없는 모두가 넉넉한 마을
5. 시,노래, 춤이 덩실대는 마을
6. 재능 기부와 감사하는 마음이 어우러지는 마을
7. 자급 자족할 수 있게 스스로 노력하는 마을
8.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마을
9. 자연을 사랑하고 지구를 지키는 마을
10. 곳곳에 흐터져 자립하고 있으면서 함께 엮어내는 마을
2020.10
* 품마을 *
새해맞이1- 풍경
새해 첫날 해맞이 하러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엘 간다.
동해의 해나 가까이 남산에서 뜨는 해나 다를바 없다.
또한 어제 뜬 해가 오늘 떠오른 해와 다를바가 아니다.
가슴 넉넉한 품으로 보면 새해맞이는 마음먹기다.
해서 새해 첫날, 아주 엉뚱한 새해맞이 한마당 잔치를 펼친다.
집에서 부터 걸어서 낮 2시까지 '창경궁으로' 오라고 주문한다.
차를 타야 갈수 있는 제법 먼거리(대부분 20km 안팎)를
두발로 그것도 홀로 걸어서 완주해오라는 건 험지 도전이다.
ㅇ 걸어서 가는 길을 모른다는 것(초행길)
ㅇ 자동차 도로가 위험하다는 것(안전)
ㅇ 주변 도로가 매연이 가득하다는 것(환경)
ㅇ 먼거리에 몸이 따라 줄것 같지 않다는 것(건강)
두려움과 함께 쓸모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걷기를 주저한다.
훠이훠이 천리길을 걸어다니던 옛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 옛사람이 되는거야' 집대문을 나서면서 걸어가기로 한다.
차와 교통신호등이 걷는 길을 촘촘히 막아서는 게 영- 못마땅 하다.
걷기에 조금 익숙해지니 '차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최근에 차를 피해 강물따라 산길따라 빙빙- 돌아가는 길을 이어서 닦아놓았다.
차가 없고 자연과 낭만이 있는 사람 길, 자전거 길을 언제 어디서나 만날수 있다.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속도 경쟁에서 벗어나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길이다.
자연의 품에 몸을 내맡기고 오십리 길 한강다리를 건너 청계천을 걸어간다.
차로 20분 거리를 걸어서 4시간을 바치고도 몸은 지치는데 마음은 청량하다.
창경궁 홍화문 앞에 와 닿으니 가슴은 벅차고 기쁨은 하늘을 펄펄 날아오른다.
2016.1.1
새해맞이2 - 품하러 갑니다
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날은 거룩한 날이니 '종묘까지 걸어오라'고 특별 약속을 한날입니다.
오늘 하루 문명도구(차)를 버리고 맨몸으로 걸어가 보자고 알린 날입니다.
그냥 슬쩍 차를 타고가도 누가 뭐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만은 알고 나무랍니다. "약속을 지켜야지"
나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종묘까지 17km를 걸어갑니다.
날씨가 잔뜩 웅크린게 요새 정국처럼 찌부둥합니다.
미세먼지에 구름이 짠뜩 끼어 해를 가리고 있습니다.
겨울 날씨에 추위가 풀리기는 했는데 제법 쌀쌀 합니다.
구름사이로 해가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 숨바꼭질을 합니다.
새해 첫날 아침이니 만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인사말을 해야겠지요.
잠실철교를 건너며 중년남자를 '첫 사람'으로 만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합니다.
흠칫 놀라더니 게면쩍어 하며 "예, 안녕하세요" 준비 안된 응답 입니다.
한강에서 청계천까지 걸어가며 100명쯤은 만난것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에 따라 특별한 인삿말을 골라 새해 인사를 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께는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열분 정도입니다.
젊은이에게는 "새해 소원성취 하세요" 세쌍 이었지요.
아이들에게는 "새해 씩씩하게 자라라" 다섯 어린이였구요.
달려오는 마라톤 메니어에게는 "새해 화이팅!" 다섯명이었어요.
강아지도 따라 나왔네요 "새해 재롱 많이 피워라" 세마리 였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보통 인삿말을 나눈 사람은 칠십여분 이었지요.
낯선 사람과의 인사 나누기에 인색한 우리네 습성에도 따뜻한 응답 말이 있네요.
외면하고 가는 분은 '별 미친놈 다있네'하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요.
그냥 "예-" 한마디 던지고 눈맞춤도 없이 휘르릉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래도 좀 관심을 표하는 분들은 "예, 안녕하세요" 평범한 인삿말로 얼버무리고 가지요.
감각이 있는 분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되받아 인사말을 하고 가지요.
아예 발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예, 감사합니다" 환한 웃음 가득 건네 주시는 분들도 있지요.
젊은 쌍들은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허리를 굽히며 큰 인사를 하지요.
아빠 손잡고 나온 아이들은 빵끗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멀리까지 배웅해 주지요.
강아지들은 꼬리치며 반겨하고, 달림이들은 함께 손을 치켜들며 "화이팅!"을 외칩니다.
나혼자 부산떠는가 싶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정말로 나홀로 껍쭉댄 물결일뿐 잠잠 합니다.
게면쩍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고, 참 부질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내가 일으킨 이 작은 바람이 세상사람들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내년에는 이네들도 오늘을 되새김질하며 따라하지 않을까 스스로 자문자답해 봅니다.
스쳐지나간 백명의 사람들이 오늘 특별한 인사를 받았다고 집에가서 얘기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종묘에 가서는 어떤 인삿말로 특별한 날을 일깨워 줄까 궁리해 봅니다.
어깨를 서로 걸치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나 지금, 품앗이 하러 갑니다."
"우리 지금, 품앗이 하러 갑시다"
ㅁ 새해 첫날 '종묘'를 거닐다.
새해 첫날 동해에 불끈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보러가는 것은 가슴 설래는 멋진 일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잠을 버리고 붉은 해를 맞이하려는 것은 우주와 자연을 품는 감동이지요.
해 떠오르는 장쾌한 맛은 없지만 새해를 거룩하게 특별히 맞이하는 일은 여럿 있지요.
그중 새해 첫날 고궁등을 찾아 알뜰히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겠지요.
광화문 남산 인왕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등 해마다 장소를 바꾸어 올해는 종묘로 했지요.
종묘는 성격상 자유관람이 아니고 시간제이며. 해설도 그곳분 들이 해야하는 제약이 있지요.
우리 모임에는 보석같은 궁궐해설사 '이옥화'님이 계신데, '사설'이라고 안된다고 하네요.
몇번의 교섭 끝에 품마을 식구들만의 단체로 입장하고 해설도 우리가 하기로 하였지요.
종묘 관계자와 입장시간을 조율하고 눈치 보느라 우리식 행사 진행이 좀 껄끄러웠지요.
국민의례를 하는데 주변에 태극기가 없어 가슴에 담아있는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지요.
애국가(4절까지)와 설날노래(까치까치...)를 지나가던 분들과 함께 소리 높여 불렀지요.
품마을구호(스스로- 다함께- 바로서기) 외치는 방식을 만들어 오늘 처음으로 선보였지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면서 <스스로 !>
왼손을 오른쪽으로 포개어대면서 <다함께 !>
두팔을 하늘로 높이 들면서 소리높여 <바로서자 !>
공식행사를 하는동안 잔뜩 구름낀 사이로 해가 얼굴을 빤히 내밀어 환영을 해주었어요.
그냥 스쳐 지나치기만 했던 '종묘'가 이옥화님의 해설로 새로이 탄생하는듯 했지요.
그저 그런 건물과 땅과 풍광들이 충실한 설명을 듣고보면 귀중한 보물로 둔갑을 하지요.
ㅁ 새해 떡국을 먹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살을 더 먹는 거라지요.
휴일인데 특별히 마련한 '여유당'의 떡국은 구수하고 넉넉하고 풍성한 맛이었지요.
주방장겸 주인장의 붓글씨(福 품은 닭, 품앗이 갑니다) 퍼포먼스도 있었지요
신재창 가수의 풋풋한 노래가 새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요.
책을 나누고 덕담을 나누려는데 서툰 진행이 지루하였나 봐요.
엉덩이를 들썩이며 진행을 재촉하는 눈치가 보여 빨리 마감을 해버렸지요.
남아 있던 몇분들이 촛불과 태극기에 대한 시국 얘기가 나와 이를 말렸지요.
품마을에서는 정치 종교 언론에 대한 얘기는 '금물'인 것을 아시지 않느냐고요.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인데 의사 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나라가 있어야 품마을이 있고 한편 품마을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요.
오가는 소리가 높아지며 답답하고 엉뚱하고 어려운 시간을 가졌지요.
종교도 언론도 정치도 우리 같이 작은 품마을에서도 굉장히 풀기 어려운 문제예요.
정치도 종교도 언론도 품마을 뿐 아니라 모든 개인들이 갈등없는 편한 세상 만들기이지요.
편한 세상 만들기가 의무라는 걸 사회의 한 축임을 각 분야가 확실히 인식해야 하겠지요.
오히려 그네들이 우리에게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약한 짓들이지요.
마당쇠 노릇하는게 참 어려운건가 봐요. 품마을에선 회장이나 대표가 따로 없어요.
심부름 하랴, 앞장서서 길을 닦아내랴 하며 허둥대다가 놓지는게 많지요.
돈 받지 않고 일한다고 평가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좀 지치기는 해요.
괜스레 투정도 하고, 심통도 부리고, 멈추어 싶어지기도 하지요.
누군가 대신해 줄 사람을 찾아도 '돈 안되는 일'이어서 선뜻 권할 수가 없네요.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 품마을을 이대로 끝낼수는 없다는 어줍잖은 옹고집이예요.
어쩜 새해 첫날을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 할배님께 인사올리고 싶지요.
나홀로 한해를 시작하던 10년전으로 돌아가야지 하며 가슴 여미는 시간이 잦아요.
올해가 정유년 붉은닭 해라고 하네요.
부지런하고 명석하고 창의적이고 예지력이 있는 붉은 닭도
성질이 급하고 독선적이고 성격이 과민한 단점이 있음을 알지요.
잘 살펴 갈등을 해소해 나가면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만들어 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들 하네요. 기다려지네요.
2017.새해아침
새해맞이3 - 복福 풍선놀이
새해 첫날
모듬놀이를 위해 강의실에 33명이 모였습니다.
작은 손만한 고무풍선과 싸인펜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 자, 풍선 제일 위쪽에 '복福' 이라고 쓰세요.
그 아래에 '기쁨, 즐거움, 웃음'중 하나만 골라 쓰세요.
맨 아래에 내 이름을 크게 쓰세요.
이제 '내 복덩어리'를 다 만들었지요.
고무풍선에 바람을 힘껏 불어 넣고 실로 묶어주세요
복福풍선에 한판길이로 맨 실줄을 탁 놓아 버리세요."
33개 풍선이 천정으로 둥실둥실 떠올라갑니다.
잠시 뜸들이기를 하다가 다음을 진행합니다.
" 지금부터 자기 복福풍선을 찾는 거에요.
시간은 3분을 드립니다. 시작하세요!
내것을 찾은 사람은 순서대로 앞으로 나오세요."
제것 찾느라고 33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됩니다.
소란스럽기만했지 '찾았다'는 소리는 한둘입니다.
정작 복福풍선을 찾은이가 별로 없이 3분을 종료합니다.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음을 진행합니다.
" 지금부터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풍선을 잡아주세요.
거기 쓰인 이름을 불러서 복福풍선 임자를 찾아 주세요."
같은 3분의 시간을 주었는데 뒤엉킴이 없이 아름을 부르며 잘 찾아줍니다.
웃음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칩니다. 강당안이 훈훈합니다.
이것이 품앗이이고 품마을의 풍경입니다.
" 이제는 기쁨조, 즐거움조, 웃음조로 나누어 모이세요.
조별로 기쁨복, 즐거움복, 웃음복을 외쳐 주시지요.
새해, 기쁨복 지으세요 !
새해, 즐거움복 나누세요 !
새해, 웃음복 찾아주세요 !
모두 합창해 주시지요.
새해에는 모두모두 복福풍선 찾아가세요! "
2020. 새해아침
1) 복福을 파자(破字)하면 < 示 + 一 + 口 + 田 >으로
'자연(조상)이 내려준 입을것 먹을것 일할곳'이라 해석합니다.
2) 복福 에는 홍복弘福, 청복淸福, 행복行福 이 있습니다.
홍복은 내림복, 청복은 청빈 복, 행복은 선행 복입니다.
3) 행복幸福은 1860년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시기에
영어 happiness('은총'에 가깝다)를 번역한 '조어'랍니다.
마을이 답이다, 길을 찾자
가정은 가족을 품어안는 울타리이고, 마을은 가정을 보살피는 보호막(지붕)이었다.
마을은 각 가정의 대소사를 거들었고, 법과 경제 이전 마을의 여러 일들을 간섭하였다.
근대화-산업화가 초가지붕을 벗기고, 길을 넓히면서 전통마을도 함께 사라졌다.
마을 어르신 역할이 순기능도 많았지만, 새로운 도전(일)에는 역기능도 적지않았다.
어른이 촌장인 자연마을은 사라지고 행정조직인 리里로 대체되어 산업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젊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가 마을일꾼을 자처하고 근대화에 헌신 매진하였기 때문이다.
징검다리였던 자연마을이 해체되면서 가정은 나라(주로 행정)에 곧바로 엮이게 되었다.
최근에는 도로명주소가 시행되면서 '마을(동네)이름'조차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민주화-정보화가 밀려들면서 마을이 사라진데 이어 가족분산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선거투표제도가 개인주장을 우선시하면서 가정의 통합된 의견은 완전 무시되고 었다.
고속 정보화가 '나홀로' 생활을 더욱 가속화 시키면서 가정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경쟁이 기본인 개인주의의 극심함이 인간의 사회성 피폐화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가족의 울티리인 가정을 살펴보고, 가정의 지붕인 마을을 되살리는 일이 당면과제이다.
소비를 줄이고 물자를 아끼며 자연의 속도에 맞추는 슬로라이프가 '품격있는 자연마을'이다.
대량생산 다량소비 대형조직 속도경쟁 생활편익등에 맞춘 빠른 시계가 삐거덕거리고 있다.
잠시 멈추고 분해하여 먼지 털고 부품 바꾸고 다시 조립하여 고장난 시계를 고쳐써야 한다.
맞춤생산 소비절약 작은모임 동행속도 불편감수등 느슨한 관계를 거미줄망으로 엮음을 한다.
2006년의 '미래촌'에서는 회원,회비,회칙,회장,회관 없는 5무無활동으로 느슨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장소만 마련되면 강의, 기념행사, 모임, 작은학교를 세우고, 무가지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2014년 '품마을'로 재편하면서 모든사람,품앗이,관례,마당쇠,모든곳등 5無를 5유有로 바꾸었다.
'품마을'은 모임생활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생활로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 넷트웤으로 품는 것이다.
개개인별 또는 작은 단위별로 서로 엮어 품으면서 절약을 통하여 자급자족하는 마을이 꿈이다.
시골에서는 '마을이름'으로, 도시에서는 '동네이름'으로, 기업에서도 '품이름'으로 꾸며간다.
넷트웤으로 각자의 재능을 서로 나눔하는 지혜만 있으면 배움터,음식,예술등으로 다 품을수 있다.
'스스로-다함께-바로서기'를 구호로 작은 완성이 모여 마을에 씨앗을 심으면 만족이다.
생활만족은 돈이 아니라 자연 맞춤 생산. 기꺼이 나눔으로 얻어지는 생활지혜의 기쁨이다.
2017.9.
* 품앗이 *
대학가 원룸에서 "필유하우스"(천안시 소재)에서 집주인을 만나 현대판'품앗이'를 들어본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재능 중 일부를 어느 길목에서 서로 나누고 보태어 미래를 갈무리하는 작업이다. 갑을甲乙이 상대를 각자로 나누는 타산적인 '계약관계'만은 아니다. 갑을甲乙은 본디 하나인 것으로 서로 대등한 '협력관계'로 자리매김하며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필유하우스'의 집주인은 '대학가 원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것을 들려준다. 좋은 생각도 발품을 들여 작업을 하여야 감동을 받는 작품으로 나타난다는 것에 동감한다. 집이름 '필유'는 영어로 'Feel You'로 '당신에게 좋은 느낌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생 40여명이 사는 원룸을 지었다. 관리인이 따로 없고 집주인도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한주에 한번씩 들러 청소하고 주변을 정리해도 늘 깨끗하고 깔끔하다. 현장에 CCTV를 설치해 멀리 떨여져있는 집 모니터에서 청결상태를 확인한다. 공용 음식물쓰레기처리기를 밖에 따로 장치해 놓고 '양심거울'을 걸어놓기도 했다. 공용공기청정기와 공용청소기 비치함을 두었고, 무인택배 보관함과 공용 음료정수기와 공용 냉장고를 1층 복도에 배치했다. 공용 우산보관함도 함께 정돈해 놓았다. 여러대의 자전거를 준비해 10만원 보증금으로 개인별로 사용할수 있도록 했다. 집주인의 발품이 큰 역할이지만 원룸을 이용하고 있는 학생들의 협조 없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현대판 '품앗이'라고 이름할만큼 눈에 확 띄는 것중 하나. 동네 음식점이나 상점들의 홍보지가 각각의 방문에 너절하게 붙어 있지를 않다. 복도를 지저분하게 하는 원흉이기도 한 홍보물의 처리가 궁금하다. 홍보물을 부착하는 외지인의 무단 침입도 큰 부담이다. 주인은 이웃과의 교분도 중요해서 홍보물 주인을 찾아 전화를 한다. 1층 복도에 홍보물 비치대를 설치해 놓았으니 그곳에 쌓아두시라고... 그 배려와 협조로 청결과 무단침입자의 부담을 더는것 또한 서로 주고받는 '품앗이'다. '필유'에는 이웃한 단국의대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번 들어오면 대부분 재계약을 하고 2,3년씩 있고 심하게는 졸업하고도 병원에 취업되어 6년째 계속있는 사람들도 있다. 재계약할때는 연간 총액에서 10만원을 깎아주어 서로가 흐믓해 한다. 두달에 한번씩 집주인이 삼겹살로 한턱쏘는 거주 학생들과의 모임을 하여 얼굴을 익히는데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모임 정례일을 정하여 그 자리에 학부모 한두분과 외부인사를 모시고 사교의 장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의견을 낸다. 이것이 '품학교'요, 재능과 역량을 서로 나누는 '품앗이'가 아닐까. 가장 중요한 '필유 그룹카톡방'을 놓질뻔 했다. 집주인이 운영자로 있으면서 알림판으로 활용하고, 입주한 학생들의 소통방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카톡방에 필요한 것을 구하기도 하고, 필요없는 것을 알려 소용있게 쓰이기도 한다. 특히 소음 민원에는 얼굴 붉히지 않고 중재자 역할을 카톡방이 톡톡히 해낸다. 방학때등 짐을 빼다가보면 한번도 쓰지않은 물건들이 적지않아 이들 목록을 카톡방에 올려 쓰임을 찾기도 한다. '필유하우스' 인기는 대학교 홈페이지에 착한 원룸으로 소개되고 있다. 입주했던 학생들이 졸업후 병원에 근무하고 있어 집주인은 병원에서는 저명인이 되었다. 이 모두가 미래를 위한 '품앗이'였음을 확인한다. 2018.10. |
주고받는 즐거운 '덤' 옛날 전통시장에 가면 자주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덤'이었다. 곡식을 팔때는 덤으로 드린다고 하며 됫박끝을 싹 밀어내지 않고 3분의1쯤 남겨 자루에 부어주었다. 과일 야채가게에서는 한두개 더 얹어주고 생선가게에서도 한두마리 더 얹어주면서 꼭 한마디 덧붙였다. "먼 길 찾아오시느라 '발품'을 했으니 '덤'으로 주는거요." 인색하게도 덤없이 싹뚝 잘라버리는 가게에서는 '덤 달라'고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는 광경을 보곤했다. 물건 사는 이는 '덤'을 받아서 즐겁고, 파는 이는 찾아온 손님 발품에 제나름으로 '품앗이'해서 흐믓했다. 이런 즐겁고 흐믓한 덤문화와 품앗이문화가 지금 시골 장터에서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일전에 청송 주왕산 단풍구경을 갔다. 청송이 사과가 유명하다더니 밭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사과 주산지'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2만원짜리 한망을 샀더니 '발품 덤'이라며 3개를 얹어주어 흐믓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버스를 탔는데 일행중 몇몇이 히히덕거리며 웃음 깨지게 자랑을 늘어 놓는다. "야, 이게 2만원어치야. 15개 골라가라며 한자루 펼쳐놓길래 여럿이 달라붙어 봉지에 마구 퍼담았지. 빵빵 터져 나갈 정도로...주인여자 정신 쏙 빼놓아 갯수 세기는 틀렸고, 이건 계산도 않고 가져왔다." 자랑거리가 아니다, 이건 사과도둑이다, 옛날 같으면 사과 서리한 기분일꺼라...뒷맛이 영 씁쓸하다. '덤'으로 얹어받는 즐거움을 놓쳐버렸고, 사과 파는 이의 발품 '품앗이'하는 흐믓함도 빼앗아버렸다. 농군들은 이런 손해날 짓은 아니할 것이라, 눈 부릅뜨고 도둑을 감시하고 이젠 '덤'은 아예 어림도 없다. 다음에 오는 관광객들은 산지 인심이 더 사납고 도시민들 주머니만 노린다고 외면하는 악순환이다. 농촌 인심이 왜 이리 팍팍해졌느냐고 하지만 이건 '덤'이나 품앗이문화를 잘못 이해한 소리들이다. 누구나 가진 것이 똑같을 수는 없다, 당신이 가진 것중에서 얹어주는 것이 '덤'이고 발품에 대한 '품앗이'다. 말만 정성껏 잘해도, 고마움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그걸 품으로 받아드리는 것, 이것이 '품앗이'다. 눈속임 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치졸한 싸움이다. 발품에 덤을 주는 '품앗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다. 2018.11. |
품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량생산은 기계 냄새가 물씬나고 대량소비에는 공짜냄새가 물씬난다.
지금 세계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한 빈부의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제와 갈등을 낳고있다.
금전(돈) 만능으로 몰아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지나친 자유가 절제 없는 방종으로 내몰아 간다.
한편 약자보호 사회복지가 보편복지로 확대되면서 '공짜'에 길들여져 일하지않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생산에는 지나친 자원낭비가 보이고 소비에는 넘쳐나는 물자가 버려지는 쓰레기로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지구살리는 일은 소비맞춤형 소량생산으로 물자절약이 요구되며 더하여 자원을 적극 보호관리해야 한다.
<품앗이 문화>
우리네 '품앗이'는 받았으면 반드시 되갚음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되갚음 문화야 말로 공짜가 없는 아주 건전한 경제 틀이었다.
받았으면 같은 값이 아니라도 좋으니 제 형편껏 갚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품앗이'문화에서는 모두가 값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로서 상대를 진지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기를 버리면서까지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는 상호작용이 훨씬 중요하다.
품앗이는 양쪽이 모두 흐믓하고 행복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내가 상대를 이롭게하면 내게도 이로움이 돌아온다는 사고방식이다.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서로를 배려해야 비로서 삶의 질이 향상된다.
재물과 지혜와 사랑의 일방적 베풂이나 보살핌이 아닌 여유와 배려의 나눔문화이다.
품앗이문화의 요체는 부등가원칙, 배려원칙, 되갚음원칙이다.
<전통 품앗이>
반세기전 우리 생활이 비록 가난은 했어도 마음은 풍성하고 넉넉했던 것도 이런 생활철학이었다.
콩알 하나 쌀한톨도 만인의 것이어서 거기에 각자의 몫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법과 돈 없이도 자기가 할수 있는 만큼 제 몫을 다하는 품앗이(관습)가 작동하고 있어서였다.
전통 품앗이는 가볍고 수시적인 일이어서 작은 규모의 일손으로 때때로 할수 있는 밭농사에 더 적합했다.
특히 품앗이는 노동력 투입에 있어 작업상 시차를두고 필요한 기능의 사람을 필요한 만큼만 배치했다.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되어 소수의 정예 인원으로 작업했다.
친척과 가까운 이웃으로 충분했고 따로 지휘나 감독자가 필요없이 모두가 일에 투입되었다.
전통 품앗이는 개인경영지의 소규모를 대상으로 하여 임의 개방적으로 융통성있게 운용되었다.
일시적으로 필요시 수시적으로 시행했고 전국적으로 성행한 노동교환 방식이었다.
'옛 품앗이'를 신재효의 판소리사설집 '흥보가'에서 발췌해 본다.(두레.주강영지음.들녘.657쪽)
ㅇ 흥보의 품앗이-김매기, 풀베기, 장서두리, 승교매기, 밥집지기, 조역꾼, 자갈줍기, 품팔기, 약전하기,
편지전하기, 기러기아범노릇하기, 술짐지기, 나무놓기, 등
ㅇ 흥보 마누라의 품앗이 - 밭매기, 김장하기, 방아찧기, 삼삶기, 물레질, 헌옷짓기, 베짜기, 빨래하기,
밥짓기, 오줌주기, 장달이기, 쌀까불기, 재집어넣기, 밑거름놓기, 풀뜯기, 절구질.등
스스로, 다 함께, 바로서기
(1) 스스로(홀로)서기
우리들에게는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님...선조들께서 전해준 아기들 키우는 귀한 육아법이 있다.
할머니는 막 앉아있기를 시작한 한살도 안된 아가에게 몸짓과 소리로 가르쳐 주셨다.
말소리와 함께 몸놀림을 통하여 몸 가누기를 따라하도록 열심히 가르치셨다.
할머니는 소리와 동작을 하며 아가가 따라하게 한다.
처음엔 '까꿍까꿍 까꿍까꿍'(얼굴을 두손으로 가렸다 떼며 아가를 까르륵 웃게하는 동작)으로 시작한다.
열 가지가 넘는 동작들을 모아 아기를 바로 서게 한다.
도리도리(고개를 돌린다) - 짝작궁짝작궁(손뼉을 친다) - 곤지곤지(손바닥 용궁을 검지로 찍는다) - 잼잼 잼잼(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 애비애비(좌우로 손사래를 친다) - 아아 아아(소리를 내며 입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이런 동작은 앉아있는 아가의 손과 팔에 힘을 돋구게 한다.
다음은 아가를 세워서 발 다리에 힘을 길러 준다.
섬마섬마(아가를 방바닥에 세운다) - 부라부라(세워서 좌우로 흔든다) - 시상시상(앞뒤로 흔든다) - 따로따로(아가를 할아버지가한손으로 올려 세운다) - 질라라비 훨훨(아가 양옆구리에 손을 넣고 나비처럼 공중으로 날게한다)
아무런 도구를 쓰지않고 맨손으로 홀로 서기를 가르치는 따뜻한 손길이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육아비법이다.
마지막으로 아가의 두손을 잡고 '걸음마 걸음마' 소리를 하며 한발짝 두발짝씩 발걸음을 떼게 한다 .
드디어 홀로서기 홀로 걷기를 한다. 이제 스스로 세상 살아가기에 주저함이 없다.
할머니의 따뜻한 맨손으로 아가는 스스로 서고 세상에 나서는 첫걸음에 환호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위의 몸놀림 육아법을 단동10훈檀童十訓 이라는 어려운 한자로 설명하고 있다.
몸가눔의 지혜를 한자로 엮어내면서(道理道理, 作作弓등) 오히려 기피하고 있는 요인이 되었다.
한살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철학과 윤리를 가르친다는 해석이 너무 억지다.
아가의 몸가눔에는 말소리와 동작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냥 주문 외우듯 장단을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 저절로 몸놀림이 되는 것이다.
문명과 문자로 쓸 일이 아니다. 할머니의 가르침(몸놀림)이 아가를 홀로 서게하고 스스로 걷게하는 배움(따라하기)이다.
우리네 현대 육아법이 겁이 난다. 천재와 스타를 만드는데 혈안이다.
각종 문명과 도구를 활용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대부분의 놀이기구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아닌 기계(청각 시각 촉각등)에 의존하고 있어 안타깝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이 일상화 되면서 아가들을 달랠수 있는 영상을 담아 보여주고 있어 과연 바른 육아법일까로 걱정이 크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 가장 크게 부딛치고 있는 육아법이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2) 다 함께, 바로 서기
해방후-산업화 이후 우리 학교 교육은 수없이 흔들려 왔다.
사교육이 판을 치는 사이에 공교육은 무너졌다는 소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 최상이라는 흰소리가 세상에 퍼지고 있다.
경쟁을 전제로 한 성적우선순위 학교교육에 신물이 났는데도 말로는 인성(人性)교육을 외치면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직 대학 입시와 취업준비에 골몰하고 있는 성적위주의 공교육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믄 뜨거운 교육열을 높이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쪼개고 쪼갠 전문 분야에 왠 박사는 이리 많은지. 이런 우스개가 있다 '석사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가 "밥사"줘 란다'.
지나친 분화속에 깊고깊은 우물만 파고 있어 벽과 담을 쌓아 제 살길만 찾는 '전문가'들의 이익 집단만 양산하고 있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엄마의 따뜻한 품속이 사라져 버린 교육 마당이다.
공교육도 사교육도 이미 인간人間이기를 포기하고, 사회를 위한 하나의 부품(도구)을 생산해 내는 꼴이다.
제자리 서기는 했는데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있는 이 딱한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 너무 딱하다.
학교學校를 버리고 학교學敎를 세워야겠다고 품마을이 주장하는 까닭이다.
몸짓으로 보여주고 품에 껴안으며 홀로-스스로 서게 해야한다.
다함께 걸어가야 함이 '바로세움'이라는 것이 전정한 배움임을 깨닫게 해야한다.
따라하는 배움에서 그 벽을 뛰어넘어 그 품을 떠나 또다른 세상을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스스로, 다함께, 바로서기"가 이 시대의 화두가 되도록 힘쓸 일이다. 2014.7.